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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트북을 열며] 문제가 될 거라면 미리 밝혀라

중앙일보 2014.06.26 00:12 종합 30면 지면보기
이도은
중앙SUNDAY 기자
#“동물은 먹지 않지만 바닷고기는 좋아해요. 개는 사랑하지만 가죽 구두를 신죠. 조용히 살지만 잊히긴 싫죠. 소박하지만 부유하고, 부유하지만 다를 것도 없네요. 모순덩어리 제 삶을 고백합니다.” 블로그를 통해 소소하고 소박한 일상을 알려온 가수 이효리가 최근 이런 글을 올렸다. 하루 10만 명이 다녀가는 대중의 관심을 의식한 듯한 발언이었다. 채식주의자로, 유기견 보호자로, 전원 생활자로 살아가는 그는 대중의 눈에 자칫 ‘허세’로 비칠 수 있는 부분들에 대해 먼저 방어에 나섰다.



 #버락 오바마 대통령도 챙겨 본다는 미국 드라마 ‘하우스 오브 카드’에선 이런 장면이 나온다. 정계 거물인 주인공은 마약 투약 전력과 알코올 중독 경험이 있는 초보 정치인을 펜실베이니아 주지사 선거의 후보로 내세운다. 하지만 정작 후보는 내부적 검증에서부터 스스로 압박을 느끼고 흔들린다. 그때 주인공의 한마디. “우린 이걸 정면돌파해야 해. 상대가 우릴 가만두지 않을 거야. 먼저 치고 나가야 해.”



 때로는 먼저 약점을 드러내는 것이 최선의 정공법일지도 모른다. 이번 문창극 총리 후보자의 사퇴를 지켜보면서는 더욱 그렇다. 문 후보자의 사퇴 배경은 논문 표절이나 전관 예우로 여론의 지탄을 받아 낙마한 다른 이들과 달랐다. 처음부터 자질이 아닌 성향이 변수가 됐다. 대표적 보수 언론인으로 알려진 탓에 야권 인사들에게 환영 받지 못했다. 과거 칼럼 하나하나가 도마에 올랐다. 중요한 건 청와대도 분명 이를 예상했을 것이란 점이다. 그래서 더욱 세심한 검증을 했을 터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케이 사인을 내렸을 것이다. 당연히 상대 진영의 논리도 짐작이 가능했으리라 본다.



 이런 의미에서 10일 청와대 측의 인선 발표 내용은 처음부터 부족했다 싶다. “냉철한 비판 의식과 합리적 대안을 통해 우리 사회의 잘못된 관행과 적폐를 바로잡기 위해 노력해온 분이다”는 설명과 함께 반대파의 논리를 먼저 언급했다면 어땠을까. 예컨대 “지금껏 보수적 시각에서 글을 써왔기에 후보자를 저러저러하게 여기시는 분들이 많겠지만”이라거나 “종교관에 따른 몇몇 발언이 오해의 소지가 있겠지만”이라는 식으로 말이다. 여기에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가 지금 국가에 필요한 적임자임을 밝히는 이유가 필요했다.



 지난해 인하대 최준영 교수가 한 토론회에서 언급한 주장도 맥락을 같이한다. “대통령이 후보자 과거 행적을 조사하고, 조사로 얻은 정보를 공개하며 문제점에도 불구하고 후보자를 내정한 이유는 무엇인지 소상히 밝히는 것은 인사청문 과정에 임하는 대통령에게 더 많은 책임을 부과시키는 것이다.“ (2월 15일 ‘인사청문제도 개선을 위한 긴급토론회)



 다시 총리 인선이 시작됐다. 누군가 또 문 후보자와 같은 운명을 겪을지 모른다. 그러니 이제 문제가 될 거라면 미리 밝혀라. 그리고 적극적으로 방어해 줘라. 자리에 앉는 자보다 앉히는 자의 소신과 책임감이 더 중요해지는 시점이다.



이도은 중앙SUNDAY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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