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중앙시평] Mr."X"의 등장이 몰고 온 외교안보 파장

중앙일보 2014.06.21 00:50 종합 31면 지면보기
장달중
서울대 정치외교학부 명예교수
어느 시대에나 모습을 감추고 침묵하면서 화제의 대상이 되는 인물이 있다. 이름하여 Mr.“X.” 때로는 세상의 흐름을 바꾸기도 하지만, 때로는 실체 이상으로 부풀려지기도 하는 인물이다. 일본인 납치문제 해결을 위해 북·일 접촉을 주도하고 있는 극비의 인물, Mr.“X.” 그의 움직임이 앞으로 동북아 질서에 어떤 변화를 몰고 올지 초미의 관심사다.



 물론 크게 염려할 필요는 없을지 모른다. 지금 한·미, 한·중 관계가 어느 때보다도 양호하기 때문만은 아니다. 그보다는 Mr.“X”가 움직인다 해서 동북아 질서가 갑자기 새로운 방향으로 선회할 가능성은 크지 않아 보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우리 외교안보에 던지는 충격파가 작지 않아 보인다. 비록 판을 새로 짜지는 못할지라도 지금의 판을 흔들어놓을 가능성은 배제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공세적이던 우리의 대북, 대일 정책이 수세로 몰리고 있는 모습이 아닌가.



 우리가 이 Mr.“X”의 움직임에 신경을 쓰지 않을 수 없는 이유는 분명하다. 그가 누구든 Mr.“X”가 등장할 때마다 한반도 정세가 적지 않은 영향을 받아왔기 때문이다.



 Mr.“X”라는 이름이 국제정치에서 유명해진 것은 1947년 7월. 미국의 시사저널 ‘포린 어페어스’에 Mr.“X”라는 필명의 글이 게재되면서부터다. 후일 ‘X-Article’로 널리 알려진 이 글에서 그는 공산주의의 팽창에 대응하기 위해 ‘봉쇄(containment)’ 정책이 필요함을 역설했다.



 1950년 6월 24일, 밤 10시가 넘은 시각, 미국의 수도 워싱턴. 서울 주재 무초 대사로부터 북한의 남침 소식이 국무장관 애치슨에게 날아들었다. 아시아는 안중에 없었던 애치슨. 1월에는 한국을 미국의 방위선에서 제외하기까지 했던 그다. 그래서 그에게 북한의 남침은 기껏해야 소련이 유럽 침공 야욕을 다른 데로 돌리기 위한 술책 정도로밖에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Mr.“X”의 생각은 달랐다. 그는 ‘소련이 한반도에서 미국의 목적과 결의의 확고함을 시험하고 있는 것’으로 판단했다. 그래서 ‘남한을 공산세력으로부터 구해내지 않으면 안 된다’고 역설했다. 그리고 트루먼 대통령은 물론 그의 봉쇄 정책을 비판하던 유명한 언론인 리프먼의 동의까지 얻어내는 데 성공했다. 6월 30일, 4시57분(미국 동부시간), 마침내 트루먼 대통령의 한국전 참전명령이 맥아더 장군에게 하달되었다. 한반도의 운명이 바뀌는 순간이었다. 영국 총리 처칠이 말했다. ‘한국만 구한 것이 아니라 서구문명까지 구했다’고.



 그로부터 반세기가 더 지난 2002년 9월. 또 다른 Mr.“X”가 한반도의 지평을 바꾸기 위해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가 몇 년 전 처형된 북한의 안전보위부 부부장이었던 류경이라는 설이 있지만 확인된 바는 없다. 이 Mr.“X”의 움직임으로 한반도의 냉전구도가 해체의 막을 올리는 듯했다. 북·일 국교정상화에 이어 북·미 국교정상화가 가시권에 들어오는 듯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국교정상화와 경제지원 등을 약속한 평양선언은 일본의 강경한 국내 여론에 밀려 잉크가 마르기도 전에 좌초했다.



 새판을 짤 듯했던 Mr.“X”의 움직임이 좌초된 지 12년. 지금 이 허송된 세월을 만회하기라도 하듯 제2의 Mr.“X”가 예상을 초월하는 초스피드로 북·일교섭을 진행시키고 있다. 북한이 일본을 발판으로 국제사회로 나오려는 것인지, 아니면 국제적인 대북 포위망에 구멍을 내려는 것인지 속단하기 어렵다. 다만 한 가지만은 분명해 보인다. 일본을 이용하여 한·미·일 공조체제에 틈새를 내려는 북한과, 북한을 이용하여 한국과 중국을 견제하려는 일본 사이에 전략적 이해가 맞아떨어지고 있다는 점이다.



 하지만 언론의 지적처럼 우리의 대북, 대일 외교는 ‘개점휴업’ 상태다. 우리는 계속 원칙과 북한의 진정성만 타령하고 있고, 미국은 여전히 ‘전략적 인내’에만 매달려 있다. 이러다가는 무슨 큰일이 터질 때까지 매사가 우리의 통제권 밖에서 전개될지도 모른다.



 어떻게 해야 하나. 지금 우리 국민의 관심은 한반도 신뢰 프로세스와 같은 그 ‘무엇’에 있어 보이지 않는다. 그 ‘무엇’보다는 오히려 ‘누가’ 할 것인가에 더 관심이 쏠리고 있다. 최악의 상황에 직면한 남북관계, 과연 ‘누가’ 헤쳐나갈 것인가. 우리의 머리 위에서 노는 Mr.“X”의 움직임을 언제까지 쳐다만 보고 있을 수는 없지 않은가. 이제 남북, 한·일관계의 새판을 짤 우리의 Mr.“X”가 필요한 시점이 아닐까.



장달중 서울대 정치외교학부 명예교수
공유하기
광고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