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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이거구나' 할수 있게 튀는 디자인 해야죠

중앙일보 2014.06.27 00:07 Week& 6면 지면보기
‘3차원 브랜드 디자이너’ 닐 허스트가 하이트진로의 위스키 ‘더 클래스’를 들고 있다. “병 모양을 보면 직관적으로 세련된 신사가 떠오르게 디자인했다”고 한다. [사진 시무어파월]



'3차원 브랜드 디자이너' 닐 허스트

아일랜드 맥주 브랜드 ‘기네스’의 디스펜서(왼쪽)와 중국 백주 브랜드 ‘웬준’도 닐 허스트가 외형 컨셉트와 용기 디자인을 총괄했다. [사진 시무어파월]
둥근 바닥, 길쭉한 몸통이 대부분이었던 음료 용기가 스타일에 눈을 돌리고 있다. 가장 흔하게는 옷을 갈아입고 있다. 상품명과 브랜드 로고의 색상 등을 기존과 다르게 만들어 용기를 장식하는 방법이다. 고수해 왔던 화장법을 싹 바꿔 변신하기도 한다. 유리 용기 전체에 한시적으로 자기·금속 용기를 덧씌우는 형태로 바뀌는 사례가 이런 범주에 든다. 아예 다른 몸매로 환골탈태하는 혁신을 보여주기도 한다. 기존 용기 모양을 버리고 새로운 컨셉트·이미지의 디자인으로 변경하는 작업이다. 제품 디자인 혁신의 흐름을 주도하는 디자이너 닐 허스트(Neil Hirst)를 만났다. 최근 영국 런던의 작업실에서 만난 그는 자신을 “제품 포장(용기) 디자이너라기보단 3차원 브랜드 디자이너”라고 소개했다. 허스트는 산업 디자인으로 유명한 영국에서도 수년간 디자인 경쟁력 1위로 꼽힌 바 있는 시무어파월(Seymour Powell)에서 소비재 부문 디자인 총괄을 맡고 있다. 그에게 최근 제품 디자인 경향을 들어봤다.



-3차원 브랜드 디자이너라니.



 “1980년대 후반~90년대 초반 세계 경제가 침체기에 접어들었다. 제품 디자인 일감이 줄었다. 여기 저기서 ‘혁신’ 바람이 불었다. 가정용품 산업도 마찬가지였다. 용기 자체를 디자인하기보다 제품의 포장 상자까지 포괄적으로 디자인하는 패키지 디자인이 더 돈이 된다는 걸 디자인 회사들이 알아채기 시작했다. 현재 상품 디자인계의 혁신 흐름은 이때로 거슬러 올라간다. 상품의 전체 컨셉트와 시장 상황, 소비자 반응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디자인하는 게 3차원 브랜드 디자이너다.”



-디자인 과정은.



“최근 미국 시카고에서 워크숍이 있었다. 디자인 의뢰사의 마케팅·판매·기술 등 모든 관계자와 만났다. 여기서 180개의 각기 다른 컨셉트가 만들어졌다. 물론 180개 디자인 시제품을 만드는 건 아니다. 아이디어를 걸러내는 과정을 거친다. 특정 컨셉트가 회사의 목적 달성에 어떤 역할을 하게 될지, 여러 방향에서 설계도를 그려 추려낸다. 간추린 몇 가지 후보로 전통적인 디자인 과정을 시작한다. 실제 그림 그리기다.”



-컴퓨터로 하는 작업 말인가.



“아니다. 요즘 기술이 좋아 컴퓨터 자동 디자인 기능(CAD)을 쓰면 빠르게 일할 수 있다. 그래도 우린 손으로 그리기를 고집한다. 컴퓨터가 바로 내놓은 것만 보면 많은 걸 놓칠 수 있다. 손으로 그리고 만들면서 다시 한번 내가 뭘 만들고자 하는지 생각하면서 실제적인 이해를 높일 수 있다. 하지만 CAD로 작업한 디자인은 진정한 이해나 깊이가 없어서 특징 없는 디자인이 되기 쉽다. 요즘 디자인에는 눈에 띄는, 차별화할 수 있는 개성(character)이 정말 중요하다. 제품·브랜드의 핵심을 포착해 소비자가 딱 보고 ‘아! 이거구나’ 할 수 있게 해야 한다.”



-품질이 뛰어나지 않은데 디자인만 좋아도 성공할 수 있을까.



“단기적으론 예쁜 디자인이 매출 증대에 효과가 있을 것이다. 예를 들면 손 세정제보다 향수 분야에서 예쁜 용기 디자인의 영향이 더 크다. 한데 향수병이 아무리 예뻐도 냄새가 별로라면 소비자가 또 살까. 그냥 예쁜 병 한 번 사고 말 것이다. 그러니 재구매를 고려하면 디자인이 제아무리 뛰어나다 한들 제품력 없이는 성공할 수 없다.”



-디자인이 기술을 따라가는 걸까 아니면 그 반대일까.



“상호 작용이다. 60년대 자동차와 지금의 자동차는 본질이 같다. 90%는 같고 달라진 10%는 기술 발전 덕분이다. 유리를 꺾고 자유자재로 성형해 쓸 수 있게 돼서 유리 사용이 많아졌다든가 하는 것이다. 건축가 자하 하디드가 유선형으로 조각 같은 빌딩을 지을 수 있는 건 건축 기술 덕분인 것처럼. 한데 투자는 디자인보다 기술 분야에 더욱 쏠린다. 그러니 전체적으론 기술이 디자인을 이끈다고 할 수 있겠다.”



-개성 있는 디자인은 소비자가 낯설다고 외면할 수 있다.



“모든 사람이 자신만의 심미안이 있다. 같은 걸 보면서도 누군가는 백조로, 다른 이는 미운 오리로 여긴다. 특히 주류(酒類)소비자는 상당히 보수적이다. 하이트-진로의 ‘더클래스’가 한국 기업과의 첫 작업인데 우리는 한국 시장에 맞으면서도 독특한 디자인을 내놓으려 했다. 최종 선택은 시장에 있던 다른 위스키 디자인과 확실히 다른 것으로 했다. 남성적이고 우아한 분위기로 매끈한 신사복을 연상하게 하는 디자인이다. 중요한 건 적절성이다. 내 경험상 소비자가 기업보다 새로운 디자인을 취할 때 더 용감한 편이다.”



-영국의 산업 디자인이 세계적 경쟁력을 갖춘 이유는.



“영국 사람들은 전통적·문화적으로 진보·보수 사이의 균형감을 자랑해 왔다. 영국적 디자인은 이런 전통이 고스란히 드러나는 분야다. 새로운 디자인이 소비자보다 너무 앞서서도 안 되고 예전 것을 고수해서도 안 된다. 3차원 브랜드 디자인에선 둘 사이의 접점을 유지하는 적정성이 관건이다.”



 런던=강승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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