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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 속 잠든 동료 찾으러 … 의리의 산악인 김미곤

중앙일보 2014.06.19 00:48 종합 26면 지면보기
지난 5월 18일 오전 8시쯤 세계 3위 봉 칸첸중가 정상에 선 김미곤 대장. 뒤편으로 인도 히말라야의 첨봉들이 도열해 있다. [사진 김미곤]


키 165㎝에 몸무게 65㎏. 지난달 18일 세계 3위 봉 칸첸중가(8586m)를 등정해 히말라야 8000m 봉우리 14개 중 11개에 오른 김미곤(42·한국도로공사) 대장은 일반인보다 체구가 작다. 엄홍길, 고(故) 박영석 대장 등 선배들에 비해 유명하지도 않다. 칸첸중가를 오른 이튿날, 서울의 신문과 방송 어느 한군데도 그의 소식을 전하지 않았다.

세계 3위봉 칸첸중가서 지난해 실종
지난달 시신 수습하려 8586m 등정



 하지만 블랙야크가 후원한 그의 이번 등반이 산악계에 던진 의미는 작지 않았다. 그는 지난해 5월 칸첸중가에서 사망한 고 박남수 대장의 시신을 찾아나섰던 것이다. 그는 지난해 원정에 참여하지 않아 ‘마음의 빚’도 없었다. 하지만 등반 루트 상에 있을 동료의 시신을 그냥 지나칠 수는 없었다.



 시신 수습과 등정 시도를 겸한 등반은 고행길이었다. 캠프 3(7000m)을 출발해 칸첸중가 7500m 지점에 있을 것으로 추정되는 시신을 찾아 헤맨 뒤, 곧바로 정상에 올라 베이스캠프로 복귀하기까지 총 35시간 동안 쉬지 않고 걸었다. 등짝을 땅바닥에 뉘고 잠을 청한 건 약 40시간 만이다. 산악인들은 “산악인은 사흘 밤낮을 자지 않고, 먹지 않고 등반할 수 있어야 한다”는 말을 하곤 한다. 우스갯소리에 가깝지만, 그만큼 심신이 강인해야 한다는 말이기도 하다. 김 대장은 그 우스갯소리를 온몸으로 보여줬다. 그는 지난 2011년에도 마나슬루(8167m) 7500m 지점에서 사망한 후배의 시신을 찾아 끌고 내려온 적이 있다. 국내 산악계는 최근 몇 년 동안 등반 중 사망하거나 실종된 산악인에 대한 시신 수습을 계속해서 시도하고 있다. 그중 두 차례를 김 대장이 앞장섰다. ‘의리의 산악인’이다. 지난달 27일 귀국한 김 대장을 하루 뒤에 만났다. 다음은 김 대장과의 일문일답.



 - 8586m 정상에서 10일 만에 집에 왔다. 피곤하지 않나.



 “늘 그렇지만, 등반 자체는 어렵지 않았다. 원래 히말라야를 다녀와도 살이 빠지지 않는 체질이다. 가기 전에 67㎏, 지금 65㎏이다.”



 - 칸첸중가는 루트가 길어 힘들다고 하던데.



 “맞다. 등정한 후 하산하다 사망하는 비율이 30%에 달한다. 그래서 속전속결로 끝냈다. 원래 캠프를 4개 치는데, 우리는 캠프 1(6000m)을 지나쳐 3개만 치고 올라갔다. 캠프 4(7400m)에서 정상까지 구간 중, 마지막 400m는 로프 없이 곧바로 올랐다.”



 - 동료 시신을 찾으러 가는 원정은 어떠했나.



 “마음이 싸하다. 등반은 좋아서 하는 건데, 이런 건 어쩔 수 없이 우울하다. 소기의 성과를 얻지 못해 아쉽다. 작년에 같이 갔던 대원들한테 박남수 대장의 추락 지점을 GPS에 담아갔는데, 가 보니 그 자리에 없었다. 캠프 4를 구축한 후 총 4차례나 수색했지만 결국 찾지 못했다. 아마도 정상에서 흘러내리는 눈에 쓸려 내려간 것 같다. 베이스캠프로 내려와 가족에게 ‘못 찾아서 미안하다’고 가장 먼저 연락했다.”



 - 수색과 등반을 같이하면 더 힘들 것 같다.



 “원래는 박남수 대장의 시신을 수습해 캠프 3(7000m)에 내려놓고, 다시 올라가려고 했다. 추락지점(7500m)에서 시신을 찾지 못해 캠프 4로 복귀한 뒤 차를 한 잔 끓여 마시고, 오후 6시쯤 출발해 다음 날 오전 8시15분에 정상에 섰다. 그리고 그날 바로 베이스캠프까지 왔다. 애초 계획대로였으면 더 길어졌을 것이다.”



 - 35시간을 쉬지 않고 등반했는데. 무모한 행동 아닌가.



 “그게 더 낫다. 시간을 지체하면 위험하다. 정상 시도는 밤에 출발해 오전에 도착하는 스케줄이 좋다. 오후가 되면 어김없이 날씨가 나빠지기 때문이다. 정상 직전에서 잠깐 졸린 것 말고는 피곤하지 않았다. 시간을 단축하기 위해 8500m 지점에서 정상까지는 원래 루트대로 가지 않고 직등했다. 밑에서 따라오던 셰르파들이 ‘미친 짓’이라고 했지만, 자신이 있었다.”



 - 현재 히말라야 8000m 완등자가 33명이다. 빛바랜 감이 있다.



 “그게 목표는 아니다. 나에게 등반은 취미다. 이게 가장 재미있고 스릴 있다. 8000m 14개 완등은 산에 가기 위한 방편일 뿐이다. 이후에도 재미를 찾아 계속 등반할 것이다.”



 - 가족이 말리지 않나.



 “11살 아들이 크레바스, 실종 같은 단어를 종종 묻기도 한다. 그럴 때 마음이 아프다. 그래서 산에서는 가급적 가족 생각을 하지 않으려고 한다. 산에서는 감성적으로 되면 안 된다. 냉철해야 한다.”



김영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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