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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버스토리] 산봉우리가 파도 치네, 구름도 울고 넘네

중앙일보 2014.06.27 00:07 Week& 1면 지면보기
울트라바우길 최고 절경은 선자령(1157m)에서 펼쳐진다. 선자령 정상에 서면 구름 위로 백두대간 줄기와 풍력발전기가 한눈에 내려다보인다.


울트라바우길. ‘극단의’라는 뜻의 영어단어 ‘울트라(Ultra)’와 강원도를 대표하는 트레일 ‘바우길’이 결합한 이름이다. 강릉 안인항에서 출발해 백두대간과 만나 대관령∼선자령으로 이어지는 74.4㎞ 5개 구간의 산길로, 지난 2010년 완성됐다. 이 길을 만든 ㈔강릉바우길 이기호(55) 사무국장의 설명이다.

백두대간 축소판 강릉 ‘울트라바우길’ 종주기



“요새 걷는 길이 전국에 많이 생겼는데, 제대로 된 산악트레일도 필요하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백두대간의 축소판이 되는 길을 디자인했고, 바우길과 차별화하기 위해 ‘울트라’라는 이름을 붙였습니다. 아무나 오지 말라고 겁을 주는 뜻도 있지요.”



기껏 길을 내놓고 아무나 오지 말라니. 이 국장의 말처럼, 울트라바우길은 전국에 걷기여행 열풍을 몰고 온 말랑말랑한 길과 태생부터 다르다. 제주올레나 지리산둘레길이 아니라 네팔 히말라야의 트레킹 코스를 본보기로 삼았다. 형뻘인 바우길 16개 코스가 강릉의 산천과 문화를 느끼며 가벼이 걸을 수 있는 트레일이라면, 동생뻘인 울트라바우길은 이름처럼 거칠고 투박한 트레킹 코스다. 해안을 따라 난 길에 백두대간 자락 해발 1238m의 고루포기산까지 걸어서 올라야 한다. 이 산길을 다 걸으려면 4박5일은 각오해야 한다.



결코 만만한 길이 아니지만 요즘 들어 찾는 이들이 늘고 있다. 작정하고 4박5일 종주를 하는 사람도 있고, 주말을 이용해 구간을 쪼개서 걷는 사람도 있다. 울트라바우길에서 만난 허준희(47·여)씨는 “이번 가을에 스페인 산티아고 길을 걸을 계획이라 연습하는 심정으로 울트라바우길을 찾았다”며 “힘에 부치긴 했지만 평탄한 길에서 느낄 수 없는 산의 매력과 성취감을 맛볼 수 있었다”고 말했다.



이 울트라바우길을 종주했다. 지난 16~18일 기자 2명이 구간을 나눠서 걸었다. 숙련된 산꾼도, 강철 체력의 울트라맨도 아니었지만 무사히 종주를 마칠 수 있었다. 두 발로 걸었다기보다는 온몸으로 부딪친 길이었다.



울트라바우길 1구간 초입에 있는 활공장전망대에서는 강릉 시내와 동해가 훤히 내다보인다.


숨이 막힌 칼날능선, 기가 막힌 야생화 … 말문이 막히네요



‘울트라바우길’ 걸어보니



울트라바우길은 백두대간 트레일의 축소판이다. 강릉 안인항에서 산길로 진입해 가파른 능선을 따라 오르내리기를 수없이 반복한다.



거친 산길이었지만 소나무·참나무 우거진 숲에 야생화가 흐드러졌고, 융단처럼 펼쳐지는 백두대간 자락과 동해 바다가 한눈에 들어오는 기막힌 장관을 마주할 수 있었다. 길목마다 다채로운 풍경이 펼쳐졌고, 풍경마다 이야기가 서려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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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장공비 도주로 따라 걷기



울트라바우길 1구간은 강릉 안인항에서 시작한다. 길이 14.8㎞ 코스에서 고도가 가장 높은 곳은 피래산(754m)으로, 북한산 인수봉(810m)보다 낮다. 하나 이 높이를 무시할 수 없는 건 해발고도 ‘0’ 지점에서 출발하기 때문이다.



