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국정원을 수족으로 안 쓴다”는 의지, 대통령이 밝혀야

중앙선데이 2014.06.14 23:35 379호 5면 지면보기
박근혜 대통령이 지난해 5월 이병기 주일대사에게 임명장을 수여한 뒤 함께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중앙포토]
“실추된 국정원의 권위와 국민의 신뢰를 회복하고, 국가와 국민의 안전을 위한 본연의 임무에 보다 철저하게 노력해야 할 때다.”

[전문가 대담] ‘이병기 국정원’이 제자리 잡으려면

전옥현 1956년 충남 서천 출생. 서울대 외교학과. 국가정보원 해외정보실장·1차장, 홍콩 총영사 역임.
30년 동안 국정원에서 근무한 전옥현(전 국정원 1차장) 서울대 국제대학원 초빙교수와 새누리당 비상대책위원을 지낸 이상돈 중앙대 명예교수는 이병기 신임 원장 후보자에게 철저한 자기반성과 신뢰 회복을 위한 노력을 주문했다. 두 사람은 이 후보자에 대해 “정보를 아는 전문가가 국정원을 책임지게 됐다는 점에서 이번 인사를 긍정적으로 평가한다”며 “땅에 떨어진 국민의 신뢰를 어떻게 회복해 나가느냐가 첫 과제”라고 강조했다. 이 교수는 이를 위해 “정보기관 본연의 능력을 제대로 갖춘다는 마음으로 하나하나 착실하게 바꿔 나가야 할 것”이라며 원칙론에 입각한 개혁을 제시했다. 전 전 차장도 “수집된 각종 정보에 대해 대통령에게 국민의 아픔을 여과 없이 제대로 전달하고, 때로는 하기 힘든 진언도 해야 한다”며 적극적인 자세를 요구했다. 다음은 일문일답.

-이병기 대사의 내정을 어떻게 보나. 적임자인가.
▶전옥현=그동안 댓글 사건, NLL 대화록, 간첩 서류 위조 사건 등이 이어지면서 국정원에 대한 국민의 신뢰가 크게 떨어졌다. 이는 정보를 모르는 사람이 국정원장에 계속해서 있었기 때문이다. 이 후보자는 과거 국정원장 특보와 차장 등으로 근무하면서 정보 업무에 대한 이해가 깊기 때문에 적임자라 할 수 있다. 1997년 황장엽씨 망명 때도 직간접적으로 깊숙이 관여하는 등 정보 마인드를 갖춘 사람이다. 여의도에서 정치권 생활도 오래 해서 상당한 정치적 감각까지 갖추고 있는 것도 장점이다. 어떤 발언이나 행동을 하면 정치적으로 상당한 논란이 있을 것이라는 것을 여느 원장보다 잘 알 것이다.
▶이상돈=경직된 스타일로 조직을 운영해온 군 출신이 원장을 맡았던 것도 문제였다. 북방한계선(NLL) 관련 대화록 논란만 하더라도 정상적인 국정원장이라면 그렇게 다루진 않았을 것이다. 얼마나 잘 할지는 두고 봐야 알겠지만 과거 원장들에 비하면 다행이다. 국정원을 경험했던 사람이고, 정무적 판단이 가능한데다 경직돼 보이지 않는다는 점에서 이번에 대통령이 한 인사 중에서 제일 적절한 인사가 되지 않았나 본다.

이상돈 1951년 부산 출생. 서울대 법대, 미 툴레인대 법학 박사. 중앙대 법대 교수·학장·법학연구소장 역임.
공정 인사로 원장·직원간 신뢰 높여야
-신임 국정원장의 가장 큰 과제는 무엇인가.
▶전=국정원을 정보기관 본연의 역할로 회복시키는 게 1차 과제다. 이를 위해선 철저한 비밀주의와 정확한 정보 판단에 기초한 활동이 이뤄져야 한다. 이런 기능을 살리려면 아무리 훌륭한 원장이 간다 하더라도 시간이 필요하다. 조급하게 생각하지 말고 차근차근 해결해나가야 한다. 국정원 직원들의 일하는 분위기를 만드는 것도 중요하다. 이를 위해 직원들의 전문성을 살릴 수 있는 공정한 인사관리가 무엇보다 중요하다. 원장과 직원 간의 신뢰도 크게 떨어진 상황이다. 그동안 원장들이 계속 사고를 치는 바람에 죄 없는 직원들만 국민들로부터 무능하다고 불신받고 있다. 우선 이를 빠른 시간 내에 복구해나가는 것이 필요하다.
▶이=민주주의 국가에서 우리 국정원처럼 권한이 많은 경우는 없다. 국가 안보와 관련되지 않은 일반적인 국내 정치, 사회적 사안에 대한 정보 수집부터 접어야 한다. 정보기관이 국내 수사권을 같이 행사하는 곳은 적어도 민주주의 국가에는 없다. 이제는 국내 수사권 분야를 다른 기관에 이관해서 국정원 본연의 임무에 충실한 개혁의 첫 단추를 시작해야 할 때라고 본다. 이 후보자가 과거부터 엄청나게 쌓여온 적폐를 단시간 내에 얼마나 고칠 수 있을지는 다소 걱정된다.

