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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 실망이야 … 주식형 펀드 환매 행렬

중앙일보 2014.06.26 00:11 경제 3면 지면보기
회사원 정기영(29)씨는 지난 3년간 매월 30만원씩 투자해온 국내 주식형 인덱스 펀드 환매 시점을 보고 있다. 2011년 은행 직원이 “주가는 오르게 마련이니 장기 투자하면 적금보다 낫다”며 추천해준 펀드였다. 하지만 정씨의 펀드 수익률은 0%를 기준으로 지수 등락에 따라 플러스와 마이너스를 오가는 수준이다. 그는 “시장이 횡보하는 상황에서 인덱스 펀드는 잘못된 선택이었다”며 “지수가 좀 오르면 환매해 인터넷 전용 적금으로 갈아탈 생각”이라고 말했다.


2007년 코스피 2000 이후 답보
'단기 등락, 장기 상향' 믿음 깨져
올들어 설정액 80조원 회복 못해
여윳돈 단기 MMF 몰려 33% 증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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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건강보조식품 대리점을 운영하는 이영자(60)씨도 5년간 매달 30만원씩 적립해온 가치주 펀드를 지난달 환매했다. 누적 수익률 17% 수준으로 나쁜 편은 아니었지만 나이가 걸렸다. 이씨는 “5년 전에 비해 가게 매출이 준 데다 나이도 적지 않아 원금 손실 위험이 높은 주식형 펀드보다는 안정성이 높은 상품에 더 끌린다”고 말했다. 그는 환매한 자금을 채권형 펀드와 저축성 보험에 나눠 투자했다.



 투자자들의 펀드 환매가 이어지면서 주식형 펀드 순자산이 올해 들어 80조원 선을 회복하지 못하고 있다. 국내 주식형 펀드가 줄어든 게 가장 큰 원인이다. 국내 주식형 펀드 순자산은 지난달 59조2000억원을 기록, 2009년 4월 이후 처음으로 60조원 아래로 떨어졌다.



 투자자들이 국내 주식형 펀드를 외면하는 건 실망감 때문이다. 증권시장이 박스권에 갇히면서 재미를 본 투자자가 없다는 얘기다. 코스피지수가 처음으로 2000 선을 돌파한 건 2007년 7월 25일, 그 뒤 7년가량 지났지만 여전히 지수는 2000 선 안팎을 횡보하고 있다. 25일 코스피지수는 1981.77로, 만약 이 기간 인덱스 펀드에 투자했다면 수익률은 -1.1% 수준이다. ‘단기적으론 등락이 있지만 장기적으로 주식시장은 우상향한다’는 믿음이 깨진 셈이다.



 그렇다고 액티브 펀드를 선택하기도 쉽지 않다. 횡보장에서도 매니저들이 오를 만한 종목을 골라 담아 수익을 내는 게 액티브 펀드라지만, 실제 수익률을 보면 이 말이 무색하다. 펀드평가사 제로인에 따르면 지난 23일 현재 연초 이후 일반 액티브 펀드 수익률은 -1.35%. 같은 기간 2.15% 하락한 코스피지수보단 나은 성적이지만 투자자들이 만족할 만한 수준은 아니다. 황윤아 제로인 연구원은 “시장 전체가 지지부진하면 액티브 펀드 역시 선전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개인투자자들의 투자 여력이 예전 같지 않은 것도 원인이다. 한국개발연구원(KDI)에 따르면 2013년 현재 우리나라 국내총생산(GDP) 대비 가계부채 비중은 85.6%다. 김영인 KDI 연구원은 “85% 수준이면 부채가 소비와 경제 성장 잠재력을 약화시키는 임계치”라며 “특히 부채 가구 대부분이 유동성이 낮은 부동산에 편중된 자산구조를 가지고 있어 대출을 새로운 대출로 갚는 차환 위험이 크다”고 말했다. 대출 갚기도 여의치 않다 보니 투자는 꿈도 못 꾸는 상황이란 소리다. 김재칠 자본시장연구원 선임연구위원도 “2007년 이후 가계 자산 구성을 보면 주식과 펀드 비중은 줄고 전월세 보증금 비중은 늘고 있다”며 “여기에 퇴직 준비를 위한 연금 자산도 늘면서 위험 자산에 투자할 여력이 줄었다”고 설명했다.



 펀드 환매 행렬이 이어지면서 대형사도 어려움을 겪고 있다. 공모 펀드 시장 3위 사업자인 KB자산운용에선 올 들어 총 6780억원(공모펀드 기준)이 빠져나갔다. 한 운용사 관계자는 “주식시장에 대한 기대 수익률이 낮아지면서 수익을 잘 내는 펀드도 오래 묵히기보다 지수가 어느 정도 오르면 환매하는 식의 투자 패턴이 자리 잡았다”며 “대형사도 버티기 어려운 상황”이라고 말했다.



 주식시장이 방향성을 찾지 못하자 여윳돈은 단기금융상품으로 몰린다. 2011년 5월 58조7000억원 수준이던 머니마켓펀드(MMF)는 올 5월 78조3000억원 규모로 33% 늘었다. 아예 주식시장을 떠나 대체 투자상품을 선택하는 투자자도 많아졌다. 2011년 1월 각각 14조1000억원, 15조9000억원 수준이던 부동산펀드와 특별자산펀드는 올 5월 25조9000억원, 27조원 규모로 3년여 사이 70~80% 성장했다.



정선언·이한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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