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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재의 시시각각] 모병제를 다시 생각한다

중앙일보 2014.06.26 00:11 종합 30면 지면보기
이정재
논설위원·경제연구소 연구위원
모병제만큼 논쟁적인 사안도 없다. 우리 사회의 금기 담론 중 하나다. 안보 위기·재정 부담 우려에 이어 “군 전력을 약화하려는 좌파들의 음모” “빈자(貧者)만의 군대”란 반대에 부닥치면 아예 논의가 봉쇄되곤 했다. 지난 대선 때는 김두관 후보가 “모병제로 젊은이들에게 꿈을 돌려주겠다”며 공약으로 들고나왔지만 별 재미를 못 봤다. 그런데도 모병제를 생각한 건 며칠 전의 최전방소초(GOP) 총기 난사 사건 때문이다. 군에 자식을 보내놓은 아비로서, 대안을 찾다 보니 달리 떠올릴 게 없었다.



 노무현 정부 시절 기획예산처 장관을 지낸 변양균에게 물었다. “지금도 모병제가 답이냐”고. 그는 “그렇다”고 했다. 노무현은 “젊은이들이 군대에서 썩는다”고 말할 정도로 징병제에 부정적이었다. 그 노무현이 “가장 뛰어난 관료”라며 극찬한 변양균은 ‘모병제 전도사’라 불릴 만큼 적극 지지자다. 그는 몇 년 전 낸 책 『어떤 경제가 우리를 행복하게 하는가』에서 모병제가 징병제보다 나은 점 네 가지를 꼽았다. (그 네 가지는 첫째, 수십만 개의 청년 일자리가 생기며 둘째, 직업·전문화를 통한 정예·기술 강군으로 거듭날 수 있고 셋째, 군 유지를 위한 사회적 비용도 적게 들며 넷째, 병역과 관련된 각종 소모적 논쟁-병역 비리, 군 가산점, 종교적 병역 거부 등을 끝낼 수 있다는 것이다. 물론 하나하나가 여전히 논란거리다.)



 “GOP 총기 사고는 구조적인 문제다. 우리 사병들을 돼지 취급한 결과다. 한방에서 놀고 먹고 자는 것, 이게 말이 되나. 군인이 죄수인가, 감옥 생활하는 것 아닌가. 어지간한 중산층도 그렇게 안 산다. 군대가 국민 생활 수준보다 너무 낮으면 안 된다. 그런 군대에 누가 가려 하겠나. 잠이라도 따로 잘 수 있게 당장 내무반부터 바꿔줘야 한다.”



 그건 징병제와는 상관없는 시설투자의 문제 아닌가. “아니다. 모병제는 군대를 아주 좋은 직장으로 바꿔주는 것이다. 경찰관·소방대원이 되듯 군인이 되게 하는 거다. 좋은 시설과 복지, 급여는 기본이다.”



 그는 북한을 이기는 가장 좋은 방법이 모병제라고 했다. “북한이 100명 삽 들고 땅 판다고 우리도 그래야 한다는 게 징병제다. 반면 모병제는 1명이 삽 대신 포클레인 갖고 땅 파자는 것이다. GOP를 왜 사람이 일일이 감시하나. 열적외선 카메라, CCTV면 다람쥐 한 마리까지 감지 가능하다. 그게 기술·정예군이요, 18만 미군이 120만 이라크군을 작살낸 비결이다.”



 그는 모병제를 달리 ‘의무병의 유료화’라고 불렀다. “군사문화는 싼 인력을 쓰는 데 익숙하다. 그 문화부터 바꿔야 한다. 군 장성 당번병, 테니스병이 왜 필요한가. 그런 필요 없는 인력부터 줄이자는 게 모병제다.”



 그의 모병제 예찬이 조금 더 이어졌다. 청년 취·창업이 활발해져 창조 경제에도 도움이 되고, 여성에겐 남녀 차별 없는 최고의 직장을 제공하며, 국내총생산(GDP)·고용률을 높이는 효과도 있다는 것이다. 65만 군을 30만으로 줄이면 한 해 35조원의 GDP가 늘어난다고 한다. 그런데 그렇게 좋은 모병제가 왜 공론화조차 안 되고 있나. 그는 두 가지를 걸림돌로 꼽았다.



 “첫째, 고정관념이다. 징병제는 군사정권 때의 통행금지 같은 거다. 있어야 평등·안전하다고 믿는다. 깨고 나야 비로소 국민 자유와 편익이 늘어난 걸 알게 된다. 둘째, 군 내부의 반발이다. 사병이 줄면 장성 숫자도 같이 줄어야 한다. 군 장성의 불안감을 씻어주지 않고는 모병제가 불가능하다.”



 4일에 한 번꼴로 군인이 자살하는 나라, ‘관심 사병’이 많게는 20%에 달하는 나라, 나머지 80%는 관심사병 돌보는 게 임무인 나라, 극단적으로 희화한 대한민국군의 자화상이다. 그런 군을 바꾸려면 국가 개조 수준으로 해야 한다. 논란 많은 모병제를 다시 꺼내든 이유다. 아니면 잊혀질 것이다. 지금은 시끄럽지만 시간이 흐르면 흉탄에 멈춘 젊은 심장과 그를 보낸 부모의 가슴은 함께 썩어갈 것이다. 그냥 또 세월호처럼 잊혀질 것이다.



이정재 논설위원·경제연구소 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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