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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군 25만 숨진 곳 … 86년째 매일 저녁 추모의 나팔

중앙일보 2014.06.26 01:01 종합 20면 지면보기
제1차 세계대전 당시 숨진 영연방 군인들이 묻힌 벨기에 예페르 인근의 틴콧 묘지. 영연방 묘지 중 최대 규모다. [사진=고정애 특파원]


벨기에 플랑드르 지방의 소도시 예페르에는 걸맞지 않게 큰 석조문, 메닝 게이트가 있다. 제1차 세계대전 격전지였던 이곳에서 전사했으나 시신을 찾지 못한 영연방 군인들을 추모하기 위한 것이다. 건립 이듬해인 1928년부터 영국군 병영에서 일과 종료를 알리는 나팔을 불던 의식을 하루도 빠짐없이 재연하고 있다.

격전지 벨기에 예페르를 가다
"외국 군인 희생 잊지 않겠습니다"
주민들 1928년부터 보은의 행사
EU 정상들 회담 장소로 선택



 21일 오후 8시에도 어김없이 나팔 소리가 울렸다. 짤막한 추도사가 이어졌는데 마지막 문장이 “당신들을 기억하겠습니다”였다. 빈말이 아니었다. 메닝 게이트에는 세계 각국 추모객들의 예약이 밀려 있었다.



 4명의 나팔수 중에는 여든아홉 살의 안토이네 페어쇼트(89·사진)옹도 있었다. 60년째 이곳에서 나팔을 불고 있다는 그는 “외국 군인들이 우리를 위해 목숨을 바쳤는데 이 정도가 뭐 대단하냐”고 말했다.



 갑자기 평소에 없던 백파이프 연주가 처연하게 울려 퍼졌다. 벽면에 새긴 5만4000여 병사의 이름 하나하나를 되살려내는 듯했다. 백파이프와 드럼의 합주도 이어졌다. 런던스코티시연대 군악대였다. 추모행사를 위해 특별 방문한 것이었다. 연대의 톰톤(50) 중위는 “우리는 당시 참전부대였다. 여기에 있을 수 있어서 영광”이라고 말했다.



 10㎞쯤 떨어진 틴콧 영국군 묘지엔 1만2000개의 비석이 있었다. 영국의 포틀랜드 석회석으로 만든 비석엔 얼룩 하나 없었다. 묘지라기엔 너무나도 눈부셨다. 1차대전 참전용사의 손자라는 캐롤 플레처(64)는 “할아버지의 희생이 제대로 대접받고 있는 것 같아 행복하다”고 했다.



 나라를 위해 싸운 이들, 더욱이 목숨까지 바친 이들에 대한 예우는 모름지기 이래야 하지 않을까. 그게 국가의 의무이자 국가 존속의 요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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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너무나 깔끔한 것이 한편으론 부자연스럽기도 했다. 1차대전은 참혹한 전쟁이었다. 참호와 진흙탕 속에서 기관총과 박격포, 철조망 그리고 독가스에 1000만 명이 넘는 사람이 스러져갔다. 예페르에서만 5차례 큰 전투가 벌어져 25만 명의 영국군이 숨졌다. 독일군까지 더하면 갑절도 넘을 터였다.



 그나마 참상을 짐작할 수 있는 곳은 다시 8㎞쯤 더 가야 나오는 랑에마르크 독일군 묘지였다. 비슷한 시간대였는데도 어둑어둑했다. 박석이 비석을 대신했다. 십여 명의 이름이 새겨져 있곤 했다. 알프레드 베르너 이등병, 막스 포겔 이등병, 헤르만 하이네 이등병…. 학생 병사들이다.



 18세에 참전한 독일의 소설가 레마르크가 떠올랐다. 급우 7명 중 살아남은 건 혼자뿐이라던 그는 『서부전선 이상 없다』에서 전쟁터를 이렇게 묘사했었다. “참호 사이엔 시체가 산더미였다. 어디로 운반해야 할지 몰랐다. 시체는 자연히 포격으로 묻혔다.”



 1914년 6월 28일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의 프란츠 페르디난트 대공이 세르비아 민족주의자에게 암살당하면서 1차대전이 벌어졌다고들 말한다. 실제 전쟁은 그로부터 한 달 후 시작됐다. 그리곤 “장장 4년간 서로를 절망적으로 체계적으로 파괴”(조지 케넌 미국 외교관)했다.



 이런 전쟁이 어떻게 가능했는지 지금도 의견이 분분하다. 독일 책임론이 다소 우세하나 그렇다고 다른 나라들이 면책되는 건 아니다. 승부가 신속히 가려지지 않을 것이란 사실이 분명해지고 막대한 인명 피해가 나는데도 어떻게 전쟁을 지속할 수 있었는지도 풀지 못했다.



 전쟁 100년 만인 26일 유럽연합(EU)의 정상들이 예페르에서 회동한다. 이들은 과연 답을 가지고 있을까, 이 또한 든 의문이었다.



예페르=고정애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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