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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성호의 현문우답] 보고 싶다, 비구니 총무원장

중앙일보 2014.06.21 00:57 종합 30면 지면보기
백성호
문화스포츠부문 차장
#풍경1 : 2600년 전 붓다 당시에는 ‘여성 출가자’란 말이 없었습니다. 사찰도 없었습니다. 바깥에서 노숙하고 탁발하며 수행해야 했습니다. 여성에게는 위험천만이었습니다. 붓다에게 이모가 찾아왔습니다. 자신을 낳다가 죽은 엄마 대신 젖을 먹이며 29년간 길러준 ‘엄마’였습니다. 이모는 “출가하겠다”고 애원했습니다. 붓다는 몇 번이나 거절했습니다.



 그때 시자인 아난이 붓다에게 물었습니다. “부처님, 여성도 출가해 수행하면 아라한(깨달은 자)이 될 수 있습니까?” 붓다는 “그렇다”고 답했습니다. 그 말끝에 붓다는 여성의 출가를 허락했습니다. 이모인 마하파자파티 고타미는 역사상 최초의 비구니가 됐습니다. 붓다 당시에는 수행을 통해 아라한의 경지에 오른 비구니도 꽤 있었습니다.



 #풍경2 : 혜능은 “출가를 하고 싶다”고 말했습니다. 홍인 대사는 “너는 출신이 오랑캐인데 어찌 감히 부처가 되겠다고 하느냐?”고 찔렀습니다. 혜능은 “사람은 남북이 있으나 불성에는 남북이 없다”고 받아쳤습니다. 결국 출가해 혜능은 깨달음을 얻었습니다. 혜능 대사가 머물던 사찰 근처의 개울 이름이 ‘조계(曹溪)’였고, 뒷산 이름이 ‘조계산’이었습니다. 그걸 본떠 우리나라에 ‘조계종’이 생겼다고 합니다.



 대한불교 조계종은 4년마다 몸살을 앓습니다. 총무원장 선거 때문입니다. 괴문서가 나돌고, 온갖 음모론에, 폭로전이 벌어집니다. 순식간에 종단은 아수라장이 되곤 합니다. 이유는 하나. 권력투쟁 때문입니다. 총무원장은 321명의 종회의원(국회의원에 해당)이 뽑습니다. 그 안에는 ‘종책모임’이란 이름의 몇몇 계파가 있습니다. 종단 정치의 이해관계에 따라 합종연횡을 거듭하는 일종의 정치 그룹입니다. 그들끼리 서로 물어뜯고, 물어뜯기는 겁니다. 대부분 스님에게 총무원장 선거는 늘 ‘그들만의 리그’였습니다.



 그 와중에 비구니의 위상은 더 쪼그라들었습니다. 조계종 승려 수는 약 1만2000명입니다. 비구와 비구니가 각각 6000명입니다. 그런데 종회의원 321명 중 비구니는 고작 10명에 불과합니다. 그것도 2004년 법장 스님이 총무원장 선거 공약으로 내건 뒤에야 생겨난 비구니의 고정 지분입니다. 그 전에는 아예 ‘0명’이었습니다. 바깥 세상의 흐름에 뒤처져도 한참이나 뒤처져 있습니다. 이웃 종교인 원불교만 해도 2003년에 이미 여성 교정원장(총무원장에 해당)이 나왔으니까요. 지금은 대통령도 여성인 시대입니다.



 조계종이 이제 변화의 갈림길에 섰습니다. ‘조계종단 총무원장 선거법 개정안’이 다음주 임시 종회에 상정됩니다. 321명에 불과한 투표인단을 법랍 20년 이상 된 비구·비구니로 늘리자는 겁니다. 그럼 투표인단이 6150명으로 바뀝니다. 그중 비구니가 비구보다 80명가량 더 많습니다. 기계적으로 계산하면 비구니 총무원장이 나올 수도 있습니다. 극소수의 정치 그룹이 총무원장 선거를 좌지우지할 가능성도 미리 막을 수 있습니다. 저는 321명의 종회의원이 어떻게 나올지 궁금합니다. 총무원장 선출에 대한 기득권을 상당 부분 내려놓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세상의 종교는 ‘평등’을 말하지만 정작 종교 안에는 심한 남녀차별이 있습니다.



 조계종은 지금 갈림길에 섰습니다. 비구니 총무원장의 가능성을 여는 일입니다. 시대와 함께 흐를 건가, 거꾸로 흐를 건가. 1990년대만 해도 새로 출가하는 비구니 수가 비구의 두 배였습니다. 지금은 비구의 절반도 안 됩니다. 조계종은 붓다가 여성의 출가를 허한 이유를 뼈아프게 짚어봐야 합니다. 그건 조계종이 ‘조계’라는 종단명을 가질 자격이 있는가를 되묻는 일입니다. 불성(佛性)에 출신과 남녀의 차별이 있는가. 다음주 종회의원들은 여기에 뭐라고 답을 할까요.



백성호 문화스포츠부문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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