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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질 수 없는 것을 탐하는 비참함

중앙선데이 2014.06.21 03:07 380호 28면 지면보기
앙리 바르뷔스(Henri Barbusse·1873~1935) 파리 교외의 아니에르에서 태어나 고교 시절부터 시적 재능을 높이 평가받았다. 공무원으로 일하다 저널리스트로 활동하기도 했으며 말년에는 반전 운동에 힘을 쏟았다. 주로 인간 내면의 진실을 탐구한 작품들을 발표해 실존주의 문학의 개척자로 꼽힌다.
에드워드 호퍼의 ‘호텔 방’은 내가 아는 한 가장 외로운 그림이다. 속옷 차림의 여성이 여행용 가방도 풀지 않은 채 침대 가장자리에 앉아 있다. 무릎 위에는 책 한 권이 펼쳐져 있지만 상념에 잠겨 그저 바라만 보고 있다. 사랑하는 연인으로부터 버림받은 것일까, 그늘진 표정에는 어떤 슬픔 같은 게 배어 있다.

박정태의 고전 속 불멸의 문장과 작가 <62>『지옥』과 앙리 바르뷔스

몇 해 전 마드리드에 갔을 때 티센보르네미사 미술관에 걸려 있는 이 그림 앞에서 한 시간 넘게 멈춰 서 있었던 것은 이 슬픔 때문이었다. 모든 것이 사라져버리고 철저히 혼자로 남게 됐을 때의 절망 같은 게 느껴졌다. 나 역시 여행 중이라 그랬는지 그 외로움에 더 공감했던 것 같다. 그런데 문득 화가의 시선이 궁금해졌다. 호텔 방에는 여인 혼자 있는데 호퍼는 어디서 바라보았던 것일까? 살짝 엿보기라도 했던 것일까?

바르뷔스의 소설 『지옥(L’enfer)』은 이렇게 인생을 살짝 들여다본 작품이다. 시골에서 파리로 올라와 은행에 취직한 주인공은 낡은 호텔 방에서 하숙을 하는데, 벽에 난 작은 구멍을 통해 옆방을 몰래 볼 수 있다는 것을 발견한다. 그의 눈에 처음 들어온 사람은 하녀였다. 혼자 방에 들어와 편지를 읽고 거기에 입을 맞추는 하녀의 모습에서 그는 이 세상 누구도 엿볼 수 없는 그녀의 사랑을 목격한다.

그는 매일같이 벽에 붙어 옆방을 훔쳐본다. 매력적인 여성이 혼자 들어와 옷을 벗고, 어린 오누이가 서로 사랑을 고백하고, 두 여인이 금지된 사랑에 몸을 떤다. 그런가 하면 서로에게 원하는 것은 다르지만 육체의 욕망만으로 맺어진 불륜의 관계가 있고, 아내의 불륜을 알게 된 남편의 냉랭한 시선도 있다.

“나는 그들의 이름도 모르고 자세한 내막도 모른다. 인류가 내게 자기의 내장을 보여주고 있다. 나는 인생의 심층을 판독하고 있다. 그러나 나는 세상의 표면에서 길을 잃은 느낌이다.”

어느 날 거리로 나온 그는 한없는 혼란에 빠진다. 그리고 이 작품에서 제일 유명한, 콜린 윌슨이 『아웃사이더』에서 인용한 문장이 나온다. “나는 너무 깊게, 그러면서도 너무 많이 본다.”

『지옥』의 주인공은 이처럼 깨어나서 혼돈을 들여다보았다는 점에서 아웃사이더다. “나는 안다. 우리가 우리의 외부에 있다고 생각하는 많은 것들이 우리의 내부에 있으며, 그리고 바로 그 점이 비밀이라는 것을 말이다. 일단 베일이 벗겨지면 사물이란 단순해 보이며 지극히 단순한 것이다!”

그러고는 빗방울이 떨어지는 벤치에 앉아 문득 깨닫는다. 고독하면서도 항상 자기가 갖지 못하는 것을 탐하는 비참함이 바로 인생의 단순하고도 끔찍한 비밀이라는 사실을 말이다. “나의 아픔은, 내가 견딜 수 있는 것보다 더욱 크고 더욱 강렬한 꿈을 가졌기 때문이다. 소유하지 못하는 것을 생각하는 사람들은 불행하다!”

인간의 너무나도 적나라한 비밀 속으로 비집고 들어간 그는 이제 순교자로서의 의무를 완수하기 위해 방으로 돌아간다. 계속 들여다봐야 하는 것이다. 그의 눈앞에는 다시 허망한 인간들이 나타난다. 살 날이 며칠 남지 않은 노인, 이 노인과 결혼하는 젊은 여인, 피투성이가 되어 갓난아이를 낳는 산모….

그는 죽음을 생각한다. 죽어서 땅속에 묻히면 여덟 가지 종류의 곤충들이 차례로 몰려온다. 그렇게 3년쯤 지나면 인간의 육체는 흙으로 돌아간다. 생명의 최후 표지라고 할 수 있는 썩은 냄새마저 사라지면 이제 비탄조차 남지 않는다. 노인과 결혼했던 젊은 여인은 상복 차림으로 한 남자를 만난다. 두 사람의 입에서는 “드디어!”라는 말이 동시에 나오고, 여자는 눈물을 흘린다. “그래요, 기뻐서 울었어요.”

은행도 그만둘 정도로 열심히 구멍을 들여다보았던 그는 결국 방을 해약한다. 이제 보는 것을 끝내고 다음 날 떠나기로 한 것이다. 그는 누운 채로 옆방에서 들려오는 단조로운 목소리를 듣는다. 그가 들여다보았던 방으로 또 수많은 헛된 욕망들이 지나쳐 갈 것이다. 얽힌 육체에서 위안을 얻고 이별과 배신에 아파하겠지만 그래도 그들은 생을 사랑하고 죽음을 두려워할 것이다.

그는 신들에게서 불을 훔쳐낸 대가로 독수리에게 끊임없이 내장을 쪼이는 프로메테우스를 생각한다. “우리들 모든 인간도 욕망 때문에 똑같은 고통을 느낀다. 그렇지만 독수리나 신이 있는 게 아니다. 낙원이란 실재하지 않으며 교회의 큰 묘지로 우리를 데려가는 죽음이 있을 뿐이다. 지옥도 없고 다만 살려고 발버둥치는 생의 열광이 있을 뿐이다.”

호퍼가 엿본 ‘호텔 방’의 여인도 외롭지만 계속 살아갈 것이다. 괴로워하면서도 행복해지기를 바라는 많은 사람들처럼. 하지만 행복은 인생의 목표가 아니다. 빛과 어둠을 구별할 수 없듯이 행복과 고통도 분리할 수 없다. 이 둘을 분리해 순수한 행복을 가지려 하는 것은 꿈같은 얘기다. 인간의 삶에서 슬픔과 고통을 전부 제거해 버린다면 남는 것은 무엇일까?

낙원은 천국이 아니다. 낙원은 삶이고, 욕망을 가진 인간은 그곳에서도 불행을 느낄 테니 말이다.



박정태씨는 고려대 경제학과를 나와 서울경제신문, 한국일보 기자를 지냈다. 출판사 굿모닝북스 대표이며 북 칼럼니스트로 활동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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