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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상득의 인생은 즐거워] 누나의 예쁜 거짓말

중앙선데이 2014.06.14 17:44 379호 30면 지면보기
초등학교 다닐 때 나는 2학년 1학기 한 학기 동안 버스를 타고 다니는 통학을 했다. 부산 대신동에 있는 학교에 다니고 있었는데 2학년에 올라갈 무렵 하단으로 이사를 한 것이다. 전학을 해야 했지만 아버지는 시내에 있는 학교에 계속 다니는 것이 자식들에게 교육적으로 좋을 거라면서 전학을 시키지 않았다. 아버지의 교육열 덕분에 나는 두 살 많은 누나와 함께 하단에서 대신동까지 버스로 40분가량 걸리는 거리를 통학했다.

차비가 20원이었으니까 매일 아침 학교에 가기 전에 어머니에게 10원짜리 동전 네 개를 받았다. 그것은 굉장한 일이었다. 초등학교 2학년 아이에게 40원이 큰돈이기도 했지만 그것보다는 자신이 돈을 지불하는 소비행위의 주체라는 자각 때문이었다. 같은 소비행위라 해도 차비를 내고 버스를 타는 일은 동네 가게에서 돈을 내고 과자를 사 먹는 것과는 확실히 차원이 달랐다. 마치 어른이 된 것 같았다.

정말 어른이 된 건 아니라서 나는 촐랑대며 운동장에서 놀다가 집에 돌아갈 차비를 잃어버렸다. 누나와 함께 정류장에서 버스를 기다리다가 바지 주머니를 확인했을 때, 몇 번이나 뒤져도 손에 잡히는 것이 아무것도 없다는 것을 알았을 때, 잃어버리는 일이 얼마나 큰일인지 깨달았다. 나는 누나에게 주먹을 펼쳐 보였다. 있어야 할 10원짜리 동전 두 개가 없는 빈 주먹을.

우리는 걸어서 집으로 가기로 했다. 다른 방법은 상상도 못했다. 차비를 잃어버린 동생과 차비를 잃어버리지 않은 누나는 함께 대신동에서 하단까지 2시간 정도 걸어야 했다. 날씨는 더웠다. 유월의 태양은 뜨거웠다. 집으로 가는 길은 삼만 리나 되는 것처럼 가도 가도 끝이 없었다. 대티터널을 지나 괴정쯤 갔을까? 나는 군것질을 좋아하지 않는 누나를 졸랐다. 누나의 차비로 하드아이스바를 하나씩 사 먹자고.

하드아이스바는 맛있었다. 차고 달았다. 그 맛은 갈증과 피로와 근육통과 죄의식을 모두 녹이는 것 같았다. 평소보다 한 시간 반이나 늦게 집에 왔을 때도, 걱정과 불안과 후회와 자책으로 우리를 기다리던 어머니 앞에 섰을 때도, 누나에게 자초지종 이야기를 다 들은 어머니가 앞으로는 차비를 잘 간수하라는 당부만 할 뿐 내게 야단을 치지 않았을 때도 나는 하드아이스바 맛만 생각하고 있었다.

그 후로도 몇 번인가 나는 차비를 잃어버리고 대신동에서 하단까지 2시간 정도 걸어서 누나와 함께 집으로 돌아오곤 했다. 하드아이스바를 쪽쪽 빨면서.

한번은 누나가 차비를 잃어버린 적도 있었다. 평소 침착하고 조심성이 많아서 잘 잃어버리지 않는 성격의 누나가 쑥스러워 하면서 내게 빈 주먹을 펼쳐보였다. 차비를 잃어버렸으니 같이 걸어가자고. 그날은 내 차비로 하드아이스바를 하나씩 사서 먹으면서 걸었다.

날씨는 더웠다. 유월의 태양은 뜨거웠다. 아스팔트의 타르가 녹아서 신발에 쩍쩍 달라붙을 것 같았다. 하드아이스바를 다 먹고도 나는 나무 막대기를 버리지 못하고 계속 쪽쪽 빨았다. 누나가 보기 싫다고 버리라고 해도 계속 막대기를 쪽쪽 빨았다. 이제는 나무 맛만 나는 막대기를. 그런 나를 노려보던 누나는 한숨을 쉬었다.

너 하나 더 먹고 싶어? 누나가 주먹을 펼치자 10원짜리 동전 두 개가 유월의 뜨거운 태양 아래 반짝였다. 잃어버렸다던 누나의 차비 20원이.



결혼정보회사 듀오의 기획부장이다. 눈물과 웃음이 꼬물꼬물 묻어나는 글을 쓰고 싶어한다. 『아내를 탐하다』 『슈슈』를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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