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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련한 추억 모아 모아 예술촌 변신하는 달동네

중앙선데이 2014.06.21 02:33 380호 8면 지면보기
1 마을 박물관의 메인 전시관. 최홍규 관장이 벽화 대신 철사로 별꽃과 새조롱이를 만들었다.
2‘최가 철물점’에 앉아 있는 최홍규 관장
인생은 때로, 사실은 자주, 예기치 않은 방향으로 흘러간다. 꿈 많던 열여덟 청년 최홍규가 여러 가지 사정으로 대학 진학을 포기한 것도, 그래서 을지로 2가에 있던 철물점 순평금속에서 못과 철사 배달부터 시작한 것도, 그러면서 황학동 벼룩시장에서 녹슨 자물쇠 하나에 마음이 동한 것도 원래부터 계획했던 일은 아니었다.

최홍규 쇳대박물관장의 이화동 마을 박물관 프로젝트

그로부터 30년. 국내 최고의 철물 디자이너로 꼽히며 강남의 인테리어 유행을 이끄는 ‘최가 철물점’ 대표이자 틈틈이 모아온 엄청난 규모의 철물 컬렉션으로 꾸민 ‘쇳대박물관’의 관장은 2006년 어느 날 색다른 일에 엮이게 된다. 소외계층 미술 프로젝트에 작가로 참여하게 된 것. 장소는 박물관 바로 뒤인 이화동 일대 달동네였다.

재개발 열기로 뒤숭숭한 이곳에서 그가 본 것은 어릴 적 살던 구파발 근처 마을의 정경이었다. 꼬불꼬불한 골목이, 가파른 계단과 석축이, 그리고 그 사이사이에 꽃을 심은 작은 ‘고무 다라이’들이 추억처럼 앉아 있었다. 거리와 현장에서 안목을 길러온 그가 보기에 이 공간은 돈만으로는 살 수 없는 보물 창고였다.

재개발 바람이 사그라든 4년 전부터 그는 작은 꿈을 품었다. 147세대로 구성된 이 ‘마을’을 살아 있는 ‘박물관’으로 만들고 싶다는, 이름하여 ‘이화동 마을 박물관’ 프로젝트다. 그 프로젝트가 올해로 두 번째 걸음을 내디뎠다.

4 ‘수작’ 내부. 봉제 관련 철물을 모아놓았다.
3 쇳대박물관 외관. 건축가 승효상의 작품이다
지난 14일 오전 서울 대학로 쇳대박물관 앞. ‘이화동 마을 박물관’ 전시 투어가 시작됐다. 통의동에서 복합문화공간 보안여관을 운영하는 최성우 일맥문화재단 이사장, 부산에서 감천문화마을을 연구하고 있는 우신근 부산대 건축학과 교수 등이 함께 했다. 최홍규 관장이 12장짜리 티켓 묶음을 나눠주었다. 한 묶음이 2000원인데, 12곳의 전시공간을 돌아볼 수 있다(전시는 22일까지. 쇳대박물관 관람료는 별도). 지난해 8곳에서 올해 4곳이 더 늘어났다. 이 중 최 관장이 직접 운영하는 곳이 5곳이다. 쇳대박물관을 비롯해 봉제 박물관 ‘수작’, 대장간 박물관 ‘최가 철물점’, 마을 사람들의 삶의 흔적을 모아놓은 ‘이화동 마을 박물관’, 그리고 와인 오프너 및 열쇠 박물관인 ‘개뿔’이다.

“아무래도 혼자보다는 뜻 맞는 사람들과 힘을 합치는 것이 좋을 것 같아 이런저런 자리에서 얘기를 했더니 건축가 승효상 선생님이 바로 참가 의사를 밝히셨어요. 승 선생님 부인이자 조각보 공예가인 최덕주씨의 조각보를 감상할 수 있는 ‘월류헌’이 그곳입니다. 그런데 이곳만은 미리 예약해야 관람이 가능합니다. 또 신사동 가로수길에서 칠보 공방을 운영하던 김미연 작가도 이곳으로 자리를 옮겨 ‘갤러리 그美’를 냈죠.”

골목마다 그려진 벽화 앞에서 중국인 관광객과 나들이 나온 가족들은 포즈를 취하느라 여념이 없다. 특히 탤런트 이승기가 오락프로그램 ‘1박2일’에 나온 이후 화제가 된 하얀 날개 벽화 앞에는 이미 줄이 길었다.

