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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총리·장관에게 인사권 주고 임기 보장해야

중앙선데이 2014.06.15 00:57 379호 20면 지면보기
12일 ‘국가정책 세미나’에 참석한 정용덕 서울대 명예교수, 사공일 세계경제연구원 이사장, 유민봉 청와대 국정기획수석, 이한구 새누리당 국회의원(왼쪽부터). [중앙포토]
‘국가개조’는 정부뿐 아니라 국민적 화두가 됐다. 그런데 개조해야 할 국가가 과연 무엇인가라는 질문 앞에 서면 이야기가 복잡해진다. 국가는 정부인가, 아니면 국민이나 사회인가, 아니면 이 모두인가. 또 뜯어고친다면 과연 누가 어떻게 해야 하는가.

서울대 행정대학원 ‘국가와 정부’ 세미나

12일 서울 남대문로 대한상공회의소에서 서울대 행정대학원 주최로 국가정책 세미나가 열렸다. 주제는 ‘국가와 정부: 신화와 논리’. 사공일 세계경제연구원 이사장의 사회로 진행된 이 세미나에선 정용덕 서울대 행정대학원 명예교수가 주제 발제를 맡고 김민전 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 교수, 김태유 서울대 기술경영경제정책대학원 교수, 박재완 성균관대 행정학과 교수, 염재호 고려대 행정대외부총장, 옥동석 조세재정연구원장, 이현재 새누리당 국회의원, 남윤호 중앙SUNDAY 편집국장이 토론했다.

국민 열망 분출될 때 개혁해야
세월호 사건이 우리 사회의 해묵은 문제를 해소할 기회를 열어줬다는 데는 학자뿐 아니라 여당 지도부와 청와대 관계자까지 동의했다. 축사를 맡은 유민봉 청와대 국정기획수석은 “우리 사회의 개혁 방식이 서구의 전문적·부분적·점진적 개혁과는 다를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한국은 압축 성장 과정에서 작은 잘못이나 비정상을 그때그때 고치지 못했고, 이게 쌓여 큰 사건이 발생하고 나면 그제야 비정상을 한꺼번에 개혁해 왔다는 것이다. 유 수석은 “개혁의 시간이 길어지면 변화의 모멘텀을 잃고 현상 유지의 관성이 나타날 수 있다”며 “변화와 혁신에 대한 국민적 열망이 응축돼 분출될 때 개혁에 대한 기회의 문이 열린다”고 강조했다.

역시 축사에 나선 이한구 새누리당 국회의원도 “공공부문 개혁이 제대로 돼 우리나라가 다시 한번 과거의 변화 트렌드를 올라탈 수 있어야 한다”며 “어떻게 우리 의식을 바꾸고 DNA를 바꿀지 희망을 줘야 한다”고 강조했다.

개조해야 할 대상을 두고 패널들 사이에선 다양한 의견이 나왔다. 정용덕 교수는 주제 발제를 통해 ‘정점 조직(Peak Organization)’에 주목했다. 정점 조직은 민간과 정부 부문을 매개하는 중간 조직이다. 언론에서 흔히 표현하는 ‘유관기관’이다. 세월호 참사와 관련해선 한국해운조합·한국선급 등이 이에 해당한다. 이런 조합·연맹·협회는 상당 부분 일제시대에 생겨나 정부로부터 규제 권한을 독점적으로 위임 받았다. 그러다 보니 이들 정점 조직과 그로부터 규제를 받는 회원 사이가 갑을 관계로 형성됐다.

정 교수는 “정점 조직의 부조리가 가장 압축적으로 드러난 게 세월호 사건”이라며 “유럽과 일본의 정점 조직이 조직 내 규범을 바탕으로 한 자정 능력을 갖춘 반면, 우리 정점 조직들은 자정 능력이 떨어지는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국가의 모델을 다시 생각해야 한다는 큰 틀의 논의도 나왔다. 정용덕 교수는 국정 운영의 문제 중 하나로 국민들의 이중적 정서를 꼽았다. 민주주의가 자리 잡은 이후 국민들은 권위주의적 정부는 용납하지 못하면서 한편으론 과거 장기 집권 시절 이뤘던 대통령들의 업적을 기대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는 “어느 정부나 이 기대에 맞추기 위해 과대 공약을 하고 강박증적으로 무리수를 두고 있다”고 분석했다.

