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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평형수’ 야생을 찾는 사람들

온라인 중앙일보 2014.06.15 05:08
지난 5월 중국 윈난(雲南)성에 다녀왔다. 우리 공동체(감이당&남산강학원)에서 기획한 ‘소수민족 의학기행’의 일환이었다. 명작 다큐 ‘차마고도’를 통해 널리 알려졌듯이 윈난성은 소수민족의 집결지다. 소수민족은 각기 고유한 신화를 바탕으로 그에 걸맞은 의학체계를 갖추고 있다. 현대인에겐 좀 낯설게 들릴 테지만 몸과 우주는 ‘대칭적으로’ 연동돼 있다. 말하자면 자연 및 세계에 대한 인식과 생로병사의 원리는 나란히, 함께 간다. 고로 몸과 우주는 하나다!



일행은 감이당 멤버들에다 현지에서 합류한 두 명을 포함해 모두 열이었다. 세월호 참사의 여파로 다들 몸과 마음이 무거웠지만 낯설고 새로운 세계를 만난다는 설렘 또한 적지 않았다. 윈난성은 남한 면적의 네 배쯤 된다고 한다. 워낙 넓은 데다 일정이 빡빡해 매일매일이 고투의 연속이었다. 그 와중에 윈난성의 명소인 리장에서 ‘인상여강’이라는 공연을 감상하게 되었다.



인상여강? 처음 들었을 땐 좀 생뚱맞아 그런 사자성어도 있나 싶었다. 알고 보니 아주 간단한 말이었다. 인상은 말 그대로 ‘인상(印象·impression)’이고 ‘여강(麗江)’은 ‘리장’의 한자음이다. 풀이하면 ‘리장에 대한 인상’이란 뜻이다. 그 유명한 장이머우(張藝謀) 감독의 작품이다. 리장의 장관은 옥룡설산이다. 옥룡설산은 해발 5000m가 넘는 만년설산으로 모두 열세 개의 봉우리로 이루어져 있다. 해발 3000m쯤 되는 곳에 그 설산을 배경으로 노천무대를 꾸민 것이다. 500명의 배우가 무대를 종횡으로 누비면서 70여 분간 공연을 이끌어갔다. 배우들은 자신들을 그 지역에서 나고 자란 11개 소수민족의 후예라고 소개했다. 와, 놀라웠다. 소수민족의 삶을 전문배우가 아닌 소수민족들 스스로 이야기하게 했다는 점에서. 그래서인가. 이 방대한 무대를 휘어잡기 위해선 고도의 숙련과정을 거쳐야 했겠지만, 작품의 스토리와 아우라는 ‘날것 그대로’였다.



문득 할리우드 대작 ‘아바타’가 떠올랐다. 아바타도 야생의 신화를 다룬다. 인간과 자연, 그 경계를 넘나드는 야생적 신체들이 등장해 문명의 기괴한 진군 앞에서 인류가 잃어버린 것이 무엇인지를 그려낸 명작이다. 그 실감성을 드높이기 위해 첨단 컴퓨터그래픽(CG) 기술을 최대한 활용하고 거기에 더해 3D, 4D 장치까지 마련하지 않았던가.



장이머우의 ‘인상여강’은 반대다. 어떤 효과나 장치 없이 인생과 자연을 ‘있는 그대로’ 보여준다. 시시각각 변화무쌍하게 흘러가는 옥룡설산 13개 봉우리만으로도 무대 효과는 충분하다. 서사와 이미지의 변주도 불필요하다. 소수민족의 일상과 풍속을 그대로 보여줄 뿐 아무것도 덧보태지 않았다. 장이머우의 뚝심 혹은 소수민족의 저력을 확인할 수 있는 대목이다.



‘아바타’와 ‘인상여상’. 그 둘이 연출하는 차이도 흥미로웠지만 더 중요한 질문은 따로 있다. 할리우드건 중원이건 왜 현대인은 이토록 야생을 찾아헤매는 것일까. 스마트폰이 모든 것을 해결해주고, 서비스와 케어가 넘쳐나는 이 시대에. 이미지와 게임의 홍수 속에서 감각적 쾌락이 넘쳐나는 이 시대에. 왜 그 엄청난 대자본을 들여 ‘아바타’의 신화를 창조하고, 왜 그렇게 높은 곳까지 올라가 작열하는 태양빛을 기꺼이 감내하면서 ‘인상여강’을 감상하는 것일까.



하긴 예능에서도 요즘은 ‘생고생’을 자처하는 프로가 대세다. 정글의 법칙, 1박2일, 7인의 식객 등등. 또 각종 채널마다 인류의 시원을 찾아가는 다큐가 넘쳐난다. 대체 왜?



어쩌면 질문 안에 단서가 있을지도 모르겠다. 스마트폰과 서비스의 홍수 속에서 삶이 실종되었다고 하는!



삶의 현장은 어디까지나 몸이다. 몸은 스스로 길을 열어가기를 원한다. 기술이란 그 길을 여는 수단일 뿐인데, 어느덧 기술이 내 삶의 주인이 되고 말았다. 거기에 의존하면 할수록 존재의 무게중심은 동요한다. 동요하면서 치솟는다. 그리고 무게중심이 높아질수록 내 안의 평형수는 고갈돼 버린다. 세월호 참사에서 사무치게 깨달았듯이 무게중심이 상승하고 평형수가 고갈되면 삶의 복원력도 사라진다.



야생을 지향하는 건 이런 징후를 무의식적으로 감지한 때문이 아닐까. 야생이란 내 안의 자연이자 존재의 평형수 같은 것이므로. 그러므로 문명의 진군이 가속화될수록 야생에의 열망 또한 멈추지 않을 것이다. 디지털과 야생, 첨단과 신화의 마주침! 21세기가 열어야 할 비전이 여기에 있을지도 모르겠다.






고미숙 고전평론가 40대 이후 지식인 공동체 활동을 해왔고, 현재는 감이당&남산강학원에서 ‘공부와 밥과 우정’을 동시에 해결하고 있다. 저서로는 『열하일기 3종세트』 『달인 3종세트』 『 동의보감 3종세트』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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