울트라바우길 초반 5.3㎞에는 길 이름이 여럿 있다. 바우길 8코스 ‘산우에 바닷길’과 겹친다. 부산에서 강원도 고성까지 이어지는 해파랑길 36코스도 이 길을 그대로 빌려 쓴다. 더 오래된 이름은 ‘안보등산로’다. 1996년 강릉 무장공비 침투사건의 무대여서 길 이름에 ‘안보’가 붙었다. 그러니까 이 길은 북한 잠수함이 안인진 앞에서 좌초한 뒤 간첩들이 산길을 따라 도주하다 우리 군과 총탄을 주고 받은 격전지였다. 97년 강릉시는 이 사건을 잊지 말자며 ‘안보’라는 이름을 붙여 등산로를 만들었다. 간첩 25명, 국군 11명, 민간인 4명이 숨진 공포의 현장이 인기 있는 등산로로 탈바꿈했다니 역사의 아이러니다.



울트라바우길 초입은 걷는 내내 옆구리에 바다를 끼고 걷는다. 활공장전망대에 서면 북쪽으로 강릉시내와 경포대까지 내다보였고, 조금 더 오르니 정동진 백사장도 멀찍이 보였다. 짭조름한 바닷바람에 솔향이 실려 밀려왔다. 활공장에서 3㎞쯤 더 올라가니 슬레이트 지붕을 얹은 낡은 집 하나가 나타났다. 제사를 지내는 당집이었다.



여기서 길은 세 갈래로 나뉜다. 정면으로 안보등산로가 이어지고, 왼쪽으로 내려가면 등명낙가사가 나오고, 울트라바우길은 밤나무정이 있는 오른쪽으로 꺾인다. 본격적으로 백두대간 품으로 들어가는 이 지점부터 ㈔강릉바우길이 개척한 길이다. ‘울트라’라는 이름처럼 거친 산길이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이 길에 들어선 뒤로 등산객은 한 명도 만나지 못했다. 산악회에서 달아놓은 리본만 곳곳에 나부꼈다.



피래산으로 향하는 숲길은 능선을 기준으로 왼쪽에 참나무, 오른쪽에 소나무 군락이 사이 좋게 영역을 나누고 있었다. 오래된 벙커를 지나니 피래산 정상이 600m 앞이었다. 거친 돌밭에 가파른 오르막길이어서 무척 힘들었다. 피래산 정상은 숲이 우거져 전망이 막혀 있었다. 여기서 1.5㎞ 정도 내려가 암릉에 이르러서야 시야가 트였다. 서쪽으로 칠성산(953m)과 만덕봉(1033m), 그 너머로 백두대간이 파도처럼 넘실거렸다.



지금부터는 내리막길이었다. 급경사를 따라 1시간쯤 내려가 1구간 종착지 덕우리재에 닿았다. 덕우리재에서 임곡마을 쪽으로 방향을 꺾으니 개망초꽃 만발한 공터가 나타났다. 야영하는 등산객이 이곳에 텐트를 펼친다.



2구간 두리봉을 지나면 백두대간 트레일과 만난다. 여기서부터는 길이 잘 나 있다.


야생화 흐드러진 구름 속 산책



“울트라바우길의 정수를 느낄 수 있는 가장 험난한 코스입니다. 1구간보다 1.5배는 힘들다고 생각하면 됩니다.”



바우길은 나무에 달린 리본을 따라 걸으면 된다.
2구간에 오르기 전부터 ㈔강릉바우길 이기호 사무국장이 겁을 줬다. 2구간은 덕우리재(290m)에서 출발해 망기봉(755m)에서 두리봉(1033m)으로 이어지는 능선을 따라 걷다 삽당령(721m)으로 내려오는 코스다. 표고 차는 1구간과 비슷하지만 숲이 우거진 데다 인적이 드문 곳이어서 등산로가 험준하다. 실제로 2구간을 걸은 지난 17일 일행을 제외하고는 사람을 한 명도 만나지 못했다. 휴대전화도 내내 불통이었다.



