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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교함과 넘치는 에너지 웰컴, 바이올린 든 ‘베컴’

중앙선데이 2014.06.14 16:17 379호 6면 지면보기
최근 개봉한 영화 ‘파가니니: 악마의 바이올리니스트’에서는 실제 인물보다 과하게 잘생긴 배우가 파가니니 역을 맡았다. 그렇다면 그의 바이올린 솜씨는? 파가니니와 비교하면 어떨지 모르지만 적어도 파가니니가 쓴 작품의 연주는 나무랄 데가 없다. 데이비드 가렛(33) 얘기다.

18·19일 내한공연, 꽃미남 바이올리니스트 데이비드 가렛

그는 1981년 독일 아헨에서 태어났다. 어머니는 수석 발레리나 도브 가렛, 아버지는 골동품 딜러인 게오르크 본가르츠였다. 어머니의 결혼 전 성을 자신의 활동 이름으로 삼은 이유는 순전히 발음하기가 더 나아서였다.
가렛이 4세 때 아버지는 형에게 바이올린을 사주었다. 어린 가렛은 형의 바이올린에 관심을 가졌다. 5세 때 콩쿠르에 나가 우승했고, 7세 때부터 뤼베크 음악원에서 공부했다. 11세 때 독일 대통령 리하르트 폰 바이츠제커 앞에서 연주했는데, 감동을 받은 대통령은 가렛에게 스트라디바리우스를 대여해 주었다.

12세 소년을 가르친 폴란드 출신의 전설적인 바이올리니스트 이다 헨델은 본인이 ‘분더킨트(조숙한 신동)’였던 거장으로서 누구보다 가렛을 잘 이해해주었다. 13세 때는 도이치그라모폰과 계약해 두 장의 CD를 녹음하고 독일과 네덜란드 TV에 출연했다. 1990년대 음악팬들에게 가렛은 ‘미소년 바이올리니스트’로 각인됐다.

97년 그는 인도 독립 50주년을 기념해 델리와 뭄바이에서 주빈 메타가 지휘하는 뮌헨 필과 협연했다. 이듬해 런던 로열 칼리지 오브 뮤직에 입학했는데 특유의 방랑벽이 발휘돼 한 학기 만에 학교를 떠났다. 99년 뉴욕 줄리어드 음악원에 입학, 이츠하크 펄먼을 사사한 그는 190cm가 넘는 큰 키와 머리 기른 베컴 같은 수려한 외모로 틈틈이 모델 활동을 하며 돈을 벌었다.

2007년 이후에는 크로스오버 활동으로 명성을 얻었다. 그는 한 인터뷰에서 “10대 시절 녹음하는 레퍼토리에 대해 내 견해가 반영된 적이 없었다”고 털어놓았는데, 이렇게 어릴 적에 경험한 자유롭지 못하고 냉혹한 음반 비즈니스에 대한 반발이 그를 크로스오버활동으로 이끌었을 것 같다.

2007년 데카에서 발매된 앨범 ‘Free’와 ‘Virtuoso’에는 말 그대로 ‘자유로운’ 레퍼토리를 담았다. 엔니오 모리코네의 영화 주제곡, 림스키 코르사코프와 파가나니 등의 클래식, 메탈리카의 록에서부터 스스로 작곡한 멜로디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선율과 리듬을 망라했다. 2008년 앨범 ‘Encore’에는 마이클 잭슨의 ‘Smooth Criminal’, ‘캐리비안의 해적’ 등과 헝가리 춤곡 5번 등이 담겼다.

가장 최근의 새 앨범 ‘Caprice’는 클래식에 무게중심이 실렸다. 이 음반을 들으면 그간의 크로스오버 활동을 보는 곱지 않은 시선에 대한 포효 같은 것이 느껴진다. ‘카프리스 No.24’ ‘라 캄파넬라’ ‘베니스의 카니발’ 등 파가니니의 작품과 비에냐프스키 ‘카프리치오 타란텔라’, 타르티니 ‘악마의 트릴’ 등에서 여전히 기교를 벼리는 젊은 연주가의 실루엣을 엿볼 수 있다. 그의 음악은 외모나 레퍼토리만큼 파격적이지 않다. 영상으로 그의 연주를 보다 보면 파격보다는 정교하고 조심성 있는 내면을 포착하게 된다.

18일 오후 8시 올림픽공원 올림픽홀, 19일 오후 8시 부산 벡스코 오디토리움에서 데이비드 가렛을 볼 수 있다. 그의 연주에 ‘세상 음악에 놓인 경계를 부수는’ 따위의 거창한 의미를 부여하고 싶지 않다. 하루도 바이올린을 놓지 않는 성실한 연주가가 발산하는 땀과 꿈틀대는 에너지를 현장에서 느끼고 싶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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