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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 공직자 격려를" … 8억원 내놓은 '밤나무 검사'

중앙일보 2014.06.21 01:21 종합 8면 지면보기
송종의(73·사진) 전 법제처장은 ‘밤나무 검사’로 불린다. 1995년 대검찰청 차장검사직에서 퇴직할 때 변호사로 개업하면 전관예우 등을 통해 큰돈을 벌 수 있었다. 그러나 개업 대신 충남 논산 양촌마을에 낙향해 밤나무와 딸기 농사를 짓는 삶을 택했다. 김영삼 대통령이 96년 말 법제처장으로 발탁해 1년4개월간 외도를 한 걸 빼고는 줄곧 그렇게 살았고 청빈한 검사의 상징이 됐다.


대검 차장 지낸 뒤 낙향
농사로 번 돈 전액 출연
‘법치문화상’ 만들어 포상

그가 농사로 번 사재 8억여원을 출연해 ‘천고(天古)법치문화재단’을 지난 16일 설립하고 이사장으로서의 활동을 시작했다. 매년 법치주의를 실현하고 국민에 봉사하는 후배 공직자들을 발굴해 ‘법치문화상’을 주고 격려하자는 게 설립 취지다. 세월호 참사를 계기로 관피아(관료 마피아)의 폐해가 국가적 척결 과제로 부상한 터라 잔잔한 감동을 주고 있다.



 송 전 처장은 20일 전화 인터뷰에서 “사회 분위기가 ‘벤츠 검사’ ‘스폰서 검사’ ‘관피아’라며 공직자가 나쁜 짓만 하는 것처럼 부각하고 칭찬에 인색하다”며 “검사 후배들이 국민에게 봉사하는 공직자로서 자부심과 긍지를 느낄 수 있게 격려해주고 싶었다”고 취지를 설명했다.



 -사재를 전부 출연한 이유는.



 “96년 설립한 양촌영농조합 가공공장에서 18년간 번 돈이다. 재단은 평생 숙원이었다. 이제 나이가 많이 들어 더 늦으면 안 되겠다고 판단해 준비한 지 2개월 만에 만들었다. 여기저기서 기부 받는 건 번거로워 생각도 안 했다.”



 -왜 법치주의 재단인가.



 “법치가 국치의 근본이 돼야 질서가 바로 서고 사회 문제와 부조리가 생기지 않는다. 나라에 충성하고 법치주의 구현을 위해 묵묵히 봉사한 훌륭한 공직자를 표창하면 사회 전반에 파급되는 효과가 클 것이다.”



 재단 이름 ‘천고’는 송 전 처장 부부의 법명 ‘천목(天目)’과 ‘고불법(古佛法)에서 한 글자씩 따왔다고 한다. 96년 3월 스무 살이던 외아들을 교통사고로 잃은 뒤 머물렀던 부산 안국사의 스님이 부부의 법명을 지어줬다. 그는 변호사 대신 농사를 택한 이유에 대해 “아들 자식이 죽어 딸 하나밖에 없는데 딸은 부잣집에 시집 보내 재산을 줄 필요가 없어서”라고 설명했다.



 재단이사로 서울대 법대 산악반(한오름회) 후배인 김경한(70) 전 법무장관, 김동건(68) 전 서울고등법원장, 안병우(67) 전 국무조정실장 등이 참여했다. 2003년 이른바 ‘대선자금’ 수사를 강단 있게 지휘한 것으로 유명한 송광수(64) 전 검찰총장은 서울중앙지검 형사3부장 때 검사장으로 모신 인연과 좋은 취지에 공감해 참여했다고 한다.



송 전 처장은 올 하반기에 심사위원회를 만들어 법원·검찰·경찰·감사원·국회 등에서 법치주의 유공자(퇴직 공직자 포함)를 포상하기로 했다. 매년 3000만원가량의 예산 범위 내에서 순금 30돈짜리 메달과 상금도 준다. 재단이 자리를 잡으면 법치 관련 국가정책연구사업도 벌일 예정이다.



 “돈이 모자라면 또 그때까지 모은 재산을 넣고 내가 죽으면 그 모든 것이 국고로 귀속될 거야. 세상 뜰 때 짊어지고 갈 것도 아닌데 다 쓰고 가야지.” 그의 마지막 말은 여운이 길었다.



정효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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