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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사불란 백화점, 건성건성 터미널 … 재난 대응 편차

중앙일보 2014.06.21 01:27 종합 6면 지면보기
전국 동시 화재 대피 민방위 훈련이 실시된 20일 오후 2시 화재비상벨이 울리자 서울 서초동 서일초등학교 학생들이 교사와 함께 손수건과 마스크로 입을 가린 채 대피하고 있다. 전국 동시 화재 대피훈련은 1975년 민방위 창설 이래 처음이다. [뉴시스]


실전을 방불케 한 첫 전국 동시 화재 대피 민방위 훈련을 중앙일보 취재팀이 현장에서 취재했다. 고양종합터미널 화재의 충격이 생생한데도 터미널의 훈련 실태는 엉망이었다. 극장의 경우 업체에 따라 편차가 컸다. 백화점과 대형마트는 업체의 적극성이 돋보였지만 고객의 참여는 다소 엇갈렸다.

실전 같은 대피 현장 가보니
성남터미널 안내방송 시늉만
"시민들에게 이래라저래라 못 해"



 ◆터미널=20일 오후 2시 경기도 성남 종합버스터미널 지하 1층. 요란한 경보음과 대피 방송이 흘러나왔지만 정작 안내요원은 보이지 않았다. 매표소 직원들은 아무 일 없다는 듯 티켓을 팔고 있었다. 훈련을 하면서 에스컬레이터와 엘리베이터 가동을 중단하지도 않았다. 승객들은 스마트폰을 보거나 먹던 음식을 계속 먹으며 TV에만 집중했다. 대피 방송을 따르는 사람은 한 명도 없었다. 현장에 나온 분당구청 직원은 “첫 훈련인 데다 시민들도 바쁠 텐데 우리가 이래라저래라 할 수 없다”고 말했다. 터미널 운영사 관계자는 “고속버스 출입차 시간이 정해져 있어서 안내 방송만 하고 있다”고 말했다.



 ◆백화점·대형마트=대형 시설이지만 2주 이상 준비했기 때문인지 비교적 훈련이 잘 진행됐다. 현대백화점그룹은 오너인 정지선(42) 회장이 이날 훈련을 직접 지휘하기도 했다. 하지만 일부 고객은 “유모차를 두고 대피했다가 잃어버리면 어떡하느냐”는 등 불만을 제기하며 직원의 대피 지시에 따르지 않았다.



20일 오후 2시 서울 소공동 롯데백화점 직원·쇼핑객들이 건물 밖으로 나와 있고(왼쪽), 서울 삼성동 무역센터 건물 입주업체 직원들이 수건으로 입과 코를 막은 채 건물 밖으로 대피하고 있다. [김상선·강정현 기자]


 서울 롯데백화점 소공동 본점에서는 1만여 명이 한꺼번에 백화점 밖으로 대피하면서도 차분한 모습이었다. 그러나 평일 오후인 만큼 외국인 관광객이 많아 일부 혼란도 있었다. 훈련 30분 전부터 중국어·영어·일본어 안내방송이 수차례 나왔지만 길을 잃고 헤매는 외국인 고객도 있었다. 중국 동포 박영애(34)씨는 “사이렌이 울리니 불안했지만, 백화점에서 실제 상황처럼 안전훈련을 한다는 사실에 감탄했다”고 말했다. 지난해 이 백화점의 같은 날 같은 시간대 매출액은 약 6억원. 이를 포기한 셈이지만 백화점 측은 “실질적인 대피훈련을 통해 안전의식을 강화하는 좋은 기회가 된 것 같다”고 말했다.



 신세계백화점 본점은 1층 중앙 행사장 가운데에서 실제 화재를 연출하기 위해 연막탄을 터뜨리기도 했다. 2500여 명이 백화점 앞 광장으로 대피해 소화기 사용법과 심폐소생술 등을 배웠다.



이마트 목동점은 훈련 10분 전부터 모든 계산대를 닫았다. 훈련이 시작되자 음식물이 담긴 카트도 일제히 벽 쪽으로 밀어놓고 대피했다. 훈련이 계속된 20분간 입구가 통제돼 일부 고객이 발길을 돌렸다.



 ◆영화관=성남종합터미널 지하 2층에 입점한 CGV 영화관은 아예 훈련 시간에 영화 상영을 하지 않았다. 훈련 전 마지막 영화 종영 시간을 1시55분으로 맞추고 2시20분까지 어떤 영화도 틀지 않았다. 훈련 시간 전에 상영관을 텅 비웠다. 화재 상황에 대비한 훈련이라기보다는 ‘훈련을 피하기 위한 대비’를 미리 한 듯했다. 꼼수를 부렸다는 것이다.



 롯데시네마는 전국 100개 상영관에서 민방위 훈련을 했는데 직원들의 사전 안내는 충실했다. 에비뉴엘점은 2시5분에 끝난 영화 ‘사랑은 소설처럼’을 보던 관객 20명이 직원 안내에 따라 대피했지만 건대점 등 대부분의 상영관이 오후 2시 민방위 훈련을 피해 2시30분 또는 2시50분에 상영작을 배치했다. 직장인 김용일(29·서울 창신동)씨는 “상황 초기 통제는 잘됐는데 상황이 끝나기 5분 전부터 표를 판 것은 문제”라고 지적했다.



 전국 모든 지점이 훈련에 참여한 메가박스는 지점별로 50%씩 상영을 일시 중단했다. 메가박스 동대문점은 오후 2시에 시작하는 영화를 상영하기 전 광고시간에 영상을 끊고 대피 훈련을 한 뒤 2시30분에 영화를 처음부터 상영했다. 관람객 장지호(20·서울 창3동)씨는 “2시에 시작하는 영화를 보려다가 대피 훈련 때문에 30분 뒤에 영화가 시작된다는 얘기를 들었지만 세월호 사고가 떠올라 훈련에 참여했다”고 말했다.



성남=윤호진 기자, 구희령·임주리·채윤경 기자

사진=김상선,강정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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