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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보균 칼럼] 문창극 드라마

중앙일보 2014.06.26 00:07 종합 31면 지면보기
박보균
대기자
문창극은 퇴장했다. 그는 24일 총리 후보직을 반납했다. 감흥이 엇갈린다. 허탈과 아쉬움, 여유와 만족감. 그에 대한 찬반 대립은 거칠다. 감정은 충돌한다.



 그의 퇴로는 외롭지 않다. 민심은 달라져 갔다. 반전 흐름이 형성됐다. 조계종 원로 월주 스님은 명쾌했다. “국민은 진실을 알 권리가 있다. 청문회에서 국민이 판단하게 해야 한다”-.



 그에게 드리운 친일의 그림자는 밀려나고 있었다. 20일 밤 MBC ‘긴급대담’은 결정적이었다. 시청자 다수는 KBS 뉴스(11일)의 왜곡을 간파했다. 그 보도는 거두절미와 비틀기다. 그를 향한 야유의 근거는 허물어져 갔다. 여론 변화의 분기점이다. 그 순간의 자진사퇴는 역설이다.



 문창극의 방어력은 인상적이었다. 초기에 그는 고군분투했다. 그는 쉽게 낙담하지 않았다. 그는 자신의 드라마를 만들어 갔다. 그 힘은 진실에 대한 믿음이다.



 문창극 논쟁은 정보시장의 문제점을 드러냈다. 낙인찍기는 유효했다. 낙인찍기는 간단하면서 음모적이다. 그 작업의 출발은 사실의 조각내기다. 그 단편적 사실에 거짓을 섞는다. 그것을 틀 속에 넣는다. 친일 프레임은 매력적이다. 그 정보가 유통된다. 선정과 편향의 이야기가 진실을 압도한다.



 문창극 강연 주제는 ‘시련과 기회를 주신 하나님’이다. 조선말 양반의 게으름과 민중 수탈은 두드러졌다. 그는 그 상식을 기독교 언어와 방식으로 언급했다. 교회의 언어는 비기독교인에게 낯설다. 어떤 대목은 부담스럽다. 하지만 전체 내용은 공감대를 이룬다. 고난을 이긴 한국인의 저력을 말했기 때문이다.



 그의 강연은 글쓰기 식이다. 기승전결에 따른 70분이다. KBS 보도는 2분이다. 폭로성 보도는 위력적이다. 인격 파괴의 위험이 따른다. 전체 맥락은 유지돼야 한다. 반론이 있어야 한다. KBS는 편성 원칙을 무시했다. 문창극 보도는 심하게 일그러졌다. 그는 친일과 반민족의 틀에 갇혔다.



 문창극 논쟁에 어이없는 장면도 있었다. 문창극 비토 인사의 국민 무시다. MBC 대담 중간에 강연 동영상이 27분쯤 방영됐다. 패널 토론이 이어졌다. “귀한 시간에 저런 동영상을 저렇게 오래 틀어도 좋은지 사실 잘 모르겠고요”(손석춘 건국대 교수). 반박이 나왔다. “KBS가 발췌해 트는 건 되고, 동영상 전체를 MBC가 틀어선 안 된다고요.”(홍성걸 국민대 교수)



 상당수 시청자는 기막혀 했다. 인터넷 공간에서 화도 냈다. “(손석춘 발언은) 국민 우롱이다”-. 여론 물줄기는 바뀌었다. 그 발언은 충격적이다. 낙인과 속단의 위험성을 실감시켰다. 그 장면은 교훈으로 남을 것이다.



 문창극 드라마는 새누리당 내면을 보여줬다. 무기력과 기회주의, 웰빙의 체질은 깊어졌다. 정치인은 여론을 중시해야 한다. 하지만 무분별한 여론 편승은 무책임 정치다. 때로는 여론에 맞서야 한다. 설득하고 고쳐야 한다. 그것이 진정한 소통이다. 거기서 용기와 신념의 리더십이 등장한다. 그런 환경에서 정치 스타는 탄생한다. 새누리당 대처는 어설펐다. 야당에게 약점이 잡혔다.



 문창극 드라마는 아쉬움을 남겼다. 청문회는 무산됐다. 그동안 대부분 청문회는 개인 신상 털기에 머물렀다. 위장전입, 병역비리, 논문표절을 둘러싼 공방이었다. 후보자는 고개를 숙였다. 국회의원의 고함과 윽박지르기가 난무했다.



 장관 자질의 핵심은 역사관이다. 격동의 한국사를 어떻게 보느냐가 핵심이다. 그것은 권력 정체성을 형성한다. 박근혜 정권 출범 때다. 청문회 단골 질문은 5·16이었다. 쿠데타냐, 혁명이냐를 물었다. 대부분 장관들은 입을 다물었다. “쿠데타지만 산업화로 풍요를 이뤘다”(당시 남재준 국정원장 후보)는 답변만 달랐다.



그런 소신 부족은 위기관리에 취약하다. 세월호 참사 때 장관들의 집단 무능은 예고된 것이다. 그들은 받아쓰기와 보고서 제출에 유능했다.



 문창극 청문회는 달랐을 것이다. 역사 논쟁의 치열한 무대가 됐을 것이다. 친일파, 조선시대 평가, 친미와 반미, 한국전쟁과 북한 다루기, 중국과 한반도, 경제 민주화와 개인 자립심이 주제였을 것이다. 그것은 정치 수준을 높일 기회였다. 국회 역량을 가늠할 무대이기도 했다. 국회의원의 역사의식, 표현 능력은 어느 정도일까. 무대는 차려지지 못했다.



 문창극 사퇴 회견은 비장했다. 회견문은 자유민주주의, 인권, 천부 권리에 대한 소신을 담았다. 그의 칼럼(중앙일보 주필·대기자 때 게재)처럼 선명했다. 그는 찬반과 논란을 피하지 않았다. 그는 양비(兩非)와 양시(兩是)의 글을 싫어했다. 그만큼 14일간의 문창극 드라마는 강렬했다. 그 드라마는 끝나지 않았다.



박보균 대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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