우리 사회엔 과거와 미래 혼재
세월호 참사 이후 안전시스템에 대한 관심이 자칫 사회 전체의 규제를 강화하는 방향으로 가선 안 된다는 의견도 많았다. 박근혜 정부가 추진하던 규제 개혁 움직임이 이 사건으로 동력을 잃어서는 안 된다는 얘기다.

박재완 교수는 규제와 감독을 구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규제 기준을 세계 표준에 맞추고 철저히 지키는지 감독을 잘 해야지, 이런 일이 생겼다고 규제 수준 자체를 끌어올리면 지키지 않는 일들이 더 많아질 것”이라고 말했다. 사공일 이사장 역시 “규제 완화 자체가 문제라는 식으로 규제를 뭉뚱그리는 발상은 위험하다”며 “바람직한 규제가 있고 바람직하지 않은 규제가 있는데 예를 들어 국민의 생명과 건강에 관한 규제는 오히려 강화해야 하지만 투자 부문 규제는 완화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대통령과 주요 정무직의 리더십과 소통 문제도 도마에 올랐다. 정용덕 교수는 “장관 임기가 짧아 업무 파악할 시간도 없을 지경”이라고 꼬집었다. 사공일 이사장은 “관료들을 움직일 수 있는 인센티브 메커니즘이 중요하다”며 “장관에게 인사권이 없으면 아래 관료들이 어떻게 행동하겠느냐. 소프트웨어적 변화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박재완 교수는 “하버드대 총장은 임기가 종신제”라고 소개한 뒤 “정무직을 최적소에 배치하되 권한을 대폭 위임하고 임기를 최대한 길게 가져가야 주인 의식이 생길 것”이라고 제안했다.

청와대의 소통 노력 부재에 대한 지적도 나왔다. 남윤호 국장은 “멀찍이 떨어져 앉아 각자 마이크를 쓰는 청와대 각료 회의 장면은 국민들에게 불통 이미지를 준다”고 말했다.

염재호 교수는 “세월호 사건이 우리 사회의 미개성만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선진성도 함께 보여준다”며 ‘비동시성의 동시성’이란 개념으로 설명했다. 팬티 바람으로 뛰쳐나온 선장처럼 미개한 이들도 있었지만 안내 방송을 듣고 차분히 자리를 지키는 선진 의식을 보여준 학생과 교사도 있었다는 얘기다. 그는 “압축 성장으로 우리 사회엔 1960년대의 모습과 2020년대의 모습이 공존한다”며 “이 복잡한 문제를 우리 행정은 60~70년대의 잣대로 평가하고 해결하려 한다”고 꼬집었다.

규제 완화하되 감독 철저히 해야
‘관피아’로 불리며 문제의 핵심으로 지목된 공무원 조직을 어떻게 개혁해야 할 것인가에 대해서도 논의가 활발하게 이뤄졌다.

김태유 교수는 “모방 경제가 창조 경제 시대로 변해가는데 우리나라 공직자는 변하지 않고 똑같다”고 말했다. 과거의 관료가 직책 전문성이 없이 순환 보직으로 국가 경제발전을 주도했던 ‘일반 행정가’라면 미래 발전을 위해선 한 분야를 제대로 하는 ‘전문가형 관료’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기획재정부 장관을 지낸 박재완 교수는 다른 의견을 제시했다. 순환 보직이래야 한 부처 안에서 이뤄지는 만큼 전문성이 그리 떨어지지 않는데다, ‘나도 승진할 수 있다’는 희망으로 업무 효율이 올라갈 수 있다는 얘기다. 박 교수는 “1년 단위로 국장·부장 자리를 바꾸는 건 문제가 있지만 2~3년 주기의 순환 보직은 괜찮지 않겠느냐”고 제안했다.

정부가 공무원 사회 개혁의 수단으로 내세운 개방형 임용제에 대해선 반대의 목소리가 많았다. 김태유 교수는 “영·미·캐나다 같은 선발 산업국가에선 민간에 우수한 인재가 몰렸지만 독일·한국 같은 후발 산업국가에는 공직에 우수 인재가 많다”며 “민간에서 공직보다 더 우수한 사람을 뽑아내기 어렵다”고 주장했다. 박 교수 역시 “개방형 임용을 한 민간 전문가 역시 일단 공직에 들어오면 ‘친정’이 생기게 마련이어서 유착 소지가 생긴다”며 “민간 전문가가 공직에 들어와 몇 년 일한 뒤 민간 재취업이 막힌다면 과연 우수한 전문가가 정부에 들어오겠느냐는 문제도 고려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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