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맨 얼굴의 경제] 증권사 생존하려면 제값 받을 분석자료부터 내라

중앙선데이 2014.06.15 01:03 379호 21면 지면보기
국내 증권사는 2013회계연도(4~12월)에 1098억원의 당기 순손실을 기록했다. 증권사 10곳 중 4~5곳이 적자다. 그러다 보니 지난해 2500명(6%)의 직원이 여의도를 떠났고 지점 수도 130개(7.8%) 줄었다. 올해도 업황이 나아지지 않아 인원 및 지점 감축이 계속되고 있다. 매각도 여의치 않아 면허를 반납하는 증권사도 나타났다. 한국 증권업의 수익성 감소는 최근 2~3년의 현상이 아니라 추세화되었다. 자본시장 시가총액이나 거래 대금과 관계없이 증권사의 순이익이 감소하는 것은 고객들이 수수료가 10분의 1 수준인 온라인 트레이딩으로 몰렸기 때문이다.

⑫ 저가 경쟁의 증권업:고난의 행군

증권사가 수수료를 받고 고객에게 제공하는 서비스는 크게 세 가지다. 첫째, 매매 체결을 해준다. 주식을 사거나 팔려면 거래소의 회원을 통해야 하는데 증권사만이 회원권을 가지고 있다. 즉 라이선스 프리미엄을 내야 하는 것이다. 산업이 성숙할수록, 특히 외환위기 이후 증권사의 신설이 크게 늘어났으므로 프리미엄이 떨어지는 것은 당연하다. 둘째, 계좌 관리를 해준다. 주식의 매각대금이나 배당을 수령하고 고객이 편리하게 투자관리를 할 수 있도록 각종 서비스를 제공한다. 그런데 이는 정보기술(IT)의 영역에 해당하므로 기술 진보와 규모의 경제에 따라 비용이 낮아지는 만큼 수수료가 하락하는 것이 당연하다. 셋째, 자문 제공이다. 수수료에 대한 가장 중요한 반대급부다. 브로커리지, 즉 위탁매매란 고객인 투자가가 어느 주식 몇 주를 언제 얼마에 사거나 팔라고 하는 지시를 내리면 그대로 수행하는 것을 의미한다. 증권사는 이 주문을 받기 위해 경제와 산업을 연구하고 그 바탕 위에서 상장기업을 분석하여 고객과 상담에 응하는 수고와 비용투자를 하는 것이다.

서구 증권사 고수익률 원천은 리서치
증권업의 역사가 오래되어 첫째와 둘째 이유에 의한 프리미엄이 거의 사라진 서구에서 브로커리지 수수료가 높게 유지되는 것은 바로 셋째 요인에 기인한다.

서구의 관행을 받아들여 한국에서도 1980~90년대까지는 수수료율이 0.5% 수준으로 매우 높았다. 당시에는 한국 경제의 성장률이 높았기 때문에 주식투자 수익률도 높을 때가 많아 투자 저변이 꾸준히 확대되었다. 그 당시 한국의 증권업은 고객을 상대로 꼼꼼하게 상담하기보다는 증권사 직원이 거의 일방적으로 투자하고 수수료를 징구하는 상황이었다(즉 디스카운트 브로커리지를 하면서 풀서비스 수수료를 받았던 것이다). 주식은 한 번 회전하면 오늘날 펀드를 1년 운용하는 수준의 수입이 생겼는데 수시로 회전하였기에 증권업의 수익성이 높을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한국의 증권사는 전국 도처에 지점을 열었다.

하지만 우리처럼 증권사 지점이 많은 경우는 세계에서 드물다. 일본과 대만이 한때 우리와 유사하였으나 지금은 많은 지점을 폐쇄하였다. 증권업의 본고장인 서구에서는 원래 지점이 거의 없다. 증권투자 상담은 주로 전화로 이루어지므로 지점을 많이 설치할 여유도, 필요도 없는 것이다. 이제 우리 증권업이 고난의 행진을 계속하는 이유가 정리된다. 첫째, 증권업이란 원래 지금처럼 지점을 많이 둘 수 있는 업종이 아닌데 지나치게 확장하였으므로 구조조정이 불가피하다. 둘째, 리서치에 기반한 본질적 경쟁력이 없었기 때문에 손쉬운 가격 경쟁에 몰두하다 수익기반을 유실하였다.