“저는 이화동이 단지 벽화 마을로만 불리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벽화만 있는 게 아니니까요. 이곳은 시간여행을 할 수 있는 공간입니다. 할머니 한 분 한 분도 모두 훌륭한 문화유산이에요. 그들과 이야기도 나누고, 또 찬찬히 보고 즐기며 느낄 수 있는 ‘꺼리’를 계속 마련하는 중입니다.”

5‘수작’ 입구 6 각종 재봉틀 7 동대문 평화시장에서 얻어온 색색 실패와 다리미
8 중절모 전용 다리미
미니 다리미와 미싱, 옛날 봉제공장의 추억
아담한 회색 현수막이 붙어 있는 ‘수작’에 도착했다. “어머, 깜찍해라.” 먼저 들어간 여성 관람객들의 탄성이 새어 나왔다. 주먹만한 미니 다리미와 인두가 나란히 진열돼 있었다. 그 옆에는 형형색색 실패 꾸러미와 작은 미싱들 역시 가지런하게 모여 있었다. 이 일대에 남아있던 소규모 봉제 공장을 떠올리게 하는 전시였다. 한자로는 ‘酬酌’이라고 쓰여 있지만 실제로는 여인들의 노력이 담긴 ‘手作’이라는 의미로 와닿았다. 압권은 중절모에 딱 맞는 크기로 만들어진 중절모 다리미. 재단사들이 일을 연속적으로 하기 위해 다리미를 여럿 달궈놓을 수 있게 만든 주철 난로 역시 흥미로웠다. 2층은 게스트 하우스로 꾸며 놓았다. 서울대병원과 현대그룹 본사 너머 인왕산까지 한눈에 들어왔다. 색다른 시야가 두뇌의 안 쓰던 곳을 자극했다.

이태호 경희대 교수가 찍은 사진을 전시하는 ‘아트스페이스 낙산’을 지나 최 관장이 “진짜 예쁘다”고 추천한 ‘월류헌’은 안타깝게도 주인 내외의 해외 출장으로 들어가질 못했다.

‘최가 철물점’은 집안을 막 뜯어낸 듯한 거친 분위기가 각종 쇠 컬렉션과 근사한 조화를 이루고 있었다. 디자이너 진태옥의 블라우스와 사진작가 구본창의 잠자리를 철사로 재현한 최 관장의 작품을 지나면 각종 대패와 모루(대장간에서 불린 쇠를 올려놓고 두드릴 때 받침으로 쓰는 쇳덩이)가 보인다. 떼다 만 듯한 벽면에는 1979년 8월 16일자 한국일보 1면이 붙어 있다. ‘難局일수록 勞使가 믿고 의지해야’라는 제목으로 당시 박정희 대통령의 광복절 경축사가 실려 있었다.

그때 최 관장이 “위를 올려 보시라”고 말했다. 한옥 마루에서 바람이 통하도록 문을 걸어놓는 들쇠가 천장에 빽빽하게 매달려 있었다. “저 쇳덩어리에 문양 새겨놓은 것 좀 보세요. 외로 꼬다가 바로 꼬여 있죠? 저게 바로 선조들의 미학입니다.”

설명을 하던 최 관장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여기 마당 가운데 있는 게 살구나무거든요. 그런데 열매가 대부분 사라졌어요. 어제 하루 쉬었더니 누가 막대기로 따갔대요. 아침마다 화초에 물주고 열매 익어가는 걸 보는 게 낙이었는데, 이럴 땐 정말 화가 나요.”

9 주민들이 패트병에 키우는 고구마 10 마을 박물관 내부. 주민들이 쓰던 각종 생활용품을 볼 수 있다 11 주민들의 앨범에서 추려낸 가족사진들. 옛날 생활상을 알 수 있다.
12 공방 손놀림 내부 13 공방 손놀림 입구 14 각종 가죽 재료들 15 담벼락을 뚫어 밖에서도 내부가 보일 수 있게 했다.
주민 생활사 고스란히 담긴 ‘역사 박물관’
‘이화동 마을박물관’은 메인 전시관이다. 간판 글씨는 소리꾼 장사익이 썼다. 이화동 주민들로부터 기증받은 각종 생활 도구와 사진자료로 빼곡하다. 혜화초등학교 야구부 1기로, 남대문중-보성고-한일은행 야구코치를 지낸 주민 이원석씨는 소중하게 간직하고 있던 야구장갑과 배트를 내놨다. 벽면에는 또 45년간 쓰던 양은냄비, 다양한 크기의 소쿠리와 광주리, 시어머니로부터 유일하게 받은 혼수인 주걱, 잣 까는 집게, 이불 가리는 횃대보 등이 걸려 있다.

