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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권 후 실리 외교 하면 야당서 “친일” … 공수 바뀌면 말 바꿔

중앙선데이 2014.06.21 23:43 380호 4면 지면보기
1999년 3월 20일 방한한 오부치 전 일본 총리와 악수하는 김대중 전 대통령. 2004년 7월 21일 제주도에서 노타이 차림으로 정상회담을 한 노무현 전 대통령과 고이즈미 전 일본 총리. 2012년 8월 10일 독도를 방문한 이명박 전 대통령(사진 왼쪽부터). [중앙포토]
“우리 대통령은 왜 독도에 방문하지 않는지 국민은 의문스러워하고 있다.”

반대 진영 공격 수단으로 변질된 ‘친일 프레임’

2011년 5월 26일 홍영표 민주당 원내대변인의 논평이다. 드미트리 메드베데프 당시 러시아 대통령이 일본과 영유권 갈등을 빚어 온 북방 4도 가운데 하나인 구나시리섬 방문을 거론하며 이명박 대통령에게 독도 방문을 촉구한 것이었다. 국회 독도특위 위원장이었던 민주당 강창일 의원과 특위위원인 민주당 문학진 의원도 잇따라 “이 대통령이 국가원수 자격으로 독도에 한 번 다녀와야 한다”고 공개 요구했다.

그랬던 민주당이 1년 만에 입장을 뒤집었다. 이 대통령이 2012년 8월 10일 독도를 방문하자 이해찬 당시 민주당 대표는 “피해야 할 나쁜 통치행위”라고 비난했다. 민주당은 “진정성이 의심된다”는 논평도 했다. 민주당의 모순적 언동에 비난 여론이 거세지자 이 대표는 며칠 뒤 “독도 방문 자체는 국민들로부터 환영받을 일”이라고 물러섰다. 대일관계와 관련된 정부 정책은 일단 비판부터 하고 보는 정치권의 오랜 관행이 그대로 드러났던 셈이다. 친일의 개념 자체의 부정적인 의미 탓이 크다.

일본 이슈를 둘러싼 정치권의 정쟁은 정부 고위관리나 의원들을 상대로 한 ‘친일 논란’으로 비화되는 경우가 많다. 문창극 총리 후보자의 교회연설 가운데 일부 표현을 놓고 새정치민주연합을 비롯한 야권이 일제히 ‘친일’로 규정하며 사퇴를 요구한 것도 그런 사례다.

2012년엔 하태경 새누리당 의원이 인터넷에 독도에 관한 글을 올렸다가 친일파로 몰려 곤욕을 치렀다. 하 의원은 “국제사회에선 독도가 분쟁지역으로 인식되는 만큼 전략을 잘 짜 대처해야 한다는 취지였는데 무조건 일본 추종자로 몰더라”고 말했다. 반면 노무현 정부 시절엔 여당인 열린우리당 신기남 의원의 부친이 일제시대 헌병 오장(군 하사관급)을 지냈다는 설이 불거져 한나라당의 공격을 받았다. 사실 확인이나 검증 절차 없이 일단 ‘친일’이라는 낙인을 찍고는 이렇다 할 해명의 틈을 주지 않는 전형적인 ‘프레이밍 전술’이다.

이인호 서울대 명예교수는 “상식을 가진 사람은 일본을 극복하자는 말과 친일 하자는 말을 얼마든지 구별할 수 있다. 그런데 같은 극일론을 전개해도 우파가 하면 불륜, 좌파가 하면 로맨스가 된다”고 지적했다. 익명을 원한 한 교수도 “보수 인사가 ‘일본 문제에 현실적으로 대처하자’고 하면 진보진영에선 ‘친일파’로 몬다. 이는 진보 인사가 ‘북한과 대화하자’는 말만 해도 ‘빨갱이’나 ‘종북좌파’라 몰아붙이는 극우파와 다를 바 없다”고 했다.

친일의 개념 자체의 부정적인 의미 탓이 크다. 우리 사회에서 반일은 흔들리지 않는 사회규범이고, 그를 위반한 친일은 사회적 제재 대상으로 분류된다는 것이다.

이런 효과 때문에 정치적 의도로 써먹으려는 유혹이 늘 있기 마련이다. 야당이 되면 대일 유화정책을 비난하는 정치권 행태가 대표적이다.

