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성냥갑 원룸 잊어라 … 테라스에 하늘을 담았다

중앙일보 2014.06.26 00:52 종합 23면 지면보기
원룸의 폐쇄성을 깨기 위해 일부 세대에 테라스를 배치한 6~8층. 검은 안료를 섞은 노출 콘크리트는 차분하고 묵직한 분위기를 연출한다. [건축사진가 신경섭]


김성우(左), 김상목(右)
미술관도, 갤러리도 아니다. 이름난 기업의 거창한 사옥도 아니다. 서울 상계동 노원역 1번 출구 앞, 카페와 오피스텔, 원룸이 오밀조밀 모인 8층 건물이다. 이 건물은 짓기도 전에 ‘계획안 심사’ 만으로 김수근문화재단(이사장 박기태)이 주는 김수근 건축상 프리뷰상을 받았다. 뿐만 아니다. 준공된 다음에는 미국 건축상을 3개나 수상했다. 한국의 두 젊은 건축가가 이끄는 소형 설계사무소 엔이이디(N.E.E.D.)가 설계한 ‘상계동 345-1 프로젝트’다. 3월 AIA(미국건축가협회) 뉴욕지부가 주는 우수상(Merit Award)을 받은 이 건물은 뉴욕건축가협회(SARA)상(Merit Award), 보스턴건축가협회(BSA)가 주는 ‘하우징 디자인 어워드’(2015년 1월 시상)를 연이어 받았다.

건축상 휩쓴 '상계동 프로젝트'
3개 층 14세대 똑같은 모양 없어
싱글족 겨냥, 트인 공간으로 승부
비용 더 들어도 ‘살 만한’ 곳 지향



 그중에서도 AIA상은 미국에서 손꼽히는 건축상의 하나이기에 의미가 각별하다. 출품작 170여 점 중에 ‘준공 작품’ 분야에서 수상한 13팀이 미국 건축가 스티븐 홀·리처드 마이어, 덴마크 건축가 비야케 잉겔스, 일본 건축가 후미히코 마키 등 세계에서 내로라하는 건축가라는 점에서다. 한국의 소규모 신생 건축사무소가 이들과 어깨를 나란히 한 것이다.



가로 4.2m×세로 4m의 넓은 테라스는 좁은 공간에 사는 입주자가 도시와 만나는 공간이다. 테라스가 없는 세대에는 초소형 발코니가 있다(사진 왼쪽). 7~8층에 걸친 복층세대(가운데). 두 건축가와 카페를 운영하는 건축주가 함께 디자인한 카페. 좁은 공간에 사는 입주자들에게 ‘확장된 거실’역할을 한다. [건축사진가 신경섭]


 ◆테라스, 주변 환경과 만나는 ‘중간영역’=노원역 이용자들은 이 건물을 ‘1번 출구 카페’라 부른다. 김성우·김상목 두 공동대표가 디자인한 카페 내부는 높은 천장, 검은 콘크리트 벽, 1·2층 사이 로스팅 기계와 원목 가구 등 색다른 풍경으로 눈길을 사로잡는다.



 그러나 이 건물이 기존 건물과 가장 다른 점은 원룸 등이 자리한 6~8층에 있다. 우선, 이곳엔 똑같이 생긴 방이 거의 없다. 3개 층의 14세대는 규모는 작아도 초소형 원룸(전용면적 12㎡·약 3.6평·공용면적 포함 22㎡)에서부터 투룸형·테라스형·복층형 등 다양한 구조가 섞여 있다. 기존 원룸 건물이 마치 기계로 찍은 듯 똑같이 생긴 방을 배치해온 것과 다른 시도다. 둘째, 소형 원룸인데도 드넓은 테라스 를 갖춘 방이 있다는 점이다.



 “오피스텔·원룸·원룸텔·고시텔·쪽방 등은 모두 문 열고 들어가면 감옥 같다는 점에서 닮았죠. 바깥 환경과 만날 수 있는 중간 영역이 없기 때문이에요. 생활 공간은 비록 좁아도 문 열고 나가면 숨 쉬고 밖을 바라볼 수 있는 공간을 꼭 만들고 싶었습니다.”



 김성우 공동대표의 말이다. 1인 가구가 늘면서 초소형 주거공간이 더욱 필요한 시대에 접어들었지만, 우리 사회가 원룸의 폐쇄적인 환경을 당연시해 왔다는 지적이다. 테라스를 갖춘 원룸과 1개 세대가 7·8층 두 층으로 이어진 복층은 임대료가 주변 시세보다 50% 정도 높은데도 가장 먼저 임대가 나갔다. 원룸에 숨통을 틔워준 디자인에 대한 잠재 수요가 있었다는 얘기다.



 ◆건물을 느슨하게 들어올린 구조=이 건물의 또 다른 특징은 빽빽하게 속을 채운 성냥갑 모양이 아니라는 점이다. 용적률 제한이 있는 이 건물은 당장 눈앞의 경제성만 따졌다면 주변 다른 건물과 마찬가지로 평범한 5~6층 같은 건물이 될 뻔했다. 하지만 건축가는 건물 중간층에 용적률에 잡히지 않는 빈 공간을 수직으로 만들어 넣으며 건물을 8층 높이로 끌어올렸다. 용적률을 채우면서도 완화된 높이 제한을 최대한 활용한 것이다.



 “전철 역 바로 옆인데 5층으로 지으면 입주자에게는 소음도 많고 시각적으로도 답답한 환경이 될 수 있죠. 그래서 1·2층 천장을 일부러 높이고, 주거층은 가능하면 높이 자리잡게 했습니다.”



김 공동대표는 “층을 높이면 비용이 훨씬 더 든다”며 “틀에 박힌 건물보다 더 좋은 공간, 경쟁력 있는 건물을 짓겠다는 건축주 의지가 있어 가능한 시도였다”고 설명했다.



 김 공동대표는 2010년부터 한국예술종합학교 건축과에 강의를 나가며 쪽방부터 원룸, 고시원 등 도시주거 유형에 대한 리서치를 해왔다. 테라스·발코니가 있는 원룸과 옥상 정원은 이때 얻은 아이디어 중 하나였다고 한다. 그는 “조금씩 다른 시도가 모이면 도시의 삶이 더 풍요해질 수 있다. 다양하고 퀄리티 좋은 소형 주거 공간이 많아졌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이은주 기자



◆N.E.E.D. 건축사사무소=서울대 건축과 출신인 김성우(40)·김상목(39)이 2011년 각각 서울과 뉴욕에 문을 열었다. ‘N.E.E.D’는 시대가 요구하는 건축을 하겠다는 뜻이다. 김성우는 서울대 건축대학원, 네덜란드 베를라헤 인스티튜트 를 졸업하고 정림건축 ·디자인캠프문박디엠피 에서 일했다. 김상목은 미 컬럼비아대 건축대학원 을 졸업하고 뉴욕에 거주하며 조경업체 발모리 어소시에이츠 에서 일했다.
공유하기
광고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