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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재의 시시각각] '만사경통' 으론 경제 못 살린다

중앙일보 2014.06.19 00:29 종합 30면 지면보기
이정재
논설위원·경제연구소 연구위원
최수현 금융감독원장이 그제 기자들과 만나 “총부채상환비율(DTI)·담보인정비율(LTV) 규제의 개선안을 마련하겠다”고 했을 때 나는 곧바로 최경환 경제부총리 후보자를 떠올렸다. ‘친박 실세’로 불리는 최 후보자는 지난 주말 “(부동산 경기 활성화를 위해) LTV·DTI를 손보겠다”고 말했고, 그 말이 나온 지 딱 4일 만에 최 원장의 ‘화답’이 나왔기 때문이다.



 나는 최 원장의 화답이 순수하거나 적절하지 않다고 생각했는데 그건 다음의 두 가지 이유 때문이다. 최 원장은 얼마 전까지도 금융건전성 강조주의자였다. 기획재정부나 국토교통부에서 여러 차례 LTV·DTI 규제를 풀어 부동산 경기를 띄우자는 의견이 있었지만 반대했다. 두 규제가 1000조원 넘는 가계부채의 안전 장치라는 사실을 누구보다 잘 알기 때문이다.



 그 점에선 신제윤 금융위원장과 같았다. 신 위원장은 올 초 기획재정부가 경제혁신 3개년 계획을 짜면서 이 두 가지 규제를 완화하겠다고 하자 “직을 걸고 반대한다”며 막아냈다. 다른 건 몰라도 LTV·DTI에 관한 한 두 금융 감독 수장은 2인3각이었다. 그랬던 최 원장이 새 부총리의 말 한마디에 소신을 바꾼 셈이니 의도를 의심할 수밖에.



 두 번째는 애초 두 규제를 풀고 말고는 최 원장 소관이 아닌데도 나서서 ‘총대’를 멨다는 점이다. LTV·DTI 규제를 풀려면 은행감독규정을 개정해야 하는 데 이는 금융위 소관이다. 금감원은 현재 공공기관도 아닌 반민반관 조직이고, 금감원장에겐 법을 바꿀 권한이 없다. 그런데도 굳이 기자들을 불러 “금융위와도 협의를 했다”며 두 규제를 푸는 데 앞장서겠다고 했다. 그러니 ‘과잉 충성’ 얘기가 나오는 것 아닌가. 아직 최 후보자가 정식 취임하기 전인데도 이 정도니 부총리가 되고 나면 어떤 일이 벌어질지 불 보듯 뻔하다.



 더 걱정되는 건 최 원장 같은 이가 한 명으로 그칠 것 같지 않다는 점이다. 지난주 개각 때 최 후보자는 경제팀 인선에 결정적 역할을 했다고 한다. 안종범 경제수석 발탁과 윤상직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의 유임에도 영향을 미쳤다는 후문이다. 안 수석과 윤 장관은 최 후보자와 미국 위스콘신대학에서 동문 수학한 사이다. 최 후보자는 위스콘신대 한국 총동문회 회장이기도 하다.



 여기에 새로 새누리당 정책위원회 부위원장에 임명된 강석훈 의원도 위스콘신대 동문이다. 당정 안팎에선 “당·정·청의 경제라인을 위스콘신대 출신으로 묶은 것이 바로 최경환의 힘”이란 얘기가 공공연히 나돈다. ‘만사경통(모든 일은 최경환으로 통한다)’ 소리가 괜히 나오는 게 아니다. 이쯤 되면 좌장인 최 후보자를 거스르거나 제어할 브레이크가 2기 경제팀 내에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되레 자리와 승진에 목매는 공무원 사회의 속성상 충성 경쟁이 벌어질 가능성이 크다. 제2, 제3의 최 원장이 속출할 여건이 충분히 갖춰진 셈이다.



 이런 상황을 어떻게 적절히 통제하느냐가 최경환 경제팀의 성패를 가를 것이다. 먼저 최 후보자 스스로 삼가야 한다. 정치인 시절과는 말의 무게가 달라졌다. 시장은 최 후보자의 ‘말=정책’으로 받아들일 수 있다. 평소 생각이라고 툭 던지는 게 아니라 관련 부처, 이해 관계자의 토론과 협의를 거치는 과정이 꼭 필요하다. 며칠 전에도 원화 강세를 용인하는 듯한 발언을 했다가 시장이 들썩이자 “지금 같은 환율 급변기엔 맞지 않는 원론적 발언”이라고 물러서지 않았나.



 같은 생각, 같은 말을 하는 사람끼리만 모였을 때 생기는 집단사고(그룹싱킹)도 경계해야 한다. 집단사고는 조급증이나 과잉 의욕과 만나면 큰 사고로 이어지기 쉽다. 과거 정부의 카드사태나 종합부동산세 도입 등이 그랬다. 최 후보자는 “박근혜 정부의 성공이 경제 살리기에 달렸다”며 의욕을 보였다. 내정되자마자 LTV·DTI 규제 완화와 추가경정예산 편성 등을 언급한 것도 그래서일 것이다. 빨리 성과를 내려는 마음은 알겠지만 짧은 시간에 부작용 없이 경제를 확 좋아지게 하는 묘수는 없다. 진리는 늘 가까운 데 있다. ‘급할수록 돌아가라’.



이정재 논설위원·경제연구소 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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