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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초 만에 시속 100㎞ … 엑셀 밟자 경주마처럼 튀어나가

중앙일보 2014.06.21 01:05 종합 14면 지면보기
페라리 엔지니어들이 이탈리아 시에나의 지방 도로에서 신형 터보엔진을 장착해 출시한 캘리포니아 T를 시험 운전하고 있다.


페라리(Ferrari)-.

남자의 로망 페라리(캘리포니아 T) 시승기
최고 속도 316㎞ 겁나 멈칫멈칫 … S자 커브길서도 흔들림·쏠림 없어
4시간 주행 동안 심장 터지는 듯 왁스로 고정한 머리카락 까치집 돼



 모두가 꿈꾸는 차다. 꿈같은 영화에서도, 페라리는 꿈을 상징한다. 마틴 브레스트 감독의 영화 ‘여인의 향기’(1992년)에 나온 1989년형 페라리 몬디알 T 카브리올레가 그렇다. 시각장애인의 삶을 비관해 자살여행을 떠났던 주인공 프랭크 슬레이드(알 파치노 분)에게 탱고와 함께 페라리는 삶에 대한 욕구를 되살리는 상징으로 등장한다. ‘욕망의 끝판 왕’으로도 그려진다. 2003년 개봉한 액션 코미디 영화 ‘미녀 삼총사 2-맥시멈 스피드’에서 블랙 비키니를 입은 데미 무어와 함께 하와이 해변에 등장한 빨간색 페라리 엔초가 단적인 예다.



 영화에서나 볼 것 같았던 페라리를 탈 기회가 왔다. 초여름의 싱그러움이 물씬 풍기는 이탈리아 북동부의 소도시 시에나(Siena)에서다. 독자를 대신해 일반적인 운전자의 입장에서 핸들을 잡는다는 생각으로 비행기에 올랐다. 6일 기자를 맞이한 차는 페라리 ‘입문편’에 해당하는 모델 캘리포니아 T였다. 페라리 차 중에선 가장 대중적인 모델이자, 27년 만에 신형 터보 엔진을 새 심장으로 이식한 차다.



 시승 코스는 보르고 라 바나이아 리조트를 시작으로 몬타치노·피엔자를 거쳐 토스카나 지역을 통과해 다시 리조트로 돌아오는 길이었다. 총 180㎞, 주행 시간은 4시간에 달했다. 일본·싱가포르·태국·호주 등 8개국 16명의 취재진이 모였고, 국내 일간지로는 본지가 유일하게 운전석에 앉았다.



페라리는 캘리포니아 T에 대중적 요소를 심었다. ① 페라리가 1987년 이후 처음으로 개량해 탑재한 터보엔진. ② 새로운 스타버스트 디자인의 19인치 알로이 휠이 기본 적용된다. ③ 캘리포니아 이전 모델에 비해 뒷좌석 공간을 넓혔다. 넉넉한 편은 아니지만 짧은 거리 이동 시 어른 2명이 뒤에 앉을 수 있다. ④ ‘뒤태’ 또한 스포티하다. 클래식한 원형 테일램프는 스포일러 형상의 트렁크 리드와 절묘하게 어우러진다. [사진 페라리]
 오전 9시. 차량 조작법 설명을 듣고 드디어 시동을 켰다. “쿠르릉~.” 페라리 특유의 우렁찬 엔진 소리가 귓전을 때렸다. 마치 막 도약하려는 말의 울음소리 같았다. 페라리의 상징인 ‘프랜싱 호스(Prancing Horse)’는 우리말로 풀자면 ‘도약하는 말’이다.



 설레는 마음을 안고 리조트의 입구를 빠져나가자 300m가량의 왕복 2차로 길이 양쪽에 늘어선 가로수들과 함께 시야에 들어왔다. 수퍼카의 힘을 제대로 느낄 수 있는 기회였다. 차를 완전히 정지시킨 후 인정사정 볼 것 없이 액셀러레이터를 밟았다. 1729㎏의 육중한 몸집을 자랑하는 ‘이 녀석’이 출발 게이트가 열리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던 경주마처럼 맹렬히 튀어나갔다. 순식간에 시속 100㎞에 도달한 후 170㎞를 넘어서자 터져나오는 페라리 엔진 특유의 사운드와 차체의 진동이 온몸을 휘감았다. 캘리포니아 T의 공식 ‘제로 백(정지 상태→시속 100㎞)’은 3.6초다. 몇 초간의 질주를 끝내자 아침에 왁스로 단단히 고정한 머리카락은 까치집이 돼버렸다. 심장은 요동쳤고, 아드레날린이 솟구쳤다.



 이 짜릿함은 캘리포니아 T에 새롭게 장착된 8기통 신형 터보 엔진 덕택이다. 87년 출시된 F40에 장착된 터보 엔진의 성능을 향상시키면서 과거엔 성능을 위해 희생해야 했던 연비까지 높였다. 반대 방향으로 뛰는 두 마리 토끼를 한번에 잡을 수 있었던 비결은 ‘가변 부스트 매니지먼트 시스템(VBM)’이다. 엔진의 전자제어장치(ECU)에 내장된 이 시스템은 엔진 회전수와 기어 단수에 따라 엔진 토크를 최적으로 조절한다. 이를 통해 성능에 영향을 주지 않으면서도 연료 소비와 배기가스 배출을 줄일 수 있었다. 페라리의 스테파노 바리스코 기술이사는 “지난 4년간 마라넬로 공장에서 페라리 최고의 엔지니어 수십 명이 심혈을 기울여 탄생시킨 것이 바로 신형 터보 엔진”이라며 “캘리포니아 T야말로 페라리 70년 연구개발 역사를 집약한 최고의 차량”이라고 단언했다.



