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알면 재밌는 클래식] 목관악기

중앙일보 2014.06.19 00:03 6면 지면보기
김근식 더클래식 대표
· 오보에 사람들은 나를 금관악기로 착각하는 경우가 많은데 원래 나는 온몸이 나무로 된 목관악기로 출발했다. 요즘도 금속 액세서리로 몸을 치장했을 뿐 여전히 목관악기다. 클라리넷은 물론이고 플루트보다 족보가 훨씬 오래된 나는 16세기부터 이미 중요한 연주에 참여해 비발디·바흐·헨델 같은 쟁쟁한 고전파 음악가들로부터 많은 사랑을 받았지. 성격이 차분해 좀처럼 음정이 변하지 않는 내 소리 때문에 오케스트라가 연주를 시작하기 전에 다들 내 소리를 듣고 나서야 각자의 음들을 맞춘다. 그래서 오케스트라에서 내 위치는 늘 지휘자 바로 오른편 앞쪽의 중앙에 마련돼 있어. 그런데 이처럼 독보적인 나의 위상을 가끔 흔들어 놓는 라이벌이 있어. 피아노가 그 주인공이야. 피아노협주곡을 연주할 때 조율사가 단지 내가 기준 음을 잡는 데 시간이 많이 걸린다는 이유만으로 오케스트라 악기들의 음정을 잡는 일을 피아노에 맡겨버리기 때문이야. 그뿐인가, 나조차도 피아노에 음을 맞춰야 하는 수모를 겪게 돼.


다른 악기 음정 잡아주는 오보에
낮은 소리 내고 몸값 비싼 바순

· 플루트 대부분의 목관악기가 갈대 속으로 만든 ‘리드’라는 떨림 판을 통해 소리를 내도록 돼 있지. 그런데 구멍에 입김을 불어넣는 것만으로 소리를 내는 나는 원래 나무로 만들어졌지만 나무를 깎는 일이 힘만 들고 돈이 별로 안 된다는 이유로 내 몸통을 온통 금속으로 대신 꾸몄어. 그런데 나는 여전히 목관악기라 불려. 입으로 바람을 불어넣고 손가락으로 구멍을 닫았다 열었다 함으로써 다양한 소리를 내는 피리 종류들을 모두 내 친족이라고 할 수 있어. 그렇다면 우리 조상은 아마 3만~4만 년 전에 매머드의 어금니나 백조의 뼈로 만들어져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관악기라 일컬어지는 그분들일 것이다. 1778년 어느 공작이 딸의 결혼식을 위해 모차르트에게 의뢰해 작곡된 ‘플루트, 하프와 오케스트라를 위한 협주곡’이 연주될 때면 나도 몰래 옛 생각에 사로잡히곤 한다. 아련하다.



· 바순 나는 파곳이라고도 부르는데 오케스트라에서 지휘자 정면의 클라리넷 옆, 즉 오케스트라 한가운데에 자리 잡고 있으니 대우가 그다지 나쁜 편은 아니야. 목관악기 중 가장 낮은 소리를 내기 때문에 나는 첼로가 할 수 있는 대부분의 일을 대신할 수 있어. 때로는 259㎝에 달하는 관의 길이와 관악기치고는 비교적 크다고 할 수 있는 150㎝의 키 때문에 한국에서는 주로 남성들의 악기로 알려져 있지. 그런데 외국에서는 여성들에게 더 인기가 많은 편이야. 아직도 내가 대중에게 가까이 다가가지 못하는 이유는 몸값 때문이야. 바이올린의 경우 명품은 수십억원을 호가하지만 연습용은 몇만원대에 장만할 수 있고 플루트도 초보자용은 몇십만원이면 살 수 있어. 그런데 나는 아무리 싸도 몇백만원이고 1000만원대는 줘야 그나마 중급 정도를 장만할 수 있으니 가까이 하기에는 너무 먼 나지.



· 클라리넷 18세기 초에 태어난 나는 18세기 말에야 어렵사리 오케스트라에 합류했어. 관악기 하면 뭐든지 관 끝이 뻥 뚫려 소리를 밖으로 밀어내는 식으로 노래하는데 나는 태어날 때부터 관 끝이 막혀 있어 비슷한 음정을 가진 오보에 같은 친구들에 비해 체질적으로 낮은 음을 내는 것이 상대적으로 편안해. 부는 힘만으로도 한두 옥타브 높은 음을 낼 수 있기 때문에 낮은 음과 높은 음을 골고루 낼 수 있는 능력을 인정받아 이제는 오보에와도 당당히 어깨를 나란히하고 있지. 어쩌면 오보에보다 더 많은 사랑을 받는지 몰라. 로버트 레드퍼드와 메릴 스트리프가 주연한 영화 ‘아웃 오브 아프리카’에 모차르트의 클라리넷 협주곡 2악장이 삽입되면서 내가 덩달아 유명세를 치렀기 때문이야. 그래서 가끔 오보에가 결석하는 날이면 내가 대신해 다른 악기들의 조율을 지휘하기도 해. 뿌듯하다. 



김근식 더클래식 대표
공유하기
광고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