바우길 곳곳에 여름 야생화가 많았다. 사진은 희귀종인 제비난초.
날이 흐렸다. 간간이 이슬비가 내렸고, 안개인지 구름인지 모를 희뿌연 것이 자꾸 시야를 가렸다. 하나 나름의 운치는 있었다. 시계가 짧아 가까운 사물에 집중할 수 있었다. 운무에 잠긴 소나무의 신비한 자태를 느낄 수 있었고, 제비난초·까치수염 등 막 피어난 여름 야생화를 들여다볼 수 있었다. 이따금 더덕이나 삼지구엽초 같은 약초도 만났다.



덕우리재에서 망기봉으로 오르는 능선은 참나무가 빽빽했고, 허리춤까지 자란 싸리나무와 잡목이 옷깃을 잡아챘다. 망기봉을 돌아 울창한 소나무숲을 통과하고 나니 임도가 펼쳐졌다. 망덕봉과 만덕봉 능선을 오른쪽에 끼고 나란히 펼쳐진 임도를 따라 3.4㎞를 걸었다. 오르막길이지만 거친 능선에 비하면 콧노래가 나오는 산책길이었다. 큰금계국과 데이지가 흐드러져 꽃밭을 걷는 것 같았다. 골짜기 너머로 옥계항이 보일 때는 가슴이 뻥 뚫리는 기분이었다.



참나무 공터를 지나 다시 숲으로 들어갔다. 두리봉으로 오르는 길이다. 사람 한 명이 간신히 걸을 만한 칼날 능선은 이제껏 걸었던 길 중에 가장 험난했다. 울퉁불퉁한 돌밭에 철쭉과 진달래가 빼곡해 중심을 잡으며 거친 가지를 뚫고 가는 일이 만만치 않았다.



두리봉을 넘어서면 백두대간과 만난다. 이때부터는 고속도로나 다름없다. 사람이 많이 다닌 길이어서 길이 잘 닦여 있었다. 여기서부터는 식생도 이전과는 달랐다. 발목을 잡아채던 진달래·철쭉은 사라지고 산죽이 밭처럼 펼쳐졌다. 가파른 경사에 깔린 계단을 따라 내려오니 어느새 삽당령이었다. 휴식 서너 차례와 식사 시간을 더해 꼬박 11시간이 걸렸다.



삽당령을 출발해 닭목령에서 끝나는 3구간은 다른 구간에 비하면 심심한 편이었다. 화란봉(1069m)·석두봉(1001m) 등 1000m가 넘는 고산 능선을 따라 길이 이어졌다. 백두대간과 겹쳐져 있어 등산로는 잘 나 있었다.



알프스가 부럽지 않은 경치



울트라바우길 4∼5구간은 꽤 친숙한 코스다. 닭목령∼고루포기산(1238m)∼대관령휴게소∼선자령(1157m)∼바우길게스트하우스에 이르는 29.5㎞ 길이의 길 대부분이 백두대간과 겹친다. 해발 800m 이상 고원을 출발점으로 삼는 터라 정상까지 오르는 경사는 심하지 않다. 하여 눈이 많이 오는 겨울에도 트레킹을 즐기러 오는 이가 많은 코스다. 게다가 그림 같은 풍경의 선자령과 안반데기까지 곁에 두고 있다.



4구간 들머리인 닭목령을 출발해 최정상인 고루포기산과 그 너머 능경봉(1123m)까지는 울창한 숲길이 내내 이어졌다. 그늘에 숨어 삼림욕 하기엔 그만이었지만 산 아래 풍광은 좀처럼 시야에 잡히지 않았다. 두 산봉우리 사이 전망대에 올라서니 그제야 대관령과 동해 바다의 너른 풍광이 눈에 들어왔다.