 실력은 숫자가 증명한다. 캘리포니아 T는 이전 모델인 캘리포니아 30에 비해 출력이 70마력 상승했고, 토크(순간 가속력)는 49% 끌어올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연비는 15% 개선돼 유럽 기준 9.5㎞/L를 기록했고, 이산화탄소 배출량은 20% 정도 줄였다. 최고 출력은 560마력, 최대 토크 77㎏·m, 최고 속도는 316㎞에 이른다. 그러나 여기까지다. 페라리가 연비를 염두에 두는 것은 상대적으로 대중적인 모델인 캘리포니아에만 해당된다. 동력전달계 담당 이사인 디니는 “페라리의 고급형 모델에는 F1 레이싱을 대표하는 페라리 고유의 캐릭터를 그대로 유지할 것”이라고 말했다.



 질주는 계속됐다. 커브 코스가 직선도로와 맞물린 E78번 국도에 올라탔다. 이 도로는 눈 깜짝할 새 피엔자까지 이어졌다. 단테 알리기에리 광장에 주차한 뒤 ‘세계 최고의 빵’이라는 찬사를 듣는 꽈배기 모양의 파네 페라라라제와 치즈·스파게티, 에스프레소로 점심을 해결했다. 점심 후 토스카나 지역의 국도를 달리자 구불구불한 언덕길 아래위로 자리 잡은 갈색 기와를 얹은 이 지역 특유의 주택이 포도밭, 올리브 나무와 어우러져 한 폭의 풍경화를 만들었다. 코스에 따라 편차가 있지만 시속 70~80㎞를 유지하면서 곳곳에 펼쳐진 S자 커브 길을 차체의 흔들림이나 쏠림 현상 없이 매끄럽게 빠져나갔다. “고속 신형 스티어링 박스와 새로운 서스펜션 세팅으로 스티어링 휠 조작을 줄이고 핸들링 반응 속도를 높였다”는 페라리 측 설명을 몸으로 느낄 수 있었다.



 그러나 수퍼카가 처음인 기자는 이 같은 성능을 100% 느끼기에는 한계가 있었다. 고속 주행 중 직선에서 곡선으로 접어들 경우 어느 지점에서 브레이크를 밟고 핸들을 얼마나 꺾어야 하는지를 체득하려면 시간이 좀 더 필요했다. 자칫 호기를 부리다간 차선 이탈을 경험하게 된다. 한번 삐끗하고 나면 나도 모르게 어느새 이마에 흐르는 식은 땀과 스포츠 모드에 놓여 있던 스위치를 일반 주행용인 컴포트(Comfort) 모드로 슬그머니 바꾸는 자신을 발견해야 했다. 그렇다고 겁낼 정도는 아니다. 캘리포니아는 야생마 페라리를 가장 온화하게 다듬은 모델이고, 페라리를 처음 구매하는 소비자의 70% 이상이 이 차를 산다. 이번 시승에 참여한 일본의 유명 자동차 칼럼니스트 다쓰야 구시마는 “동급의 라인업에서는 캘리포니아 T의 라이벌을 찾기 힘들다”고 말했다.



 각종 레이싱 대회에서 5000회 이상 우승한 압도적인 성능과 기술을 도로 주행용 차량에 접목된 페라리. 그중에서 가장 대중에 가까이 와 있는 모델인 캘리포니아 T는 다음 달 2일 국내에 출시된다. 국내 판매 가격은 미정이다. 이탈리아 현지에서는 19만 유로(약 2억6300만원)에 예약 판매 중이다.



시에나(이탈리아)=권상수 코리아중앙데일리 기자



엠블럼·창업자·신비주의 … 명차 만든 세 가지 비결



세계적인 브랜드 평가회사인 ‘브랜드 파이낸스’는 지난해와 올해 페라리를 세계 최고의 브랜드로 선정했다. 브랜드의 명성은 제품의 질과 함께 켜켜이 쌓인 역사와 이야기가 만든다. 페라리도 마찬가지다.



 ◆엠블럼=도약하는 모습의 말은 ‘프랜싱 호스(Prancing Horse)’라고 부른다. 1차 세계대전 때 이탈리아의 전쟁 영웅이었던 전투기 조종사 프란체스코 바라카가 자신의 비행기에 그려 넣었던 그림에서 유래했다. 노란색 바탕은 페라리 창업자인 엔초 페라리가 이끈 경주팀 ‘스쿠데리아 펠리’의 본거지인 마라넬로의 상징 색이다.



 ◆디노=창업자 엔초는 1932년 아들 알프레도가 태어나자 아내와 한 약속대로 레이싱 선수 생활을 끝내고 경주차 개발과 팀 관리에 전념했다. 그러나 알프레도는 56년 사망했고, 엔초는 부인과 이혼했다. 페라리가 만드는 6기통 엔진 차량에 붙는 ‘디노’라는 명칭은 숨진 알프레도의 별명이다.



 ◆판매량=페라리는 판매 대수에서만큼은 신비주의 전략을 쓴다. 판매량을 좀처럼 공개하지 않는다. 2011년 세계적으로 7195대가 팔렸다는 게 가장 최근의 판매량 기록이다. ‘세계 전 지역에서 팔지만 결코 흔하지 않은 차’가 페라리의 판매 전략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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