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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속으로] 지름 22cm의 마력 … 메시·네이마르 가난을 걷어차다

중앙일보 2014.06.21 00:42 종합 22면 지면보기
축구의 세계사

데이비드 골드블라트 지음

서강목·이정진·천지현 옮김

실천문학사, 1248쪽, 4만8000원




“상대팀의 페널티 지역까지 공을 몰고 간 뛰어난 실력의 한국 선수는 골을 넣을 수 있는 황금 같은 기회를 결코 자기 것으로 하는 법이 없다. 항시 자기 대신 골을 넣을 ‘형’을 찾는다.”



 1996년 애틀랜타 올림픽에서 한국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을 맡았던 비쇼베츠의 통역 레오나르도 페트로프의 말이다. 한국의 유교적 서열 구조는 ‘확률 높은 자가 슈팅을 시도한다’는 축구의 기본 원칙과 자주 충돌했다. 외국인의 눈에 기묘한 이런 ‘전통’은 2002년 히딩크 감독의 호된 나무람이 있고 난 뒤에야 겨우 깨지기 시작한다.



 일본도 다를 게 없다. 92~94년 산프레체 히로시마의 감독을 맡았던 영국인 스튜어트 백스터는 이렇게 말한다. “다른 나라에선 출전 명단에 빠진 선수가 감독을 찾아와 ‘왜 나를 뽑지 않았느냐’고 외친다. 그러나 일본 선수들은 ‘감독님, 제 실력을 키우기 위해 무얼 해야 할까요’라고 묻는다.”



 마냥 둥근 축구공, 발로 차면 그뿐인 듯싶지만 지름 22㎝의 가죽공 안에는 한 국가의 문화와 역사, 시대상과 사회상이 고스란히 녹아 있다. 같은 뿌리에서 나왔지만 남미 대륙과 갈라파고스섬의 동물이 다르듯, 같은 축구라도 브라질·네덜란드·한국이 펼치는 방식은 각각 다르다.



 이 책은 어떤 종교보다도 더 많은 신도를 보유한 축구라는 구기가 인류 역사와 함께 어떻게 흘러왔는지를 담았다. 스포츠 전문 저널리스트인 작가는 “근대세계에 대한 어떤 역사도 축구에 대한 설명 없이는 완전할 수 없다”고 단언한다.



남미 빈민가 아이들은 위대한 축구 선수가 되는 꿈을 꾼다. 위 사진은 1968년 벨기에와의 경기에서 바이시클 킥을 하는 펠레(가운데). 아래는 1950년 마라카낭에서 브라질 월드컵 우승의 꿈을 무산시킨 우루과이 알시데스 기지아(가운데). [중앙포토]


 제프 블래터 국제축구연맹(FIFA) 회장은 “축구는 이 세상만큼이나 오래된 것”이라는 과장 섞인 주장을 했지만, 실제 지금의 형태와 같은 축구는 19세기 영국에서 태어났다. 산업혁명이 가장 먼저 일어난 영국 상인들은 세계 곳곳을 휘젓고 다니며 닿는 곳마다 축구를 전했다. 축구의 씨앗이 뿌려진 곳이면 어디든 무럭무럭 자랐고 누구나 마법처럼 빠져들었다. 마치 전염병과 같았다.



 축구 문화의 발전은 세계 어디나 비슷한 공식을 따랐다. 도시화가 급속히 진행되는 곳에 축구가 전파되면 노동자들이 팀을 꾸리고, 이들이 뭉쳐 리그가 생겨났다. 상류층이 이들을 지원하고 대항전 등을 통해 팀에 헌신하는 팬층이 두껍게 형성된 축구 문화가 생겨나는 것이다.



 하지만 유럽과 남미의 축구 스타일은 각기 다른 경로로 발전했다. 대륙의 사회적·문화적 특성이 달라서다. 합리성을 따지는 관행의 유럽 축구는 패스와 전술을 발전시킨 반면, 남미는 개인 기술의 아름다움을 예찬했다.



