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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리한 차범근 예지력 이영표 예능감 안정환

중앙선데이 2014.06.21 02:45 380호 21면 지면보기
월드컵 일본과 코트디부아르 전이 끝난 뒤 축구 카페에는 ‘이영표 입터치’ 동영상이 올라왔다. 흔히 유명 선수들의 볼터치 장면들을 모아서 올리는 ‘볼터치’ 대신 그의 발언만 편집한 영상이다. ‘편파 해설’로 비난을 받기도 했지만, 코트디부아르의 동점골이 터졌을 때 나도 모르게 박수를 쳤던 본인으로서는, 그의 말처럼 편파해설이 ‘이성적으로는 공영방송에서 그러면 안 된다고 말하고 싶으나 가슴에서는 이상하게 재미있다고 느꼈다’.

컬처#: TV 3사, 월드컵 축구해설 ‘입씨름’

2002년 월드컵의 영광은 다시 보기 힘들겠지만 적어도 월드컵 해설 부문에서는 ‘어게인 2002’ 주역들의 돌풍이 세다. 전문가들의 분석력이 아무리 뛰어나다고 해도 “퍼스트 터치 때 발을 어떻게 해야 한다”거나 “드리블 후 슛할 때는 골대가 아니라 공만 쳐다봐야 한다” 같은 멘트는 선수 출신만이 해줄 수 있다. 경기가 끝나면 공격수 한두 명은 가루가 되도록 까는 팬들과는 달리 직접 뛰어본 그들이 선수를 감싸며 장점을 부각시켜 주는 점도 좋다.

무엇보다 그들의 해설은 그들의 선수 시절 우리의 옛 기억들을 자연스럽게 환기시킨다. KBS 이영표는 듣기 좋은 발음과 성실한 데이터, 그리고 무당급 예지력까지 더해져 예상을 깨고 가장 큰 돌풍을 일으키고 있다. 선수 때도 그랬다. 스타로 출발하지 못했고 눈에 번쩍 뜨이는 화려한 플레이도 아니었으나 성실한 플레이로 유럽 무대까지 진출하며 수비수로는 가장 큰 성공을 거두었다. ‘인간 문어’ ‘족집게’로 급부상하고 있지만 그는 아마도 선수 시절도 그랬고 지금도 누구보다도 많은 자료를 놓고 치밀하게 분석한 사람일 것이다. 따라서 그의 ‘예지력’은 전문가의 정확한 분석에 따른 ‘예측’이라 해야 옳다.

안정환은 해설 판에서도 여지없이 ‘하늘이 내린 스타’임을 입증했다. 어려운 가정환경, 실력보다 용모로 더 돋보였던 선수 초기, 혼자 이탈리아에서 눈물을 삼켰을 외국 시절. 그러나 그는 한국 선수 누구도 가지지 못했던 놀랄만한 센스를 하늘에서 받은 사람이었고 가장 필요할 때 그걸 터뜨려 2002년 이후 ‘판타지 스타’로 남았다. 실력과 용모, 센스, 거기에 풍운아일 수밖에 없는 여러 조건들까지 그는 원하지 않았어도 스타가 될 수밖에 없는 운명인 사람이다. 해설도 마찬가지. 대표팀 최종 평가전 때 전반전까지는 입을 꾹 다물고 있더니만 후반전 선수들을 다그치며 한마디씩 툭툭 쓴소리를 던지자마자 팬들은 환호했다. 곱상한 외모와는 달리 투박한 구박을 던지는 이 남자는 유난히 발달한 촉각으로 대중들에게 무엇이 통하는지 감지하자마자 이제 마구 “때땡큐”니 “쫑났다”니 “한국영이 김남일보다 낫다”며 거침없는 멘트를 날려 댄다. 못난 사람이 쓴소리만 한다면 듣기 싫은 잔소리가 되겠지만, 그처럼 이룰 만큼 이룬 사람의 쓴소리는 ‘아마도 선수 시절 자신에게도 저렇게 엄격한 잣대를 들이대며 단련했을 것’이라는 생각을 하게 만든다. 예능프로 3인방, 더구나 김성주 같은 휘발성 강한 목소리까지 합쳐지며 MBC 중계가 꼭 ‘라디오 스타’ 같이 지나치게 예능 프로화된다는 우려도 있긴 하다.

그럼 도대체 생중계 때는 어디를 보냐고 나에게 묻는다면, 아직은 SBS 차범근의 해설을 택한다. 한국 축구의 큰바위얼굴, 거목 같은 그가 언제 해설을 그만둘지 모르고 선수, 감독, 그리고 해설자로서 오랫동안 축구를 보고 누구보다 인간에 대한 애정과 진심이 가득한, 이제는 축구인으로서가 아니라 존경하는 사회의 어른으로서 대하게 되는 그와 경기의 순간을 같이하고 싶은 마음 때문이다. 또 다른 방송사와는 달리 평소에도 꾸준히 축구 프로그램을 해온 배성재 캐스터의 전문성과, ‘어록 영상’이 돌 정도로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그의 유머감각을 놓치기 싫기 때문이다.

아쉬운 점도 있다. 정식 해설가는 아니지만 얼굴을 내미는 박지성은 피를로, 드로그바, 제라드 등 나이 많은 선수들이 지금도 저렇게 활약하고 있는 이번 월드컵에 해설가가 아니라 주장으로 나왔어야 한다는 거다. 그의 결정을 탓하는 것이 아니라 이른 은퇴를 가져올 수밖에 없도록 몸을 혹사하는 한국 축구의 현실이 그의 부재를 통해 더 안타까워지는 것이다.

또 하나. 세 방송사 여기저기 돌려보느라 힘들어하면서 느끼는 건 아무래도 한 경기를 세 방송사가 모두 한다는 게 엄청난 전파 낭비라는 점이다. 이건 축구팬들이 재미있는 해설을 집중해서 보기 위해서라도 재고되어야 할 부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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