본문 바로가기

분대장이 무심코 흘린 관심병사 이름 … 따돌림의 시작

중앙일보 2014.06.27 02:08 종합 6면 지면보기
지난 25일 서울역·동서울터미널에서 만난 병사들은 말을 아끼면서도 관심병사 제도에 대한 우려를 쏟아냈다. A병장(22)은 “지난해 소대장이 분대장에게 관심병사 관리를 떠맡기는 걸 봤다”고 말했다. 분대장은 관심병사에게 “힘든 일 없느냐” “요새 기분 어떠냐” 등을 묻고 관리일지에 기록해 소대장에게 보고한다고 했다. 그는 “이 과정에서 자연스레 관심병사가 누구인지 알려진다”고 말했다.


소대장만 알아야 할 명단 노출
관심병사 안되려 "생활 다 좋아" 답도
군 상담관 1명에 병사 2573명꼴

▷여기를 누르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군이 취약한 병사를 보호하기 위해 관심병사 제도를 운영하고 있지만 관리가 허술해 왕따(집단 따돌림)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는 지적이 일고 있다. 관심병사는 소대장 등 지휘관만 알고서 섬세하게 관리해야 하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 이날 취재진이 만난 현역 병사 6명은 이런 문제점을 지적했다.



 B병장(24)은 “분대장(고참 병사)이 책임지고 관리해야 하니까 누가 관심병사인지를 아는데, 분대장이 그냥 이름을 얘기한다”고 말했다. C일병(21)은 “보초 근무를 할 때 선임이 누가 관심병사인지를 얘기해주더라”고 말했다. 대놓고 따돌리는 경우는 많지 않지만 은근히 외면한다. D일병(23)은 “선임이 관심병사인데, 그냥 무시한다. 지나가는 말로 욕을 할 때도 있다”고 말했다.



 왕따로 이어지는 경우도 있다. 2008년 포병으로 전역한 E씨(26)는 허리가 아파 의무실에 몇 번 입원한 적이 있는데, 그 이후 ‘꾀병쟁이’란 별명을 얻었다. 그는 “분대장이 ‘작업해서 허리 안 아픈 사람 있으면 나와 보라’며 공개적으로 나를 무시했고 분대원들이 ‘어이, 엠프티 브레인(머리가 빈 사람)’이라고 놀렸다”며 “2년 동안 숱하게 자살을 생각했다”고 말했다(2011년 12월 ‘한국사회복지질적연구’ 발표 논문).



 이런 분위기 때문에 고민이 있어도 지휘관에게 곧이곧대로 얘기하지 않는다. F일병(22)은 “소대에 전입했을 때 고참들이 ‘소대장 면담 때 쓸데없이 찍히지 마라. 그래야 군생활이 편해진다’고 충고했다”며 “소대장에게 ‘다 괜찮고 좋다’고 답했다”고 말했다. 그는 “진짜 어려움이 있어도 관심병사가 되는 순간 군 생활이 꼬인다”고 덧붙였다.



 국방부는 관심병사가 20%에 달하는 것으로 추정한다. 징병검사나 입대 직후, 복무 중에 인성검사를 해서 지정한다. 정원철 신라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관심병사가 20%에 달한다는 것은 발견 체계는 잘 돼 있다는 뜻이다. 그 이후 관리가 제대로 안 되는 게 문제”라고 지적했다. 1차 관리자는 지휘관이다. 부적응 증세가 계속되면 병영생활상담관이 나선다. 사회복지사·심리상담사 출신이다. 하지만 사단급 부대에만 배치돼 있다. 전군에 246명밖에 안 돼 상담관 한 명이 병사 2573명을 맡는다. 지난해 12월 정신간호학회지에 실린 논문에 따르면 관심병사 113명 인터뷰 결과 고민을 상담할 사람이 없다고 답한 사람이 53명(46.9%)에 달했다. 상담 대상이 없는 병사의 스트레스지수가 상담 대상이 있는 사람보다 14%포인트 높았다.



 부적응 정도가 심하면 현역복무 부적합 병사로 판정해 전역시킨다. 2009년 847명에서 지난해 1337명으로 늘었다. 하지만 매끄럽지 않은 경우도 있다. 신병 교육을 받던 G일병(21)은 2010년 입대 직후 훈련 과정에서 조울증 증세를 보였다. 자대 전입 후 관심병사로 지정됐고 ‘그린캠프(15일짜리 치유프로그램)’에 세 차례 갔다 왔다. 동료들의 왕따를 견디지 못해 26차례 정신과 치료를 받았다. 군의관은 현역복무 부적합 처리를 권유했지만 무시됐고 2011년 8월 목숨을 끊었다.



 징병검사에서 현역 부적합 병사를 잘 걸러내지 못한다는 지적도 있다. 한 현직 군의관(32)은 “한 달에 한 명 정도의 관심병사가 의무대에 온다. ‘자살하겠다’ ‘군 생활을 버틸 수 있을지 걱정된다’고 토로하기도 한다. 이런 애들이 어떻게 현역 입대했는지 놀랄 정도”라고 말했다.



 관심병사의 증세가 악화되면 G일병처럼 정신과 치료를 받기도 한다. 민간병원으로 가는 경우는 흔치 않다. 병사들이 민간병원에서 진료받은 100대 질병에 정신질환은 들어 있지 않다. 안준호 울산대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군 생활하다 조현병(정신분열증)에 걸리기도 하는데, 지휘관이 이상 징후를 알아채면 다행이지만 잘 인지하지 못하고 넘어가는 게 문제”라고 말했다.



신성식 선임기자, 장주영·유성운·김혜미 기자
공유하기
광고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