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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홍준의 줌마저씨 敎육 공感] 학생·학부모 무시, 해도 너무한다

중앙일보 2014.06.23 00:10 종합 28면 지면보기
강홍준
논설위원
초등학교 3학년 무렵 아이들의 고민은 철자법에 맞춰 글쓰기다. 한 학급의 3분의 1 정도는 정확하게 쓸 줄 알지만 나머지는 쉽지 않다고 초등 교사들은 말한다. 그런 아이들이 수업시간에 ‘해돋이’라고 쓰고 ‘해도지’라 읽는다는 걸 배운다. 옛날 같으면 초등 고학년이나 중학교에 가서야 배웠을 ‘구개음화’가 현재는 초등 3학년 단계에서 배우도록 돼 있다. 철자법에 맞게 쓰는 것조차 버거운 아이들은 이런 교육에 더욱 혼란스러워한다. “굳이라고 쓰는 게 맞아? 구지가 맞아?”



 중학생 아이들은 요즘 같은 기말고사 기간이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든다. 도덕이나 사회 같은 과목이 집중이수제 대상이 되면서 한두 학기에 3년 동안 배워야 할 내용을 모두 소화해야 하니 시험 범위는 넓고, 해야 할 공부는 많다. 100쪽이 넘는 교과서 분량을 보면 아무것도 대신 해줄 수 없는 부모조차 절망스럽다.



 고교는 또 어떤가. 수업 시간표엔 다 적혀 있는 화법과 작문, 독서와 토론 등 선택과목 시간엔 EBS 문제 풀이 시간이다. 고교를 졸업한 대학생에게 설문조사를 해보면 셋 중에 한 명은 “고교에 선택과목이 있긴 한데 배워본 적 없다”고 응답할 정도다.



 이런 말도 안 되는 장면이 나오는 이유는 모두 교육과정에 있다. 교육과정이란 교육의 설계도와 같다. 설계도가 제대로 안 되면 교육이 제대로 될 수 없다. 이명박 정부가 2009년 뜯어고친 교육과정 탓에 수많은 학생과 학부모들이 골치를 썩는데 박근혜 정부가 또 교육과정을 손댄단다. 다음 달 중 개정의 전체 방향(총론)을 발표하기로 했다.



 잘못된 걸 바로잡는 개정이라면 나쁠 게 없다. 문제는 이 과정에서 왜 바꿔야 하는지, 지금까지 잘못은 무엇이었는지 학부모나 학생에게 설명해주는 사람은 없다는 점이다. 정부는 각계 인사들을 모아 교육과정 개정을 위한 자문회의를 만들었으나 실제 작업은 교육학과 교수·교사·공무원 등에 의해 이뤄지고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고치는 사람이 계속 비슷한 사람들이다. 2009년엔 학생들의 선택권을 주기 위해 선택형 교육과정을 해야 한다고 주장했던 교육 전문가가 올해는 문·이과 통합을 위해 공통 과목을 둬야 한다고 한다.



 당하는 건 학생이고, 속 끓이는 건 학부모다. 이들에게 큰 영향을 미치는 중대사안인 만큼 속 시원하게 설명 좀 해주면 안 될까. 교육과정 바꾸고, 교과서 고치고, 수능까지 손대는 교육계 인사, 담당 공무원분들께 부탁드리고 싶다. 교육과정 개정에 학생·학부모들의 목소리를 좀 반영해달라.



  강홍준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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