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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들 핸드백 속 요놈 작년 3200억 팔린 '효녀'

중앙일보 2014.06.16 00:48 경제 2면 지면보기
15일 아모레퍼시픽 연구원 미지움에서 최경호 팀장이 쿠션을 살펴보고 있다. 최 팀장은 “처음 식약처에서 에어쿠션을 심사할 때 ‘스킨이냐 로션이냐 크림이냐’고 물었다”며 “기존에 없던 제품이라 ‘스펀지침적로션제형’이라는 새로운 형태로 등록했다”고 말했다. [변선구 기자]


화장 좀 해본 여자라면 핸드백 속 파우치 안에 꼭 하나씩 들고 다니는 제품이 있다. 바로 외출하기 전 흐트러진 화장을 고칠 때 쓰는 ‘에어쿠션’이다. 아모레퍼시픽이 2008년 개발한 에어쿠션은 딱딱한 팩트나 손으로 짜서 쓰는 크림 대신 스펀지에 파운데이션과 선크림을 섞은 제품을 머금은 형태로 돼 있다. 얼굴에 직접 손을 대지 않고도 퍼프(화장솜의 일종)로 쉽게 바를 수 있고 화장 효과가 좋아 인기를 얻었다.

연중기획 퍼스트 펭귄 (18)
스펀지에 파운데이션+선크림 … 에어쿠션 개발, 최경호 아모레퍼시픽 팀장
잉크 머금고 있는 스탬프에 착안 … 흐르지 않으면서 적당량 배출하게



 에어쿠션은 이렇다 할 마케팅이나 광고 없이 입소문만으로 출시 5년 만에 한 해 매출을 3200억원(2013년) 올렸다. 지난해 중국과 싱가포르·말레이시아·태국·베트남 등 글로벌 시장에서는 120만 개 제품이 판매됐다. 미국 화장품 회사인 베네피트의 글로벌 마케팅 부사장이 방한해 직접 “한국의 화장품이 매년 놀라운 속도로 성장하고 있다”며 “히트상품 에어쿠션을 직접 써봤다”고 말할 정도다.



 지난 13일 경기도 용인시 아모레퍼시픽 연구원에서 ‘쿠션 열풍’을 만들어낸 최경호 메이크업 연구2팀장을 만났다.



 그는 화장품 업계에선 유명 인사다. 그의 손에서 탄생한 에어쿠션은 2012년 대한민국 기술대상 우수상을 받았고 산업통상자원부 2013년 차세대 일류상품으로 선정됐으며 경쟁사와 중저가 브랜드숍 등 거의 모든 화장품 업체가 쿠션을 벤치마킹할 정도로 기술력을 인정받았다.



 그러나 정작 최 팀장의 입에서 먼저 나온 건 실패의 경험이었다. 그와 7명의 팀원이 에어쿠션을 개발하기까지 좌절한 기억은 일일이 꼽을 수도 없다. “딱딱한 팩트는 수정화장 효과가 별로 없고 액체형 파운데이션은 화장 효과가 좋지만 손에 묻혀야 하고 가지고 다니기가 어렵잖아요. 생각을 조금만 바꾸면 될 것 같았어요. 가지고 다니기도 쉽고 바르기도 편리한 다른 제품들에서 아이디어를 얻어보자고 생각했죠.”



 사막에서 자동차 디자인의 영감을 얻듯 최 팀장과 개발팀도 닥치는 대로 새로운 것들을 찾아다녔다. 그러다가 눈에 띈 것이 바로 도장을 찍을 때 사용하는 스탬프였다. 적당한 액체 제형의 잉크를 머금고 있는데도 밖으로 새지 않고, 도장을 찍으면 일정 양만큼만 묻어나는 특성을 파운데이션에도 적용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이디어는 좋았지만 상품화는 쉽지 않았다. 스펀지 형태의 파운데이션과 우레탄 퍼프의 조합을 찾기까지 1년 가까운 시간이 걸렸다.



 최 팀장은 스탬프에 사용된 스펀지부터 시중에서 구할 수 있는 스펀지는 모두 긁어 모았다. 침구류에 쓰이는 라텍스, 목욕용·설거지용 스펀지 제조업체, 인형공장, 소파공장 등을 찾아다니며 닥치는 대로 가져다가 실험했다. 혼자 힘으로 하기에 시간이 많이 걸리자 연구팀과 마케팅팀·MD·디자인팀까지 나서서 손을 보탰다. 스펀지에 파운데이션을 손으로 주입해 다시 찍어 발라보는 형태였다. 내용물을 잘 머금고 있느냐, 찍어 바를 때 적당량을 배출하느냐, 오래도록 굳지 않고 묽은 화장품 형태를 유지하느냐가 관건이었다. 화장품은 잘 흡수하지만 배출하지 못하는 제품, 주입 자체가 어려운 스펀지 등을 수십여 개 버리고 난 뒤에야 몇 가지 스펀지의 특성을 결합해 적당한 성질을 찾을 수 있었다.