그 옆방으로 들어가면 옛날식 다이얼 전화기 옆에 최신식 모니터가 놓여 있다. 그리고 사회 명사 13명의 명단이 보인다. ‘건축가 승효상’이라는 이름 옆에 적힌 숫자 ‘7514’를 돌리니 모니터 화면에 승씨의 인터뷰 모습이 펼쳐지고 수화기를 통해 승씨의 육성이 흘러나온다. 2층은 주민들의 가족사진을 볼 수 있는 곳이다. 한강철교·중앙청 등을 배경으로 찍은 ‘젊은 날의 초상’들을 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가죽으로 만든 슬리퍼와 누비 한복이 눈길을 끄는 김영애 가죽공예작가의 ‘공방 손놀림’을 지나면 ‘개뿔’ 뮤지엄이 나온다. “아무것도 없다는 뜻의 ‘개뿔’이지만 역설적으로 그래서 많다는 의미도 함께 담았다”고 최 관장은 설명한다.

족히 60년은 넘어 보이는 사철나무와 라일락이 단단하게 뿌리를 내린 이 2층 집은 1950년대 지어진 국민주택을 당시 설계도면 그대로 리모델링했다. 이승만 대통령을 위해 이화장을 조성하면서 이곳에 있던 불량주택들을 밀어내고 국민주택을 지은 것으로 추정된다. ‘흙벽돌로 지은 청량리 부흥주택과 달리 이곳은 이례적으로 콘크리트 블록으로 지었다’는 설명이 붙어 있다. 1층에서는 와인 오프너, 2층에서는 열쇠 컬렉션을 볼 수 있다. 2층 방에서 관람객을 맞은 것은 빅터 전축 위 LP판에서 흘러나오는 박일남의 노래 ‘고향에 찾아와도’. “고향에 찾아와도 / 그리운 고향은 아니러뇨 / 두견화 피는 언덕에 누워 / 풀피리 맞춰 불던 옛 동무여~”라는 가사가 운치 있게 울려 퍼졌다.

16 최가 철물점 외관. 창살 하나하나도 일일이 새로 제작했다.
17‘개뿔’ 1층에 전시된 와인 오프너들 18‘개뿔’ 입구 19 각종 문고리 20 2층의 빅터 전축. 옛날 LP판이 제법 있다.
“주민들 소득 생겨야 지속가능성 있어”
‘목인헌’은 서울시립대 이충기 교수가 이곳의 과거와 현재를 사진으로 비교해 놓은 곳. 전망이 특히 좋아 ‘언덕에’라는 카페도 함께 들어있다. 이곳에서 잠시 땀을 식히며 최 관장과 이야기를 나눴다. 그는 재개발 얘기는 조심스러워 하면서도 이곳이 “재개발하는 것보다 더 좋은, 서울을 대표하는 공간 브랜드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강남에서 강북으로 터전을 옮겼다.
“대치동 살다가 애들 유학 보내고 2002년 이곳으로 이사했다. 강남은 트렌디하지만 강북은 깊이가 있다.”

-왜 마을 박물관 프로젝트를 하게 됐나.
“우리의 옛 문화가 이렇게 남아 있는 공간이 너무 소중하게 느껴졌다. 이 공간을 살려내고 싶었다. 보석 같은 곳이다.”

-외지인의 활동에 대해 주민들의 반발은 없었나.
“지난 4년 동안 거의 매일 반바지 차림으로 여기서 살다시피 했다. 관절을 다쳤을 정도다. 할머니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뭐가 필요하다 하시면 슬그머니 해다 드렸다. 계단을 오르내릴 때 잡는 가드레일도 구청 측과 협의해 내가 새로 만든 것이 많다. 무늬도 산 모양, 성곽 모양, 조각보 모양으로 각각 다르게 만들고 색깔도 주위와 조화를 꾀했다. 물론 여전히 삐딱하게 보는 시선도 있다. 관광객의 소음과 쓰레기 투기 때문에 주민들이 힘든 점도 많다.”

