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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충기 부장의 삽질일기] 그류, 나가 쪼까 모지란 눔이유

온라인 중앙일보 2014.06.15 17:18


































계절이 넘어가며, 이제 밭은 진록으로 덮여간다. 모종으로 심은 상추는 빛이 바래 모가지를 꺾어버렸다. 갓이며 열무는 일찌감치 꽃대를 올렸고, 개똥쑥은 어느새 내 키만큼 자랐다. 오이가 허공에서 덩굴손 흔들기에 지지대를 끈으로 엮어 비빌 언덕을 만들어주었다. 며칠 새 무릎까지 자란 밭둑의 풀을 낫으로 쳐내니 호박 주위가 훤해졌다. 견우직녀도 아닌데 서로 시간이 맞지 않아 이번 주에도 동업자들을 보지 못했다. 어이 아자씨들아, 임을 봐야 뽕도 따고, 다 모여야 농사의 기술도 배울 거 아니냐. 집단카톡으로 밭의 사정을 알렸다.



나: 아그덜아

ㅡ 새벽에 나가 일 다하구 왔니라.

ㅡ 뜯어다 묵기만 하면 된다.

ㅡ 비트와 양배추 일부를 옮겨 심었는디, 지금은 축 늘어져 있으나 살아날 거이니 걱정 말구 밟구 다니지나 마삼.

ㅡ 49번 감자밭에 남겨 논 총각무가 다 자랐으니 몽땅 뽑아가도록 혀라. 다른 밭 여기저기 있는 열무도 몽땅 처리허구.

ㅡ 총각무와 열무 섞어서 김치 담가두 상관 없다잉.

ㅡ 나랑 석경 군은 열무를 담갔으니 세일군과 용석군이 알아서 처리 혀라.

ㅡ 밭둑 풀은 낫으루 쳐냈구 밭의 큰 풀은 다 뽑았으니 할 일 읎다.

ㅡ 주초에 비오니 물주지 말구

ㅡ 엄청 큰 오이 하나 엉아가 따왔다. 하나 더 있는데 아무나 묵어라.

ㅡ 부지런한 눔이 뭐라두 더 챙기는 건 만고의 진리 아니것느냐.

ㅡ 토마토 줄기 끈으루다가 묶어주구.



총각무와 열무 뽑아낸 자리에 남아있던 잔챙이들이 일주일새 또 훌쩍 자랐다. 더 놔두면 무는 심이 박히고, 꽃대 올라오면 잎도 줄기도 억세져 먹기 힘들다. 내가 다녀온 뒤에 차례로 다녀간 아자씨들이 이거저거 골고루 수확해갔단다. 용석 군이 밭주인 아줌마에게 오이 네 개 얻었다고 신났더니, 감자가 비실댄다고 걱정이다. 이보오, 알뿌리가 굵어가며 이파리가 힘을 잃어 그리 보이는 거라오. 장마오기 전에 캘 것이니 그냥 놔두면 된다오.



밭쥔장은 내 밭 한번 보고, 나 한번 보며 여전히 혀를 끌끌 찬다.



- 친구 분들이 와서 그러대요. 사장님이 물주지 말고 풀도 뽑지 말라고 그랬다면서요.

(쥔장은 밭에 오는 모든 아자씨들을 사장님으로, 아줌마들을 사모님으로 부른다)

모할하구 그런데 힘을 쓴대유. 대충 놔두구 뽑아묵으믄 그만이지.

또 그러던데요. 사장님이 좀 독특한 사람이래요. 내가 이런 말 했다고 친구들한테 말하지 마세요 ㅎㅎㅎ.



그류. 나가 쪼까 모지란 눔 맞소.





안충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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