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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라질 월드컵] 족집게 해설 '문어 영표' "이근호 골 적중 최고 짜릿"

중앙일보 2014.06.27 00:52 종합 29면 지면보기
2010년 남아공 월드컵 당시 독일 오버하우젠 해양생물박물관 수족관에 살던 문어 ‘파울’은 독일 대표팀이 치른 7경기의 결과(5승2패)를 족집게처럼 예측해 유명세를 탔다. 대회 직후 파울은 우승팀 스페인으로부터 명예 시민권을 받았고, 러시아 베팅 회사로부터 10만 유로(약 1억3900만원)의 몸값에 이적(?) 제의를 받았다. 파울을 주인공으로 한 상품이 출시됐고, 선택하기 힘든 일을 대신 결정하는 ‘파울 애플리케이션’도 나왔다.


중계시간 빼곤 경기 자료 공부만
선수 때처럼 방송서도 '악바리'

 2014년 브라질 월드컵에는 이영표(37·사진) KBS 해설위원이 ‘인간 문어’로 인기몰이 중이다. 디펜딩 챔피언 스페인의 몰락, 잉글랜드-이탈리아전(이탈리아 2-1 승)과 일본-코트디부아르전(코트디부아르 2-1 승) 스코어, 한국-러시아전 이근호 득점, 한국-알제리전 손흥민 활약 등 이 위원의 경기 결과 및 상황 예측이 정확히 맞아떨어졌다. 월스트리트저널은 ‘한국 국가대표 출신 해설자 이영표가 브라질 월드컵에서 뛰어난 예지력을 선보이고 있다’면서 ‘문어 영표’라는 표현을 썼다.



 26일 브라질 상파울루 코린치앙스 스타디움 미디어센터에서 만난 이 위원은 “요즘 ‘인간 문어’ ‘표스트라다무스’ 등으로 불리며 갑작스럽게 유명세를 타 어리둥절하다”면서도 “경기 상황에 대해 시청자들에게 한발 먼저 정확한 정보를 제공하는 데서 희열을 느끼고 있다”고 말했다.



 ‘인간 문어’는 브라질 월드컵 TV 중계의 이슈 메이커로 떠올랐다. 이영표 위원을 메인 해설자로 내세운 KBS는 대회 개막 직전까지 시청률 꼴찌를 면치 못했지만 이후 약진을 거듭해 1위로 치고 올라갔다. 23일 한국-알제리전에서 14%의 시청률을 기록해 MBC(9.2%)와 SBS(5.1%)를 여유 있게 제쳤다. 18일 한국-러시아전도 22.7%로 지상파 3사 중 1위였다. KBS 내부에선 ‘2002년 4강 신화 못지않은 기적’이라는 반응이 나왔다.



 족집게 예언과 시청률 수직 상승의 비결은 ‘남다른 노력’에 있었다. 이 위원은 방송가에서 악바리로 정평이 났다. 방송 시간 외에는 온통 분석에 매달린다. 자투리 시간까지도 꼼꼼히 활용한다. 이 위원은 “경기 분석에 주어진 시간이 이틀이든 혹은 반나절이든 상관없다. 해당 시간 모두를 공부에 쏟아붓는다”며 “경기 분석 자료를 작성하는 데서 그쳐선 안 된다. 머리에 완전히 입력해야 생중계 도중에 순발력 있게 활용할 수 있다”고 나름의 노하우를 전했다.



 ‘마음껏 즐기자’는 자신과의 약속도 도움이 됐다고 했다. 이 위원은 “해설자인 내가 마음껏 즐겨야 내 방송을 보는 시청자들도 즐길 수 있지 않겠느냐”며 “이제껏 나에게 월드컵은 ‘뛰는 대회’였다. 처음으로 ‘보는 대회’로 치르는 이번 월드컵은 해설자 입장을 떠나 축구인으로서 너무나 행복한 경험이다. 이런 감정을 시청자들과 공유하기 위해 노력 중”이라고 말했다.



 이 위원은 “경기 중 다음 상황을 예측한 게 적중했을 때가 가장 기쁘다. 러시아 골키퍼 아킨페예프(28·CSKA 모스크바)가 후반 들어 볼 처리 실수가 잦은 것을 보고 ‘지금 골키퍼가 심리적으로 흔들린다. 과감하게 중거리 슈팅을 시도하면 골을 넣을 수 있다’고 말했다. 그리고 얼마 뒤 이근호의 골이 터졌다. 그 희열은 말로 설명 못한다”고 했다.



 이 위원은 경쟁자이자 동반자이기도 한 지상파 3사 해설자들 중 차범근(61) SBS 해설위원을 최고로 꼽았다. “해설에 정답은 없다고 생각한다. 다만 차 위원님 해설의 깊이나 퀄리티는 후배들이 따라갈 수 없는 수준인 것 같다”고 말한 그는 “함께하는 (차)두리(34) 또한 경험이 많고 전술적인 면에 해박한 지식을 갖고 있다”고 평가했다. 안정환(38)·송종국(35) 콤비가 이끄는 MBC에 대해서는 “시청자들의 눈높이에 맞춰 가려는 노력이 보인다. 예능감이 충만한 조합이 함께하다 보니 늘 재미있는 해설이 나온다”고 했다.



 이영표 위원은 이번 대회 조별리그의 특징을 ▲대량 득점 ▲아시아 대륙의 부진 ▲남미 강세 등으로 요약했다. 골이 많이 터지는 이유로는 “브라질에 습한 지역이 많아 수비수들의 집중력 유지에 어려움이 많고, 빠르고 방향성이 좋아진 공인구 브라주카의 영향으로 골키퍼들의 볼 처리가 어려워진 점, 유럽에 비해 체력 소모가 큰 잔디 때문에 타 대륙 출신 선수들이 체력 관리에 어려움을 겪는다는 점 등이 복합적으로 나타난 결과로 본다”고 설명했다.



 26일까지 3무8패에 그치며 단 1승도 거두지 못한 아시아 축구의 부진에 대해서는 “공통적으로 체력과 컨디션 조절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며 “월드컵 무대에서 아시아 축구의 지지 기반 역할을 하던 체력의 우위가 사라지면서 고전을 면치 못하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아울러 “기후·잔디 등 환경 적응이 필요 없는 남미 팀들은 컨디션 관리가 잘됐다. 결선 토너먼트에서도 남미의 강세는 계속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상파울루=송지훈·박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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