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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요해진 포구에 어둠 내리면 흐느낌은 이내 통곡으로

중앙선데이 2014.06.14 23:48 379호 8면 지면보기
모처럼 따사로운 오후 햇살이 작은 포구에 내려앉았다. 방파제길 너머 빨간 등대는 더욱 선명해졌지만 길을 따라 매달린 노란 리본은 빛이 바랜 채 속절없는 바닷바람에 몸을 내맡겼다.

진도 팽목항은 다시 열렸지만 …

 지난 12일 오후. 전남 진도군 임회면 팽목항. 북적이던 포구는 여느 초여름처럼 고요했다. 가끔씩 울리는 목탁 소리만 남은 이들의 가슴을 어루만졌다. 방파제길 난간을 따라 곰팡이가 핀 방울토마토며 비에 젖어 쭈글쭈글해진 과자 상자가 군데군데 놓였다. 엄마의 기도를 담은 새 운동화도 다소곳이 주인을 기다렸다.

 그림자가 길어질 무렵, 모녀가 팔짱을 끼고 좁은 등대길을 걸었다. 소리 없는 흐느낌에 어깨를 들썩였다. 한 걸음을 디딜 때마다 빛바랜 리본에 적힌 글귀를 읽고 또 읽었다.

 초로의 남자는 난간에 기대 한동안 바다만 바라봤다. 강원도 원주에서 온 박성순(56)씨는 “해 질 녘 바다에 색소폰을 불어주고 싶었는데 사람들이 만류해서 못 했다”고 했다. 박씨는 “그동안 찾지 못해 죄를 짓는 기분이었다”며 발길을 돌렸다.

 해가 지면 소리 없는 흐느낌은 작은 통곡으로 바뀐다. 술 취한 아버지는 밤이 내리면 아들의 이름을 부르며 바다를 향해 울부짖는다.

 “생명수라고 불러요. 생명수라도 마시지 않으면 견딜 수가 없으니까요.”

 두 달째 팽목항을 지키고 있는 40대 ‘햄버거 아저씨’는 종종 가족들과 ‘생명수’를 나눈다. 힘든 시간을 함께 보낸 ‘햄버거 아저씨’에게 가족들은 어느새 곁을 내줬다. 소주병을 기울이며 함께 눈물 흘린 두 달이었다.

 팽목항이 다시 열리면서 텐트촌은 포구 끝으로 자리를 옮겼다. 가족들이 머무는 조립식 주택 앞에 ‘햄버거 아저씨’의 가게도 자리를 잡았다. 사고 초기 가족과 자원봉사자, 잠수사들을 위해 하루 1800개의 햄버거를 만들었다. 요즘은 하루 300여 개로 일이 줄었다. 가족들은 그가 지나가면 바짓단을 잡아 끈다. 피만 안 나눴을 뿐, 그들은 ‘팽목항의 가족’이 됐다. 공무원들이 그의 가게를 철거하려 했을 때 앞을 가로막았던 것도 가족들이었다.

 “분노와 불안의 시기를 넘어 이제 감정의 정체기가 된 것 같아요. 이제는 반복되는 ‘고통의 뫼비우스 띠’ 속에 빠진 것 같아 마음이 아픕니다.”

 자정을 훌쩍 넘긴 새벽. 진도체육관에 라면 냄새가 퍼져나간다. 실종자를 찾은 가족들도 ‘잊혀지지 않기 위해’ 자주 진도에 내려온다. 안산에서 막차를 타고 진도에 도착하면 새벽 1시30분. 새마을봉사단 박경숙(54·여)씨는 가족들을 위해 라면을 끓인다.

 “새벽에 휴게소도 문을 닫으니 여기 도착하면 허기가 져요. 라면이나마 따뜻하게 차려줘야지요.”

 박씨는 “오늘 중근이네 가족이 ‘장례를 치렀다’며 전화가 왔다”고 했다. 가족들은 아이의 이름이 박힌 야구 유니폼을 진도체육관에 걸어뒀었다. 고 안중근(17)군은 지난 8일 사고 발생 54일 만에 가족 품으로 돌아왔다.

 “함께 울어주는 것 말곤 해 줄 수 있는 일이 없어요. 앞으로 연락하면서 살자고 했어요.”

 세상은 조금씩 일상으로 돌아가기 시작했다. 뉴스만 틀어두던 진도체육관의 대형 프로젝터 화면에도 가끔씩 야구 중계 소리가 들린다. 하지만 슬픔이 사라진 건 아니다. 잊혀지는 것은 여전히 두렵다. ‘햄버거 아저씨’ 말대로 ‘고통의 뫼비우스 띠’ 속에서 맴돌 뿐이다.

 가족들은 팽목항에서 만난 ‘새 가족들’에게 의지한다. 바람처럼 왔다가 사라지는 기자들도, 눈도장 찍기 바쁜 국회의원들도 그들에겐 도움이 되지 못했다.

 팽목항에서 작은 가게를 하는 박모(53·여)씨도 그렇게 가족이 됐다. 지옥 같았던 두 달을 함께 지내면서 가족들은 ‘새 가족들’에게 고맙고 미안하다. 박씨는 “걱정이 돼서 가족 천막에 자주 들른다. 아까도 우리 집으로 데려와 피자를 먹였다”고 말했다. 그는 “제대로 챙겨 먹지도 않고 술만 마시니 몸이 상할까 걱정”이라고 했다.

 다음날 아침 한 개인봉사자가 서둘러 진도체육관에 들어섰다. 일이 있어 며칠간 자리를 비웠다가 돌아오는 길이라고 했다. 말을 붙여보려 했지만 “화장실 청소를 해야 한다”며 손사래를 쳤다. 문득 발걸음을 멈춘 그가 말했다.

 “태안 기름 유출 사고 때 묻은 기름들은 일일이 닦아내면 됐잖아요. 그런데 가족을 잃은 사람들의 마음속 슬픔은 어떻게 닦아낼 수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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