고랭지 배추밭 안반데기는 현재 밭갈이가 한창이다.
하나 최고의 경치는 따로 있었다. 고루포기산 정상에 표지판도 없는 샛길에 비밀이 있었다. 그 길로 20m쯤 내려오자 약 198만㎡(60만 평)의 규모의 고랭지 배추밭 안반데기(안반덕)가 훤히 드러났다. 안반데기를 곁에 둔 4구간은 고랭지 농민의 고단한 삶을 엿보는 길이었다.



배추밭은 아직 푸르지 않았다. 그러나 소를 이끌고 비탈진 배추밭을 일구는 농부의 움직임은 분주했다. 푸른 배추밭을 보지 못해 아쉬워하자 이정수(55) 이장이 좋은 날을 점지해줬다. “8월이 가장 좋을 텐데. 배추가 자라면 다시 와요.”



안반데기를 뒤로하고 선자령으로 가는 길. 옛 영동고속도로 휴게소였던 대관령휴게소가 4구간과 5구간을 잇는 등산객의 정거장이었다. 선자령 오르는 길은 줄딸기꽃·천남성꽃·은방울꽃 등 야생화가 지천이라 심심할 틈이 없었다.



선자령은 날씨 때문에 등산객의 애를 태울 때가 많다. 맑은 날엔 광활한 대관령 초원, 끝없이 이어지는 백두대간 능선, 나아가 시퍼런 동해바다까지 내다보인다. 그러나 반대의 경우엔 뿌연 구름의 장막만 보고 돌아와야 한다.



week&은 운이 좋았다. 구름은 많았지만 큰 바람이 불자 선자령이 본색을 드러냈다. 날개 끝만 겨우 보이던 풍차가 흰 구름 위로 일제히 모습을 드러내자 알프스 부럽지 않은 풍광이 눈앞에 펼쳐졌다.



선자령 정상에서 종착점인 바우길 게스트하우스까지는 약 10㎞ 내리막이 이어진다. 길 중간에 장대 같은 금강소나무숲이 있고, 옛 산성의 흔적이 남아 있는 대공산성이 있고, 천년고찰 보현사가 있다. 다시 신발끈을 조이고 산 아래로 향했다.



울트라바우길





◆산행정보
=울트라바우길 종주는 산악회와 함께하거나 산행 경험이 많은 전문가와 동행하는 게 안전하다. 휴대전화가 통하지 않는 지역도 많고, 탈출로도 드물어 사전에 지도를 보고 치밀하게 준비해야 한다. 산행 장비도 든든히 챙겨가야 한다. 한여름에도 잡목 우거진 숲길을 걸으려면 긴 팔 긴 바지 등산복을 입어야 한다. 변화무쌍한 날씨에 대비해 방한복과 여벌의 옷도 챙기는 게 좋다. 등산 스틱을 사용하면 무릎과 발목 관절에 부담을 덜어준다. 코스 중간에 음식이나 물을 구할 수 있는 곳이 거의 없어 먹고 마실 것도 등에 짊어지고 가야 한다. 15㎞ 내외의 1개 구간을 하루에 걸을 경우 2L 가량의 물과 점심식사, 간식을 챙겨야 한다. 74.4㎞를 종주한다면 ㈔강릉바우길이 추천하는 장소에서 야영을 하면 되지만 야영에 익숙한 전문가가 아니라면 숙소를 이용하는 게 낫다. 강릉 시내에서 숙박을 하고, 버스를 타고 각 구간으로 이동할 수 있다. 4구간에 안반데기 주민이 운영하는 숙소 ‘운유촌’이 있다. 8만원부터. 033-655-5119. 종착지에 있는 바우길게스트하우스는 10월까지 객실이 동났다. 자세한 정보와 길 안내는 강릉바우길 홈페이지(baugil.org) 참조. 다음 카페(cafe.daum.net/baugil)에 더 다양한 정보가 있으며 카페 회원을 중심으로 한 정기 걷기 프로그램도 있다. 강릉바우길 사무국 033-645-0990.



글=최승표·백종현 기자

사진=안성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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