-국정원의 정치적 중립에 대한 국민들의 관심이 높다. 신임 원장이 이를 어떻게 풀어야 하나.
▶전=말로는 굉장히 쉬우면서도 국정원이 지금까지도 해결하지 못한 큰 숙제다. 과거 국정원장이 바뀔 때마다 취임 일성이 ‘정치 개입 의혹으로부터 해방되자’였다. 정치 중립 선언도 하고, 워크숍도 하고, 많은 프로그램을 운영해 왔다. 그럼에도 논란이 끊이질 않는다. 이론적으로 말하자면 국정원이 대통령 직속기관이기 때문에 대통령 스스로 국정원을 정국 운영에 필요한 하나의 수족으로 활용하지 않겠다는 의지를 밝히는 것이 중요하다.
▶이=현 상황에서 국정원의 정치적 중립을 제도적인 장치로 보장하는 것은 어렵다고 본다. 지금의 야당도 과거 집권 시절에 국정원 개혁하려 했는데 결국 못했다는 말을 하지 않았나. 대통령에게 국정원이 제공하는 정보가 너무 달콤하다 보니 취임 전엔 개혁을 약속하고도 나중에 유야무야되고 마는 것이다. 국내 안보·테러에 관련된 것이 아닌 일반적인 정보는 결국 대통령을 위해 쓰이는 것인 만큼 대통령이 나서서 그런 분야를 국정원 업무로부터 과감하게 덜어내야만 국정원 본연의 기능이 살아날 것이다.

국민들, 국정원 대북 정보 신뢰 안 해
-여야 합의로 국정원 요원의 기관 상시 출입을 금지하기로 했다. 국정원 활동에 문제는 없을까.
▶전=국정원이 과거처럼 국내 정치에 개입하거나 정보 수집활동을 하지 않지만 그래도 국민들의 우려가 있다. 오해의 소지가 있는 어떠한 정치 정보활동도 원천적으로 배제하는 다양한 보완조치를 강구하고 시행해야 한다. 하지만 정보 수집 위축으로 생기는 사각지대를 해결하기 위해 통신 감청 등의 허용이 적극 검토돼야 한다. 유병언을 못 잡는 것도 휴대전화 감청이 안 돼서다. 테러 관련 업무를 총괄할 대(對)테러 기본법도 조속하게 제정돼야 한다. 정상적인 정보활동을 가능하게 만드는 제도적 보완이 시급하다.
▶이=문제는 국민들이 정보기관에 대한 신뢰가 있느냐는 것이다. 미국의 국가안보국(NSA)이 쉽게 감청할 수 있는 것도 신뢰가 있기 때문이다. 휴대전화 감청을 허용해달라고 요구하기에 앞서 국정원의 신뢰를 좀 더 쌓아 나가는 것이 우선 돼야 한다.

-국민의 신뢰를 얻기 위한 구체적인 조치로는.
▶전=시간이 다소 걸리더라도 국정원 고유의 정보 분석 능력을 통해서 국민의 신뢰를 얻을 수밖에 없지 않나 싶다. 국가 안보와 관련된 정보 분석을 국회를 통해 공개해서 믿을 수 있는 정보를 수집한다는 평가를 받아야 한다. 그래서 ‘이제는 믿을 수 있는 정보를 수집하는구나. 우리 국민이 안심하고 국가 안보 상황을 이해할 수 있구나’ 하는 공감대를 형성해나가는 것이 필요하다.