 펠레·마라도나 같은 남미의 수퍼스타는 종횡무진한 드리블과 묘기 같은 슈팅으로 축구팬을 빨아들였다.



 반면 유럽에선 크루이프·베켄바우어 같은 전술의 핵심 선수가 각광받았다. 마법 같은 움직임을 보이진 못했지만 넓은 공간을 손바닥 보듯 지배하는 축구 지능과 기술을 보유한 선수들이었다. 이는 유럽 대륙이 1·2차 세계대전의 참화를 겪었기 때문이기도 하다. 전후 유럽의 축구 선수들에겐 국가에 헌신하고 팀에 충성하는 애국자의 이미지가 새겨졌다. 역사상 최고의 골키퍼인 레프 야신은 묵묵히 충성스러운 소련 노동자의 영웅이었고, 프리츠 발터는 성실하면서도 겸손한 독일 경제 기적의 표상이었다. 남미엔 전쟁으로 인한 국가동원 체제가 없어 국가관의 압력이 적었다. 이러한 차이는 축구 산업이 발달하고 양 대륙의 인적 교류가 잦아지면서 조금씩 허물어졌다.



 80년대 대규모 폭력 사태와 구단의 열악한 재정으로 인해 위기를 맞았던 축구는 자본이 투입되면서 기사회생했다. 제3세계 TV시청자 수의 급격한 증가는 축구산업을 꽃피우게 했다. 이러면서 뛰어난 선수가 지속적으로 축구 시장에 공급돼야 했다. 남미에선 뛰어난 선수들이 쉴 새 없이 배출됐다. 현재 세계 5대 리그인 잉글랜드·스페인·독일·이탈리아·프랑스는 남미 선수 없이는 지탱이 힘들다.



 실력 좋은 선수들이 남미에서 끊임없이 나오는 이유는 뭘까. 아르헨티나 미드필더 호르헤 발다노는 “가난은 축구에서 말고는 어디에도 쓸 데가 없다”고 말한다. 남미의 도시빈민은 산업화를 거치면서도 줄지 않았다. 축구는 빈곤 탈출의 가장 요긴한 수단이었다. 현재의 축구 스타 네이마르·메시도 집안이 부유한 편이 아니었다. 이번 브라질 월드컵에서 대회 운영에 쓸 돈을 복지에다 쓰자는 반대 시위가 벌어지고 있는 건 남미 축구 현실의 상징과도 같은 장면이다.



 월드컵이면 세계가 들썩이지만 미국만은 유난히 조용하다. 미국에서 축구가 인기 없는 데는 ‘정교한 손을 두고 발을 쓰는 원시적 스포츠’ ‘심판이 시간 관리를 독점하는 투명하지 못한 전근대 스포츠’라는 비난이 따른다. 하지만 19세기 말~20세기 초에 미국에서도 기회가 있었다. 축구협회가 설립됐으나 내분으로 붕괴하면서 다른 프로스포츠에 크게 밀렸다.



 90년대엔 우여곡절 끝에 축구리그가 출범했지만 미국 인구의 4분의 1을 차지하는 축구 광팬인 멕시코 등 중남미 이민자를 끌어들이는 데 애를 먹으면서 좀처럼 인기가 늘지 않고 있다. 이는 그들의 정체성과도 관련이 있다. 98년 미국 LA에서 열린 북중미골드컵 미국 대 멕시코의 결승전에선 관중 대다수가 멕시코를 응원하는 기현상이 벌어지기도 했다.



 책은 선사시대부터 현대까지 세계 모든 대륙의 역사와 축구의 관계를 촘촘히 설명한다. 1200여 쪽 만만찮은 분량이지만 낯익은 선수들과 경쾌한 설명 때문에 지루하지 않게 읽힌다.



이정봉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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