-집도 네 채나 사서 오해할 수도 있겠다.
“모두 박물관용 공간이다. 이 프로젝트는 10년 걸릴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는데, 그 전에는 팔 수도 없고 팔 생각도 없다. 나는 부동산 투기꾼이 아니다. 만약 판다면 모든 활동을 접는다는 뜻이겠지. 양평에 복합문화공간을 지으려는 계획도 이것 때문에 다 미뤄놓은 상태다.”

-새로 들어오고 싶다는 사람은 있나.
“강원도에서 산양을 방목해 키우는 어떤 대표님과 이야기 중이다. 독특한 유제품을 생산해 팔면 괜찮을 것 같다. ‘이화동에 오면 뭔가 재미있는 게 있다’는 인식을 심어주는 것이 중요하다.”

-지자체 지원은.
“올해 팸플릿 제작비를 서울시가 도와줬다. 종로구에서도 관계 공무원과 자주 논의를 하고 있다.”

-어떤 점이 어렵나.
“이 프로젝트를 하는 사람들이 돈을 너무 많이 벌어도 안 되고 그렇다고 너무 못 벌어도 안 된다. 남들이 배 아프지 않을 정도로 버는 게 정답인 것 같다. 요즘 이 같은 ‘마을 살리기 프로젝트’가 전국에서 일어나고 있는데 성공하기 위해서는 세 가지가 있어야 한다. (일 밖에 모르는) 바보, (굳센 열정이 있는) 젊은이, (활용할 만한 네트워킹을 가진) 외지인이다.”

-주민 협의회 같은 것은 있나.
“아직 없다. 많은 주민의 마음을 움직이기 위해 열심히 노력할 따름이다.”

-어떤 곳으로 만들고 싶나.
“작지만 힘있고 소박하지만 격 있는 마을 박물관을 만들고 싶다. 사이즈는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것은 질이다.”

-지리적 장점도 있다.
“이화동은 4대문 안이다. 이웃 창신동·충신동 등과 연계하면 새로 만들어진 DDP와 동대문, 대학로를 연결하는 문화 황금 벨트가 형성되는 것이다. 이만한 공간이 없다.”

-지속가능성이 있어야 할 텐데.
“그게 가장 중요하다. 소득이 있어야 주민들이 적극적이 된다. 그래서 할머니 브랜드를 내세우는 프로젝트를 추진 중이다. 경로당 같은 곳에서 할머니들이 녹두를 사다가 전을 부쳐 파는 식이다.”

-앞으로의 계획은.
“내년에는 개최 시기를 가을로 옮긴다. 김장축제를 멋지게 해보고 싶어서다. 할머니(주민)들과 관광객이 다 함께 만드는 축제다. 재료를 구입하는 것부터 일일이 인터넷에 중계해 신뢰성을 높이고 브랜드화하는 것이다. 보쌈 김치, 백김치 등 다양한 종류를 만들 생각이다.”



최홍규 관장은 1957년 경기도 고양시 신도읍 출생. 75년 대학 진학 대신 서울 을지로에 있는 철물점에 취직했다. 집에도 잘 안 가고 인근 여관에서 숙식하며 일 배우는 재미로 살았다. “사장님 목소리까지 똑같이 따라 하려고 노력했다. 내겐 아버지 같은 분”이라고 그는 말한다. 독특한 디자인의 철물을 만드는 것으로 유명해진 ‘순평금속 최 과장’은 사장님이 별세하자 34세 때인 89년 독립해 논현동에 7평짜리 ‘최가 철물점’을 냈다. 88올림픽 이후 불어닥친 디자인 바람을 타고 폭발적으로 성장하며 강남의 인테리어 문화를 선도했다. 국내외 벼룩 시장을 돌아다니며 수집한 자물쇠·열쇠·빗장·농기구 등을 바탕으로 2003년 대학로에 국내 최초로 쇳대박물관을 건립했다. 일본 도쿄 민예관 초대전(2008)을 비롯해 뉴욕 코리아소사이어티(2009), 오사카 한국문화원(2010), 미국 와이오밍주립대 미술관(2011) 등에서 다양한 전시를 했다. 2012년 대한민국 문화예술상(대통령상)을 수상했다. 현재 서울시박물관협의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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