-일각에서는 대공 수사권이나 대북 정보 수집 능력이 약화될 수 있다는 우려도 있다.
▶이=안보 위협세력에 대한 수사권을 국정원이 독점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 대공 수사권의 약화가 우려된다면 검찰과 경찰, 기무사 등의 관련 수사 분야 등을 아울러 새로운 통합 조직을 만드는 것을 진지하게 검토해야 한다.
▶전=장기적으로 통합 정보기관을 만드는 것을 검토할 필요는 있다. 국내 정보 공동체 차원에서의 개혁도 함께 이뤄져야 한다. 하지만 현재 북한의 대남 노선에 전혀 변화가 없는 상황에서 통일 이전까지는 대공 수사권을 갖는 단일 정보기관이 대공 수사 정보를 확보하는 게 더 효율적이라고 본다.

-향후 북한에서 상당한 격변이 일어날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신임 원장이 이 같은 북한 정세를 제대로 감지하고 대응책을 잘 세우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이=국정원의 대북 정보를 신뢰하는 국민이 별로 없다는 게 문제다. 정보의 공개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나중에 밝혀지더라도 그 당시에 제대로 분석했느냐가 더 중요하다.
▶전=1980년대 박철언 특보 이후부터 국정원 내에는 대북 대화 비밀 채널이 운용돼 왔다. 상시 24시간 대화가 가능했다. 김대중·노무현 정부 때까지 나름대로 역할을 해왔다. 그런데 이명박 정부 들어서 완전히 없어졌다. 김정은에게 박근혜 대통령의 뜻을 언제라도 직접 전달할 수 있는 비밀 대화 채널을 국정원이 빨리 다시 개설하는 것이 시급한 과제다.

-유우성 간첩조작 사건으로 국정원이 곤욕을 치렀다. 그 과정에서 국정원의 비선조직이 노출되고, ‘블랙요원’의 신상까지 밝혀졌다. 앞으로 이 내정자는 이 문제를 어떻게 다뤄야 하나.
▶전=전 세계 정보 기록사에 치욕적인 사건으로 꼽힐 만큼 돌이킬 수 없는 뼈아픈 실수였다. 이 모두 국정원장의 업무 수행 몰이해와 무능에서 비롯됐다. 내부에서 (비밀요원을) 공개하면 안 된다고 했어야 했다. 신임 원장은 이런 조직의 복원이 단시간에 쉽지 않은 만큼 과욕을 부리면 안 된다. 휴민트 조직의 조속한 복원에 집착하면 사고가 또 날 수 있다. 눈에 보이지 않게 차분하게 복구시켜 나가야 한다.

야당과는 대선 댓글 앙금 풀도록
-국내 이야기로 돌아와보자. 야당과의 관계가 여전히 껄끄럽다.
▶이=신임 원장은 대선 댓글 수사로 불거졌던 앙금을 털고 야당과 신뢰를 쌓는 데 주력해야 한다. 과거와 같은 일이 이제는 절대로 없을 것이라는 원장의 의지를 직접 보여주는 것도 신뢰를 얻을 수 있는 방법이다. 신뢰 회복 없이는 개혁도 인정받지 못할 것이다.
▶전=정치적인 오해를 불식시키기 위해 국회 정보위를 활성화시키는 것이 필요하다. 그러려면 여야가 정보 제공에서 전혀 차별대우를 받지 않아야 한다. 정보를 야당과 함께 공유하되 외부에 누설될 경우 현행 법에 따라 예외 없이 처벌하도록 하면 된다.

-원장이 바뀌면 국정원 인사도 크게 바뀌면서 홍역을 치러 왔다. 국정원 내부 인사 문제는 어떻게 해야 할까.
▶전=원장이 부임하면서 자기 인사를 데려가지 말아야 한다. 전임 남 원장은 군 출신 측근 여러 명을 고위직으로 데려가 써서 내부 반발이 있었다. 정치권의 인사 청탁도 배제하되 실무 부서별로 전문성을 살려 부서장들의 인사권을 최대한 존중해야 한다.

-새로운 국정원을 만들기 위한 조언이 있다면.
▶이=국가 안보와 국민의 안전을 지키는 게 국정원 본연의 업무다. 하루빨리 과거의 적폐를 없애고 국정원 고유의 본연의 임무에 충실해야 한다. 해외에 나가 있는 기업과 국민들에 대한 보호에도 신경 써야 할 때다.
▶전=원장은 대통령과 독대할 수 있는 특권적인 위치에 있는 만큼 국민 여론과 민생의 아픔을 여과 없이 대통령에게 전달해야 한다. 국민의 소리를 가감 없이 진언해야 할 것이다.



정리=이재승 인턴기자

구독신청

공유하기
광고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