DJ, 일본과 군사교류에도 합의
민주당 역시 집권 여당 시절엔 국내의 반발을 무릅쓰고 일본에 대해 실리를 추구했다. 김대중 전 대통령은 1998년 오부치 게이조(小淵惠三) 당시 일본 총리와 함께 ‘21세기 신(新) 한·일 파트너십 선언’을 내놓았다. 두 정상은 ‘불행했던 과거 역사를 극복하고 미래로 함께 간다’는 취지로 한·일 군사교류와 일본 대중문화 개방에 합의했다. 국군과 자위대 수뇌부 상호 방문과 공동 군사훈련 등 한·일 간에 군사교류를 시작한 건 국교정상화 33년 만이었다. 또 ‘왜색문화’로 금지됐던 일본 영화·가요 개방은 박정희·전두환·노태우·김영삼 대통령들도 엄두를 내지 못하던 일이었다. 당시 진보 진영은 “식민지배에 대해 진정한 사과를 받지 못한 상태에서 개방은 시기상조”라느니 “일본의 문화 식민지가 될 것”이라느니 하며 반대했지만 김 전 대통령은 개방을 관철시켰다.

결과적으론 일본 문화의 한국시장 잠식 대신 일본에 ‘한류’ 붐이 일어 한국 대중문화의 세계시장 진출을 위한 발판이 됐다. 물론 김 전 대통령의 과감한 조치는 일방적인 것은 아니었다. 오부치 전 일본 총리가 “일본이 한국 국민에게 다대한 손해와 고통을 주었다는 역사적 사실에 대해 통절한 반성과 사죄를 한다”고 밝히며 당시로선 가장 전향적인 모습을 보인 데 힘입은 것이다.

김 전 대통령 역시 오부치 전 총리에게 위안부 문제를 제기하지 않는 등 유연하게 접근했다. 당시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정대협)는 한·일 정상회담에 앞서 “오부치 총리와 만나는 자리에서 위안부 문제를 꼭 제기해 달라”고 요구했다. 하지만 김 전 대통령은 회담 뒤 일본 민간 인사들과의 만남에서 위안부 문제에 대한 생각을 언급하는 것으로 넘어갔다.

김 전 대통령의 이 같은 입장은 정부 차원에서 일본에 금전적 보상은 요구하지 않고, 진실 규명과 사과를 요구한 김영삼 정부의 노선을 이은 것으로 평가된다. 신각수 전 주일대사는 “당시엔 위안부 문제가 지금처럼 한·일 간에 심각한 논란이 되지 않았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김 전 대통령은 한·일 간에 새 시대를 열겠다는 전향적 취지에서 용단을 내린 것”이라고 말했다. 또 당시 한·일 정상회담을 취재했던 와카미야 요시부미(若宮啓文·65) 전 아사히신문 주필은 “박정희 전 대통령이 만든 몸(한·일 수교)에 반대파인 김 전 대통령이 영혼(신 한·일 파트너십 선언)을 불어넣은 점이 의미 깊다. 대일외교엔 여야가 따로 없다는 말이 어울리는 사례”라고 평가했다.

노무현 전 대통령도 2003년 취임 직후 ‘대일 신독트린’을 내놓으며 전향적인 대일정책을 폈다. ‘일본의 경제 식민지가 될 것’이란 반대에도 “나라의 장래를 위해 필요하다”며 한·일 자유무역협정(FTA) 협상을 개시했고, 김포~하네다 공항 간 직항루트를 개설했다. 특히 2004년 7월 제주도에서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郞) 일본 총리와 회담한 직후 “임기 중엔 과거사 문제를 공식 의제나 쟁점으로 제기하지 않으려 한다”고 선언했다. 친일이니, 반일이니 따지기 좋아하는 이들에겐 파격이었다. 적극적인 대일 외교를 주장하던 외교부 관료들도 “너무 나간 것 아니냐”고 우려했다.

