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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행복한 삶 찾으려 안정된 직장 그만두고 도전

중앙일보 2014.06.26 00:04 8면 지면보기
네일리스트 김용호씨가 자신이 만든 네일아트 작품을 보여주고 있다. 채원상 기자


경기 침체가 지속될수록 립스틱 판매량이 급증해 ‘립스틱 효과’라는 말이 생겼다. 그런데 언제부턴가 립스틱을 밀어내고 네일 에나멜(Nail enamel)이 그 자리를 차지하기 시작했다. 저렴한 비용으로 기분을 전환하는 데 효과가 크기 때문이다. 덩달아 네일숍도 많아졌다. 천안·아산 지역에도 수많은 네일숍이 있지만 남자 네일리스트는 단 두 명뿐이다. 이 중 김용호(35) 네일리스트를 만나 사는 이야기를 들었다.

남자 네일리스트 김용호씨



김씨를 만나기 위해 찾아간 곳은 천안시 불당동에 위치한 네일숍 ‘젤로비’다. 김씨는 지난해 3월 이곳에 일본식 젤네일 전문숍을 열었다. 깔끔하게 정리된 숍 내부에는 다양한 네일아트 작품이 전시돼 있었고 소녀시대와 에일리·스피카 같은 유명 연예인들의 사인도 눈에 띄었다. 유명 연예인들이 네일아트를 하려고 이곳까지 왔을 리는 없을 텐데 저 사인은 무얼까 싶은 생각이 들었다.



 “사실 제가 이곳에 숍을 내기 전까지 서울 압구정동 숍에서 일했어요. 그때 연예인들에게 네일아트를 많이 해줬죠.” 나는 반사적으로 “그런데 천안엔 왜 오신 거예요?”라고 물었다. 더 유명한 네일리스트가 되기 위해선 분명 서울이 나았을 텐데 말이다. 그러자 김씨는 “부모님 곁에서 살고 싶은 마음과 새로운 시장 개척에 대한 욕심으로 천안에 내려왔다”고 했다.



편견 또한 관심이라 생각하고 극복



김씨가 네일리스트가 되려고 마음먹은 건 서른 살이 되던 해였다. 대학에서 관광학을 전공하고 국내 굴지의 여행사에 입사했지만 일을 하며 ‘행복’을 찾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입사한 지 5년쯤 되니까 일이 손에 익고 나름 노하우도 생겼어요. 일은 할 만했죠. 그런데 재미가 없더라고요. 흥이 나서 일을 하는 게 아니라 그냥 직장인으로 사는 느낌이랄까요?”



그래서 김씨는 모험을 해보기로 했다. 스스로가 가장 행복해질 수 있는 일을 찾기로 한 것이다. 그때 우연찮게 네일아트가 눈에 들어왔고 ‘이거다’ 싶었다. 김씨는 학창시절 그림 그리는 것을 좋아했고 상도 꽤나 받았다.



 그래서 미대 진학을 꿈꾼 적도 있었지만 상황이 여의치 않아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네일아트를 보니 다시 그때의 열망이 되살아나기 시작했다. 그래서 회사에 사표를 내고 네일 학원에 등록했다.



네일 학원에 다니면서 김씨는 모처럼 사는 즐거움을 느꼈다. 새로운 기술을 배우고, 새로운 디자인을 생각해 내고 표현하는 것이 행복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김씨를 보는 시선들은 그리 곱지 않았다.



 “네일 학원에 남자들이 있긴 하지만 대부분이 아주 어린 나이예요. 그런데 저는 나이도 있는 데다 직장을 때려치우고 네일아트를 한다고 하니까 다들 의아해 하시더라고요. 약간의 편견을 갖는 이들도 있고요.”



 그러나 그것은 시작일 뿐이었다. 처음 네일아트를 배울 때부터 지금까지 줄곧 편견이 그를 따라다니기 때문이다.



 “네일리스트는 기술직이고 전문직이에요. 그런데 대학을 나오지 않아 변변한 직장을 갖지 못해서 배우는 기술쯤으로 여기는 분들이 있어요. 또 투박한 남자가 얼마나 잘할 수 있을까 하고 의심부터 하는 분들도 있고요.”



 처음엔 그 모든 편견들에 신경이 쓰였다. 그런데 차츰 시간이 지나면서 그런 편견 또한 관심이라고 생각하기 시작했다. 더불어 편견을 깨는 것이 자신에게 주어진 몫이라 느꼈다.



“연구하는 네일리스트를 꿈꾼다”



네일아트는 유행에 민감하다. 그래서 김씨는 네일 잡지뿐 아니라 패션 잡지도 꼼꼼하게 본다. 일본에서 활동하는 일본인 네일리스트들과의 교류를 통해 네일아트의 변화를 읽는 것도 김씨에게는 중요한 일이다.



 김씨는 연구하는 네일리스트가 되기 위해 오늘도 노력 중이다. 작게는 고객 만족을 위해, 크게는 한국 젤네일 문화의 발전을 위해서.



문의 041-566-8838

http://blog.naver.com/gelobe



윤현주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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