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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50도 살까 말까 … 패션 벽 허무는 납작신발

중앙선데이 2014.06.14 16:50 379호 21면 지면보기
지난 주말 한 백화점 지하 식품매장에서 눈을 의심하지 않을 수 없었다. 20대로 보이는 한 여인의 신발 때문이었다. 두툼한 고무 밑창에 일명 찍찍이라 불리는 벨크로 스트랩을 장착한 스포츠 샌들. 원피스를 차려입은 여자는 거기에 흐린 파란색 양말을 신고 있었다. 샌들에 양말이라니. 그건 바로 꼴불견 패션의 유형을 묻는 설문에서 단골로 등장하던 아저씨들의 전유물 아니었나.

스타일#: 효도 신발과 킬힐 사이

그렇다고 그를 ‘패션 테러리스트’라 단정짓는 건 섣부르다. 오히려 정반대, 그러니까 최고 유행을 가장 먼저 섭렵한 트렌드 세터일 가능성이 농후하다. 왜냐고? 지금껏 동네 아저씨 패션에서 숱하게 봐 왔던 바로 그 샌들, 일명 ‘테바’가 올여름 가장 뜨는 물건이기 때문이다. 패션 잡지에서는 심심찮게 샌들에 양말을 신은 스타일링 화보를 선보이기도 했다.

별게 다 유행이다 싶지만 이같은 스포츠 샌들의 존재감은 일찌감치 드러났다. 지난가을 열린 2014 봄여름 컬렉션에선 럭셔리 브랜드마다 일제히 이 테바형 샌들을 등장시켰다. 프라다는 화려한 보석과 스파클 장식으로, 마르니는 통굽의 플랫폼 스타일로 변형시키며 고급화를 지향했다. 분칠을 제대로 하고 난 신발은 어디 해변에나 끌고 다닐 신발의 위상이 아니었다.

따지고 보면 패션의 완성이라는 신발이 격식을 벗어버린 게 처음은 아니다. 2013년 FW 컬렉션에서 셀린느가 슬리퍼 바닥에 퍼(fur)를 깔아 선보인 것이 시초였다. 그 모양이 마치 90년대 대학가를 휩쓸었던 버켄스탁과 비슷해 ‘퍼켄스탁’이라는 별칭도 붙었다. 처음엔 그저 웃겼는데 멋이 뭐라고. 실제 뉴욕 거리에선 한겨울에 양말을 신고 이 슬리퍼에 발을 끼운 처자들이 심심찮게 등장했다. 그 원형이 됐던 버켄스탁이 덩달아 인기를 끈 것도 물론이다. 이것만이 아니다. 초등학생 실내화를 연상시키는 슬립온(발에 쏙 들어가도록 만든 끈 없는 운동화 종류) 역시 올봄 거리를 휩쓸었다.

유행의 원인을 찾자면 간단하다. 요 몇 년 대세로 자리 잡은 스포티즘의 영향이 크다. 정장 바지에도, 롱스커트에도 스니커즈가 대세가 된 건 이미 오래 전이다. 야구 점퍼, 스냅백, 트레이닝복이 길거리를 누비는 멋쟁이 스트리트 패션으로 자리 잡았다. 이 여세를 몰아 하이힐을 포기한 구두 트렌드가 자연스레 생겨난 것이다. 편하지만 좀 없어 보일 수 있다는 단점은 유명 브랜드에서 앞장서 바꿔 놨다. 고급스러운 장식으로 디자인을 업그레이드시키고, 맥시 드레스니 레이스 블라우스니 하는 우아한 의상들과 스타일링 하는 센스를 보여줬다.

납작 신발의 대세를 지켜보며 한 가지 흥미로운 점은 의도했건 의도하지 않았건 그것이 ‘세대의 문호 개방’을 이뤘다는 사실이다. 대개 유행이라 하면 1020세대의 전유물이기 일쑤였다. 슬쩍슬쩍 살이 비치는 시스루룩, 실루엣이 드러나는 스키니진, 허벅지가 훤히 보이는 초미니 반바지 등이 제아무리 트렌드라 한들 나이라는 장벽 앞에서 주춤하는 이들이 한둘이었을까. 하지만 4050도 두려움 없이 따라 해 볼 보편적 물건이 바로 납작 신발이다.

실제 명동 거리나 고속터미널 지하상가만 돌아다녀도 이를 체감한다. 통굽의 샌들과 슬리퍼, 슬립온 등 유행 신발을 대부분 가게에서 쉽게 찾을 수 있는데 이를 구경하는 손님들 역시 다양하다. 요 전날 이곳을 둘러보다 한 매장에서 세일 중인 뱀피 무늬 슬립온을 만지작거리는 한 50대 아주머니에게 슬쩍 다가가 물었다. 마음에 드시냐고. “다른 건 모르겠는데 편하긴 엄청 편해. 다녀 보면 젊은 애들도 여럿 신었던데 그걸 보니까 나도 한번 신어보자 그런 마음이 드네.” 옆에서 스포츠 샌들을 고르던 다른 손님은 여기에 말을 보탰다. “우리 딸내미랑 번갈아 신어도 되겠어.”

세대를 아우르는 패션이 있기란 쉽지 않다. ‘이 나이에…’라는 이유로 색깔 하나, 입는 방식 하나가 달라진다. 청바지가 그나마 거의 유일한 대안이랄까. 그러니 지금 찾아온 행운의 트렌드가 더없이 반갑다. 효도 신발과 킬힐의 간극을 좁혀주는 통합, 이것이 납작 신발이 가져온 미덕이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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