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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먹겠습니다, 사랑합니다"

중앙일보 2014.06.26 00:04 6면 지면보기


1950~60년대 있었던 추억이다. 그 시절엔 ‘보릿고개’라는 말이 있었다. 우리 부모들이 온갖 풍파와 가난을 겪으며 이겨낸 주인공이다.

어머니가 만든 마지막 쑥떡



따뜻한 봄 어느 날. 갈 길이 멀었다. 비록 옷은 남루했지만 춥지도 덥지도 않았으니 다행이다. 배가 몹시 고팠다. 엄마·아빠도 배를 움켜쥐고 정처 없이 걷고 또 걸었다. 아무 기약도 없다. 지금처럼 교통수단도 수월치 않았고 식량도 넉넉지 못한 시절. 동생은 엄마·아빠의 손을 잡았고, 형은 혼자 걸었다. 형은 컸으니까 혼자 걸을 수 있었다.



석양이 뉘엿뉘엿한 언덕을 넘어서자 어린 동생이 배고프다며 울기 시작했다. 엄마가 비상식량으로 보따리 깊숙이 넣어둔 쑥떡을 달라고 울고 있는 것이다. 형도 힘들고 허기가 졌지만 참았다.



엄마는 쑥떡을 꺼내 우는 동생에게만 주고 형에겐 주지 않았다. 형이 미워서가 아니다. 울지 않아서도 아니다. 아껴야만 했기 때문이다. 형은 눈물이 났다. 그러나 형으로서 참을 수밖에 없어 굶어야 했다. 형은 뼈에 사무치도록 배고픈 고생을 부모 세대와 함께 맛본 것이다.



쌀가루도 아닌 밀가루가 약간 들어 있는 쑥으로만 만든 것이 쑥개떡이다. 부모 마음은 더 아팠을 것이다.



어른이 돼 어머니가 세상을 떠나기 직전이었다. 그 쑥떡을 자식에게 먹이려고 어머니는 차고지 안 볏섬 위에 쑥떡 뭉치를 올려놓았다.



그러나 자식은 보지 못했다. 직장에 쫓겨, 시간에 쫓겨 아침이면 또 가버렸으니 어머니는 자식을 만날 수가 없었다. 볏섬 위에 올려놓으면 제놈이 집어먹겠지 했는데 자식은 끝내 그걸 보지 못한 것이다. 쌀가루로 정성껏 만든 쑥떡은 날이 갈수록 말라비틀어졌다. 돌덩이처럼 시커먼 괴물덩이가 된 채 비닐봉지 안에서 주인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것을 뒤늦게 본 순간 나는 어머니의 냄새를 느낄 수 있었다.



내게 주려고 한 것임을 단번에 알아차렸다.



내 눈에선 눈물이 흘렀다. 어머니는 얼마 전 세상을 떠났고, 땅속에 묻혀 있었기 때문이다. 죽는 순간까지 자식이 좋아하는 쑥떡을 전해주고 싶었던 것이 우리 어머니의 마음이었다.



어머니 감사합니다.



나는 눈물이 복받치는 것을 견디지 못해 쑥떡 뭉치를 볏단이 무성한 논 가운데로 내동댕이쳤다.



더 이상 기억하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어머니의 영혼 앞에 자식은 눈물로 보답했다. 그리고 중얼거렸다.



“어머니, 왜 이토록 자식의 마음을 아프게 하나요. ‘어머니 잘 먹겠어요’라고 말만 했어도 소리 없는 눈물을 흘리지 않았을 텐데….”



어머니 사랑합니다.



아들 이광용

아산시 영인면 아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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