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700년 신창 맹씨 종부의 '간장 사랑', 30년 곰삭아야 손님 상에 세월 흘러도 맛은 그대로

중앙일보 2014.06.19 00:03 1면 지면보기
충남 아산시의 맹사성 고택에 있는 항아리 속에는 70년 세월을 함께 보낸 간장과 표주박이 있었다.
옛날, 종가에서는 귀한 손님이 올 때만 간장을 내놓았다.


"오래 묵을수록 색 진해지고
짠맛은 줄고 단맛 생겨
과거엔 약으로 쓰이기도"
'1억원 간장' 보도에 도둑 들어
"조상 흔적 송두리째 빼앗긴 심정"

보통 30년은 곰삭아야 자신 있게 손님 상에 올릴 수 있었다. 오래 묵을수록 색깔이 진해지고, 짠맛은 줄고 단맛이 생긴다는 간장. 과거엔 병을 치료하는 약으로도 쓰였다.



스물다섯에 신창 맹씨 가문에 시집 온 성낙희(80) 할머니. 아산시 배방면에서 태어난 그는 조선시대 충의의 상징이던 사육신 성삼문의 후손이다. 맹씨 가문에 시집 와 산 지도 어느덧 55년. 시집 올 당시 하얗고 고왔던 얼굴엔 지나간 세월을 증명하듯 주름이 깊게 파였다.



고려시대 말부터 묵묵히 자리를 지키던 정승 맹사성 고택의 낡은 기와와 벽은 그간 여러 차례 보수공사를 했다. 세월이 흐르는 동안 변한 것이 어디 사람과 집뿐이랴. 하지만 대대로 이어져 내려온 이 집의 간장 맛은 변함없다. 오랜 세월 집 간장 독은 여전히 그 자리 그대로다. 700년을 이어온 신창 맹씨 종가 며느리인, 성 할머니를 찾아 70년 된 항아리 속 간장을 만났다.



신창 맹씨 21대손 맹건식씨와 부인 성낙희씨가 조상 대대로 지켜온 장독대 앞에서 밝게 웃고 있다.


70년 된 장독 지키는 성낙희 할머니



예부터 장 담그는 일은 가정의 중요한 연례행사였다. 조선시대 가정 살림에 관한 내용을 엮은 『규합총서』에 따르면 장을 담글 때는 반드시 길일을 택하고, 장 담그는 여인은 사흘 동안 입을 창호지로 봉해 작업을 했고, 장독엔 금줄을 치고 버선을 붙였다. 부정의 요소를 없애기 위해서였다.



우리 조상들은 온갖 정성을 들여 장을 담갔다. 집집마다 솜씨와 관리법이 달라 장맛은 곧 가문을 대표하는 상징이 됐다. “장이 단 집에 복이 많다” “되는 집안에는 장맛도 달다”는 말이 있다. 반면 “장맛이 변하면 집안에 흉한 일이 생긴다”는 말도 있다. 장은 가문의 운명을 결정짓는 중요한 지표로 여겨졌다. 신창 맹씨 가문도 예외는 아니었다. 간장이 부글부글 끓어오르던 해엔 종부 성낙희 할머니의 남편이 암 수술을 받기도 했다.



애지중지 만든 맹씨 가문의 장



성 할머니는 한 가마니나 되는 콩을 씻고 삶던 시어머니 모습이 아직도 눈에 선하다. 대추·메주·숯으로 애지중지 만들던 맹씨 가문의 장은 시어머니 손길에서 시작됐다.



이렇게 정성스레 만든 장은 커다란 장독에 담겨 고택 앞마당에 고스란히 놓였다. 시어머니는 하루도 거르지 않고 장독대를 쓸고 닦았다. 장독대 가장자리엔 채송화가 곱게 피었고 자줏빛 맨드라미가 필 때면 고추잠자리가 날아다녔다.



70년 세월이 덮인 장맛은 어떨까. 간장 독 뚜껑을 들어올리자 진한 소금 향이 코끝을 스친다. 장을 퍼내기 위한 작은 표주박은 툭 건드리자 쉽게 부서진다. 70년 세월의 흔적이다.



간장을 퍼내며 살짝 맛본 간장. 향이 진하고 짠맛이 전혀 없다. 얼핏 느끼기엔 한약 냄새가 난다. 오이채를 썰어 놓고 간장으로 간을 맞춰 만드는 오이냉국, 시원한 얼음물에 간장 한 방울 떨어뜨려 마시는 간장차, 할아버지 생신 때 끓이는 미역국. 마트에서 산 간장으론 맛볼 수 없는 시어머니 손맛이다.



간장을 만드는 비법이 있는 건지 여쭤도 “시어머니 어깨너머로 배운 것이 전부”라며 손사래치는 성 할머니. 70년의 세월을 묵힌 간장은 특별했다.





“시어머니 어깨너머로 배운 것이 전부”



2005년 한 지상파 방송에서는 맹씨 가문 며느리가 대대로 지켜온 전통 간장 이야기를 보도했다. 50년 묵은 간장의 가치가 1억원을 호가한다고 알려지면서 방송 후 폭발적인 인기를 끌었다.



이후 고택에 있는 간장 일부가 사라졌다. 할머니는 오랜 기간 지켜온 조상의 흔적을 송두리째 빼앗긴 심정이라며 혀를 내둘렀다.



“오래된 거유. 이 간장은. 시어머니께서 맨드신 걸 다 퍼갔슈. 밭일을 허구 돌아왔는디 글씨 어떤 할아버지가 훔쳐갔슈. 이젠 사람을 못 믿겄어.” 이후에도 간장을 몰래 퍼가는 사람이 많아 할머니는 아예 장독을 자식 집으로 보낸 상태다.



시어머니가 그렇게나 아꼈다던 간장. 70년 세월 속에 장맛은 변했지만 장 담그던 조상 손길은 그대로다. 맹씨 가문 여인들이 대대손손 지키려 했던 건 무엇이었을까. 고택에서 70년 된 간장 독을 지키는 종부의 삶이 어느덧 55년째로 접어든다. 여든의 종부는 말한다. “(독 관리하는 것이) 편할 게 뭐 있슈. 다 내 조상 내가 위허는 거유.”





글=장찬우 기자, 김진숙 객원기자 ,

이은희 인턴기자 , 사진=채원상 기자
공유하기
광고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