야권, 반일 정서 자극해 지지율 관리
김대중·노무현 두 대통령의 전향적 대일 정책은 일본의 도발로 인해 집권 후반기엔 강경노선으로 회귀했다. 김 전 대통령 집권 4년차인 2001년 일본이 왜곡된 역사교과서의 검정을 통과시키자 청와대에선 “두고두고 후회하도록 하겠다”는 발언이 나왔다. 반일 여론의 비등과 함께 양국관계는 급랭했다. 노 전 대통령도 집권 3년차인 2005년 일본 시마네(島根)현이 “독도는 일본 땅”이란 주장을 조례로 통과시키자 고이즈미 총리와 만남을 거부하며 강경모드로 선회했다. 그는 임기 말까지 일본과 거리를 뒀다. 그럼에도 두 대통령이 집권 초·중반 보여준 대일 정책은 실리외교의 전형이었다는 게 전문가들의 일치된 평가다. 외교부 동북아국장을 지낸 조세영 동서대 특임교수는 “보수·진보 정당을 막론하고 집권하면 일본에 대해 현실주의자가 돼 실리적으로 접근하는 반면 선거에 져 야당이 되면 무조건 정부를 공격하는 소재로 대일 정책을 이용하는 경향이 뚜렷하다”고 말했다.

일본은 유사시 한반도에 파견될 미군의 주둔기지다. 한반도 내에 있는 미군의 병력이나 화력은 주일 미군에 비하면 일부에 불과하다. 경제적으론 한국과 일본은 서로가 서로에게 세 번째로 큰 수출 상대국이다. 1965년 한·일 국교 정상화 이후 49년간 양국의 교역규모는 430배 증가했다. 또 현재 매년 한국을 찾는 외국인 1250만 명 중 일본인이 약 3분의 1(400만 명)에 달한다. 양국 간엔 매주 450회 여객기가 오간다. 서로에 대한 감정적 반목에도 불구하고 한·일 양국이 얼마나 긴밀한 사이인지 보여주는 통계들이다.

하지만 야당의 입장에선 가장 손쉽게 여당을 깎아내리고 지지율을 반등시킬 소재 역시 일본이다. 이런 계산에서 논리적 모순을 무릅쓰고 정부의 대일 정책을 비판하는 게 우리 정치 현실이다.

지금의 여당인 새누리당도 마찬가지다. 2005년 3월 노무현 전 대통령이 독도, 역사교과서 문제에 대해 일본에 강경 대응 방침을 밝히자 한나라당은 “적절한 조치”라고 환영했다가 다음 날 “대통령이 전면에 나선 건 적절치 못하다”고 뒤집었다. 한나라당 의원들은 김대중 전 대통령에 대해서도 “외환위기 당시 비밀리에 일본으로부터 30억 달러 차관을 받았다”고 주장해 논란을 일으킨 적도 있다.

박근혜 정부 들어선 일본의 우경화 흐름까지 가세해 일본이 ‘내수용 정쟁 이슈’로 변질되는 현상이 더욱 심해지고 있다. 박근혜 정부가 출범한 지 1년4개월이 지났음에도 한·일 정상회담이 열리지 않고 있다. 여기엔 아베 신조 일본 총리의 우경화 행보가 크게 작용했지만 일본과 관련된 이슈에서 여야가 유달리 각을 세우고 있는 점도 또 다른 원인이라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국민들 “박 대통령·아베 앙금 풀어야”
하지만 일본에 대한 국민의 인식은 달라지고 있다. 아산정책연구원이 지난 2월 22~25일 아베 총리의 야스쿠니신사 참배 및 ‘다케시마의 날’ 행사 직후 우리나라 성인남녀 10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조사에 따르면 “일본의 도발에도 불구하고 한·일 정상회담을 지지한다”는 응답이 54.9%로 나왔다. “일본의 과거사 도발이나 독도 영유권 주장이 계속되더라도 한·일 정상회담을 지지한다”는 의견에 대해서도 찬성과 반대 응답비율이 크게 차이 나지 않았다.

특히 20대는 “지지한다”가 57.9%로 반대(37.4%)를 크게 앞섰다. 또 진보 성향 응답자의 “지지” 반응이 보수 성향 응답자의 “지지” 반응보다 6% 포인트 높았다.

이는 일본엔 무조건 강경하게 나가야 지지율이 높아진다는 정치권의 계산과는 거리가 먼 결과다. 조사를 담당한 아산연구원의 김지윤 박사는 “대다수의 한국인은 정부가 유연히 대처해 한·일 관계를 안정시키는 걸 선호한다”며 “젊은 층이나 진보진영에서 그런 의견이 많이 나오는 것도 주목할 점”이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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