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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동차 연비를 법원에 물어보랍니다

중앙일보 2014.06.27 00:45 경제 1면 지면보기


끝까지 제각각이었다. 26일 정부서울청사 2층 브리핑룸에는 4개의 발표 자료가 놓여졌다. 국무조정실·기획재정부·산업통상자원부·국토교통부는 각각 자료를 냈다. 반년 넘게 자동차 연비 과장 여부를 놓고 산업부와 국토부가 싸웠지만 결국 ‘나는 나대로, 너는 너대로’였다. 중재에 나선 기재부와 국조실은 손을 들었다. 그러고는 법원으로 공을 떠넘겼다.

[뉴스분석] 정부 부처끼리 인증 기준 놓고 티격태격



 이날 국토부는 싼타페 DM 2.0 2WD의 연비(복합 기준 L당 14.4㎞)는 부적합이라며 과징금을 물리겠다고 밝혔다. 쌍용자동차 코란도 스포츠 CX7 4WD(11.2㎞/L)도 연비를 과장했다는 판정을 받았다. 과징금은 최대 10억원까지 물릴 수 있다. 현행법으론 정부가 소비자 보상 명령을 내리진 못하지만 소비자가 이 결과를 근거로 소송을 낼 수는 있다. 반면 산업부는 두 차종 모두 “문제 없다”는 판정을 내렸다. 따라서 사후 조치도 없다. 이런 와중에 정동희 국무조정실 산업통상미래정책관은 “이번 일로 연비 관리를 일원화하게 됐다”며 “지금까지 우리 연비 관리 수준이 동네축구였는데 이제 아트사커가 됐다”고 자랑했다.



 - 소비자는 누구 말을 믿어야 하나.



 “미안하다. 최종적인 판단은 법원에서 할 것으로 본다.”(정은보 기재부 차관보)



 - 현대차가 싼타페에 붙어 있는 연비 표시 라벨을 바꿔야 하나.



 “국토부가 교체하도록 할 수 있는데…. 소송으로 가면 법원에서 판정할 것이다.”



 정부가 자동차 시장을 아수라장으로 만들었다. 소비자는 혼란스럽고 기업은 낭패다. 혼돈의 시작은 지난해 5월이었다. 국토교통부는 전격적으로 연비에 대한 사후관리를 하겠다고 밝혔다. 10여 년간 연비 사전·사후 관리를 해 온 산업부와 협의도 없었다. 이중 규제 논란에도 국토부는 밀어붙였다. 심지어 지난해 말 국토부는 연비 측정 결과를 밖으로 흘렸다. 산업부는 “조사를 한 국토부 산하 자동차안전연구원은 국가표준기본법(KOLAS) 인증을 받지 않은 곳”이라고 지적했다. 연비 측정은 시험장에 차량을 고정시키는 방식, 연료의 질, 시험장 내 온도 등에 따라 6~7%씩 편차가 생길 수 있다. 게다가 연비 측정은 사람이 가속 페달을 직접 밟기 때문에 실험 운전자의 개인차까지 생긴다. 이에 대해 국토부는 “우리는 우리 관할 법령에 따라 조사했다”며 “지난 10년간 산업부가 제대로 연비 관리를 안 했다”고 맞받았다.



 두 부처가 싸우는 사이 소비자는 혼란에 빠졌다. 2년 전 싼타페를 산 회사원 김모(44)씨는 “정부가 인증한 연비를 믿고 차를 샀는데 부처별로 서로 얘기가 다르니 황당하다”고 말했다. 미국은 다르다. 현대차는 2012년 말 미국에서 연비 과장 문제로 홍역을 치렀다. 그러나 당시 미국 환경보호청(EPA)은 6개월 이상의 조사와 협의를 통해 업체와 조사기관이 모두 수긍하는 결과를 내놓았다. 해결책도 같이 발표됐다. 기업이 예뻐서가 아니라 연비 문제는 소비자에게 직접적으로 영향을 줄 수 있기 때문이다. 자동차시민연합 임기상 대표는 “부처 이기주의 때문에 피해 보상이 사실상 가로막히는 등 소비자 권리가 침해당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자동차 업체는 비상이 걸렸다. 이미 중국 등에서 국내 연비 논란을 빌미로 현대차에 트집을 잡으려는 움직임이 나타나고 있다. 만약 대상이 통상 문제를 고려해야 할 수입차였다면, 정부가 이렇게 일방적으로 문제를 제기하고 나몰라라식 결론을 낼 수 있었을지에 대한 비판도 크다. 실제로 산업부는 2013년 연비 사후조사를 통해 아우디A4 2.0 TDI, 폴크스바겐 티구안 2.0 TDI 등 4개 차종에 부적합 판정을 내렸다. 그러나 국토부는 이에 대한 검증이나 조치는 없었다. 조동근 명지대 교수는 “부처의 밥그릇을 챙기느라 가장 중요한 대한민국의 밥그릇을 걷어차고 있다”고 지적했다. 현대차 관계자는 “어느 결론을 따라야 할지 혼란스럽다”며 “연비 조사 체계를 둘러싼 혼선이 정부 내 협의를 거쳐 이른 시일 내 정리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고려대 박심수(기계공학) 교수는 “업무 영역을 놓고 벌이는 전형적인 부처 간 주도권 싸움”이라며 “인증과 사후 검증 부서를 일원화해야 이 같은 혼란을 줄일 수 있다”고 지적했다.



김영훈·이상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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