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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수대] 스펙 타파용 자격증을 따라고?

중앙일보 2014.06.19 00:23 종합 31면 지면보기
지난주 미국 출장을 다녀왔는데 가기 전에 스페인어 자격시험인 DELE의 고급과정 문제집을 사달라는 젊은 친구의 부탁을 받았다. 국내엔 스페인어 인구가 많지 않아서인지 문제집 찾기가 쉽지 않다고 했다. 미국엔 스페인어가 제2국어처럼 쓰이니 문제집이 많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떠나기 전, 뉴욕에서 변호사로 일하는 선배한테 ‘그곳에서 가장 잘 나가는 문제집을 추천해달라’고 부탁해 놓았다. 주변 학생들한테 물어보면 쉽게 알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한데 이로 인해 선배의 ‘어드벤처’가 시작됐다. 선배가 주변 학생들에게 물어보니 ‘DELE가 뭐예요?’라는 분위기였다는 것. 아마존과 대형 서점을 뒤져도 없기에 뉴욕에 있는 스페인어 문화원에 문의했더니 도서실에 와서 보라고 하더란다. ‘책을 구할 수 있느냐’고 물었더니 스페인에 주문하면 한두 달 안에 도착할 것이라고 했다는 것이다. 결론은 품은 있는 대로 팔고, 책은 구하지 못했다.



 뉴욕에서 만난 선배는 “그 시험은 왜 보는 거냐”고 물었다. “글쎄, 스페인어를 어느 정도 할 줄 아는지 증명하기 위해서겠지. 한국 젊은이들은 온갖 자격시험을 다 봐요.” 내 대답에 선배는 말했다. “원래 시험이란 얼마나 잘하는지를 측정하기보다 해당 시험 유형에 얼마나 익숙한지 측정하는 것이다. 자격증을 따기 위한 공부가 얼마나 허무하고 창의성이라곤 없는 것인지 알지 않느냐”고. 그리고 미국 학생들은 어학이든 뭐든 실력을 증명하기 위해 자격시험에 매달리는 건 보지 못했다고 덧붙였다.



 하긴 예전에 토익 만점을 받았다는 젊은 친구에게 “영어 잘하겠네” 했더니, “토익은 잘하는데 영어를 잘하는지는 모르겠다”는 대답을 듣고 황당했던 적이 있었다. 자격증과 실력은 별개의 문제인지도 모른다.



 요즘은 우리 젊은이들의 과도한 스펙쌓기가 사회문제로 지적되면서 대기업들이 ‘스펙 타파’ ‘스펙 초월’의 열린 채용을 하겠다고 나섰다. 획일화된 스펙보다 직무 전문성을 보겠다는 것이다. 그랬더니 이젠 각종 ‘직무자격증’ 따기 열풍이 분단다. 시장이 커질 조짐이 보이자 일각에선 직무자격증 전담기관 선정을 두고 신경전을 벌인다. 최근엔 고용노동부·교육부·미래창조과학부가 공동으로 소프트웨어 분야 자격증을 개혁해 ‘스펙 타파 채용’에 활용할 새로운 자격제를 올해 말까지 만든다고 밝혔다. 스펙 타파 채용 추세에 맞춰 ‘스펙 타파용 자격증’을 따야 한다니…. 나를 일찍 태어나게 해주신 하늘에 감사할 따름이다.



양선희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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