 스펀지가 해결되고 나니 화장품을 찍어 바르는 퍼프가 말썽이었다. 기존 합성 라텍스 퍼프를 사용하니 화장할 때 뭉쳐서 ‘떡진다’는 지적이 나왔고, 퍼프에 흡수되는 양이 많아 헤프다는 문제가 생겼다. 그는 ‘국내외에 참고할 만한 사례가 거의 없었기 때문에 오히려 뭐든지 시도해 볼 수 있다고 생각했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국내 화장품 제조기술이 궤도에 올라왔지만 새로운 영역이었기 때문에 무작정 찾아다녀야 했다.



 “좀 후진적으로 들리겠지만 화장품은 직접 써보지 않으면 단순 성분 분석으로는 결과를 예측할 수가 없어요. 잘될 것 같았는데 안 되거나, 반대로 예상치 못했는데 좋은 결과를 가져오는 경우가 정말 많아요.” 그래서 실험할 때 연구소 직원들과 그의 지인들의 얼굴은 ‘스케치북’이 된다.



 손등에 발라보는 것은 물론이고 얼굴 반쪽을 나눠 화장한 곳과 그렇지 않은 곳의 차이를 명확히 구분하는 작업이 반드시 필요하기 때문이다. 18년의 연구원 생활 동안 얼굴이 닳도록 1호 ‘마루타’가 돼준 부인은 이번에도 꼼꼼하게 피드백을 줬다. 기존 퍼프로는 안 된다는 결론이었다. 눈앞에 어질러진 화장 도구를 하나씩 이용해 보던 중 그는 아이섀도 팁이 의외로 부드럽고 화장품이 잘 펴발라진다는 걸 느꼈다. 화장품도 적당량을 머금었고 바르면 피부가 시원해지는 효과도 있었다. ‘이거다’라는 생각이 들자 그는 즉시 재료로 채택하고 상용화를 위한 연구에 나섰다. 겉은 화장품이 뭉치지 않도록 미세한 에어셀 재질로 만들고 중간층엔 쿠션을 넣고 필름막을 씌웠다.



 얼추 제품이 완성돼 간다고 생각했는데 생산 문제에 봉착했다. 생산공장이 기존에 가지고 있던 기기로는 화장품을 스펀지에 주입하는 게 불가능해 초창기에는 경북 김천 공장의 직원들이 손으로 일일이 스펀지에 화장품을 넣고 압을 가해 스펀지에 머금게 하느라 ‘손목이 아프다’는 불평이 나왔다. 정량을 담기 위해 일일이 저울에 달아야 했을 정도로 초창기 공정은 수작업만으로 이뤄졌다. 일단 효과를 입증받으면 생산공정을 기계화할 수 있을 거라고 믿었던 최 팀장이 공장 직원들을 독려하고 힘을 보태 초기 출시일을 겨우 맞췄고 그 에어쿠션이 대박을 냈다.



 그는 에어쿠션 개발의 비결을 “거듭된 실패”라고 단언했다. 최 팀장은 “연구에 실패하거나 야심 차게 내놓은 제품 실적이 부진하면 팀이 없어지기도 하고 기운이 빠지기도 한다”며 “그러나 그 실패가 결국 다 개발 노하우로 쌓였다”고 전했다. 실제로 그가 2005년 개발해 내놓은 헤라 모이스춰 케익 파운데이션은 시장에서 외면당한 제품이었다. 판매도 부진했고 소비자들이 거의 기억하지 못하는 제품이다. 그러나 그는 모이스춰 케익 파운데이션을 ‘에어쿠션의 아버지’라고 생각한다. 가루나 액체형이 아니라 크림형 파운데이션을 만들어 팩트에 담는 시도를 통해 흘러내리지 않는 제형의 파운데이션을 팩트 용기에 담는 노하우를 습득했기 때문이다.



 그는 지금 지속성이 좋고 번들거리지 않는 새로운 화장품을 개발 중이다. 액체도 고체도 아닌 젤리 형태의 제품을 여러 개 만들어 상품화하고 있다. 그에게 ‘혁신’이 무엇이냐고 물었다. 최 팀장은 “과거에 모두가 손가락으로 찍어 바르던 입술 제품이 곧은 형태의 립스틱이 나오면서 스틱 형태로 바뀌고, 팔레트 제품에 물을 묻혀 눈에 바르던 마스카라도 이제는 모두가 솔로 바른다”며 “이렇게 화장 문화를 더 편리하게 바꾸는 것이 내게는 혁신”이라고 말했다.



글=채윤경 기자

사진=변선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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