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웃기면서 슬프다 … 막장·비약 없는 '서민 동화'

중앙일보 2014.06.25 01:20 종합 23면 지면보기
‘유나의 거리’의 김옥빈(왼쪽)과 이희준 커플. 가진 것 하나 없지만 당당한 이희준은 김옥빈을 소매치기의 덫에서 구해내려 한다. 가난하지만 좌절하지 않고 사랑 속에서 희망을 찾는 청춘의 모습을 보여준다. [사진 JTBC]
“사랑따위로 위로가 안 될 만큼


JTBC 월화극 '유나의 거리'
김운경 작가 내공 묻어나

 외로운 날에는 그 친굴 부르네



 나보다 훨씬 나이가 많은



 그 친구는 안해 본 고생이 없다네” (‘유나의 거리’ OST ‘사랑 따위로’)



 ‘언제 때 김운경인데’ 혹은 ‘아직도 김운경이?’란 말은 당분간 하지 않는 게 좋겠다.



 ‘서울의 달’ ‘서울 뚝배기’ ‘한지붕 세가족’ ‘옥이 이모’ 등으로 1990년대를 풍미한 서민드라마의 간판 작가 김운경(60). 그가 다시 통했다. ‘짝패’의 임태우 PD와 손 잡고 만든 JTBC 월화 드라마 ‘유나의 거리’(밤 9시50분 방송)다.



최근 수 년 간의 부진을 씻고 김운경표 페이소스(비애감)를 제대로 선보였다. 중견 작가다운 탄탄한 캐릭터와 사람 냄새 물씬 나는 대본. 꼬질꼬질한 인생사에 키들대다가 어쩐지 마음 한구석이 짠해지는 ‘웃픈(웃기고 슬픈)’ 드라마다.



 시청률은 2% 내외지만 인터넷 반응은 뜨겁다. 시청자 게시판에는 “진짜 드라마다운 드라마” “‘전원일기’처럼 오래 했으면 좋겠다” “이해 안 되는 시청률!” 이란 반응이 잇따른다. 전작 ‘밀회’와 또 다른 방식으로 JTBC 드라마의 경쟁력을 보여준다는 평이다.



 특히 최근 지상파 경쟁작들이 온통 소시오패스(반사회적 인격장애) 급으로, 악마적인 상류층 비리 일색인 것과 차별화된다. ‘쓰리데이즈’ ‘빅맨’ ‘골든크로스’ 등으로 이어지는 권력형 비리 드라마에 두들겨맞은 시청자들을 따뜻하게 위무하는 느낌이다.



 무대는 서울 서민 동네의 한 다세대 가구. 전직 조폭, 콜라텍 사장, 일용직 노동자, 소매치기범, 꽃뱀, 만년 백수 등이 모여 산다. 내세울 것 없는 삼류 인생이다. 2000원짜리 가짜 약을 1만원에 팔아넘긴 것으로 쇠고랑을 차고 티격태격한다. 조폭 사장은 백수에게 쩔쩔 맨다. 남루하지만 유쾌한 인생 만화경이 펼쳐진다.



 자칫 낡아 보이는 설정을 현대적 느낌으로 가공해낸 연출력이 돋보인다. 배우들의 연기 호흡도 일품. 전설적 소매치기범의 딸로 소매치기의 덫에서 헤어나오지 못하는 유나 역을 맡은 김옥빈은 모처럼 무심한 매력으로, 강한 존재감을 발휘한다. 백수지만 못하는 게 없고, 가진 것 하나 없이도 당당한 창만(이희준)은, 유나를 구해내기 위해 동분서주한다. 두 사람의 까칠하면서도 은근한 로맨스에 이문식·정종준·조희봉 등 주변 인물들의 탄탄한 생활 연기가 맞물린다. 작은 배역들까지가 다 나름의 사연이 있고 그만큼 진솔하다. 재벌도, 막장도, 소시오패스도 없는 ‘21세기 서울의 달’. 가난하지만 비굴하거나 좌절하지 않고, 서로를 따뜻한 온기로 싸안는 진짜 서민 공동체를 위한 ‘신 서민 동화’다.



 블루스 주자 ‘씨없는 수박 김대중’의 ‘사랑 따위로’, 재즈 밴드 ‘윈터 플레이’ 혜원이 부르는 ‘함정’ 등 OST도 귀를 붙든다. 뻔한 가요 대신 우리 삶을 응축한 가사가 각각 창만과 유나의 주제가처럼 들린다.



 “니가 나를 좋아한다는 것은 함정



 니가 나를 케어한다는 말은 함정



 사랑은 그래 속는 셈 믿어보자치면



 바로 거짓말처럼 보란듯이 사라지는 함정”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은 다 함정” (OST ‘함정’)



양성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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