그렇다면 해법은? 근원으로 돌아가서 리서치를 통해 본질적 차별성에 기초한 경쟁력을 회복하는 길뿐이다. 현재 상태로는 주가가 출렁거리며 상승하기만을 기다리는 천수답에서 벗어나기 어려울 뿐 아니라 국민경제적으로도 바람직하지 않다. 증권사가 주도하는 직접금융과 은행이 주도하는 간접금융은 시장경제를 이끄는 두 바퀴다. 주가 분석과 여신심사라는 차별화된 시각으로 상호보완적인 정보를 생성하여 수많은 기업의 옥석을 가리고 자본을 효율적으로 배분한다. 한국의 은행이 제 기능을 할 수 없을 정도로 위축된 데 이어 증권사마저 축소 지향을 지속한다면 횡보를 거듭하고 있는 한국 경제가 재성장의 모멘텀을 만들기 어렵다.

미국의 나스닥 시장이 벤처의 요람이 되고 기술혁신을 이끌어 미국의 국가경쟁력을 끌어올리는 요체가 되었다고 보고 세계 여러 나라가 이를 벤치마킹하였으며 우리도 코스닥을 만들었다. 그런데 코스닥은 무늬만 ‘닥’일 뿐이다. 나스닥(NASDAQ)은 ‘National Association of Securities Dealers Automated Quotation’의 약자로 등록된 기업당 6~8개의 증권사가 사자·팔자의 호가 주문을 자동적으로 낸다는 뜻이다.

투자가들은 그중 가장 싸게 팔겠다는 증권사나 가장 비싸게 사겠다는 증권사에 주문을 낸다. 이렇게 함으로써 해당 주식에 유동성을 공급하여 투자가들은 언제라도 팔 수 있다는 믿음이 있기에 투자에 나서는 것이다. 증권사들은 보다 경쟁력 있는 가격을 제시하여 수익을 올리고자 종목에 대해 치열하게 리서치함으로써 경쟁을 한다. 이와 같이 수익구조에 따른 인센티브가 작동함으로써 시장이 유지되고 혁신이 지속되는 것이다. 우리나라에는 이러한 시장조성(market making) 기능이 없다. 도입하려도 해도 수지가 맞지 않는다.

한국의 투자가 특히 개인투자가들은 싼 수수료를 찾아 인터넷 거래로 몰리고 있다. (그림)에서 보는 바와 같이 1998년 이후 온라인 주식거래의 비중이 높아지면서 주식 위탁매매의 평균 수수료율이 격감하였다. 증권사 직원과 상담을 해도 별 신통하지 않으니 거래비용이라도 낮추겠다는 의도일 것이다. 그렇다 보니 증권사는 애널리스트를 해고하여 경비절감에 나서고, 투자가들은 루머에 현혹되어 테마주를 곁눈질하거나 외국인 투자가를 따라 부화뇌동하는 악순환이 지속되어 오늘에 이르렀다.

좋은 분석자료 얻자면 제값 줘야
외국인 투자가 중에서 오랫동안 명성을 유지하는 기관은 어떻게 하는가? 자체로도 우수한 리서치 능력을 보유하고 있지만 제대로 수수료를 주고 증권사의 리서치 자료를 요구한다. 과거에는 한국 증권에 투자할 때 한국의 증권사를 주로 이용하였다면 점차 외국계 증권사를 이용한다는 점이 차이일 뿐이다.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부터 특히 국제금융 동향이 한국의 주가에 미치는 영향이 커졌기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우리 증권사의 리서치 수준이 만족스럽지 못하기 때문일 것이다.

인터넷 트레이딩으로 거래비용을 아끼려는 소액 개인투자자 이른바 ‘개미’의 수익률이 전문 투자가에 미치지 못하는 것은 명백하다. 리더십에 대해 공부하기 위해 서점에 가서 책을 고르다가 내용을 잘 모르겠으니까 가격이 가장 싼 책을 산다면 실력이 전문가 수준에 오를 리 만무하다. 1990년대 중반 영국에서 ‘투자자 보호기구’가 새로이 설립되었다는 기사를 접하고 런던 출장 시 방문하였다. 팸플릿의 마지막 구절이 매우 인상적이었다. “투자가로서 자신을 보호하려면 스스로 전문가가 되는 길밖에 없다.”

한국의 증권사 직원 가운데서도 다양한 리서치 자료를 섭렵하고 스터디 그룹을 만들어 열심히 공부하고 성실하게 투자 상담에 응하는 이들이 많다. 이러한 사람을 찾아 제대로 수수료를 내고 진지하게 토론하면서 자신 있는 종목에 투자하는 것이 집에서 혼자 홈트레이딩하는 것보다 훨씬 나은 방안일 게다. 한국 사람은 누구나 ‘김치’를 한국의 자랑스러운 먹거리라 생각한다. 그런데 국제 무대에서 한국의 김치는 양으로는 중국에 밀리고 질로는 일본에 밀린다. 한국 사람들이 식당에서 김치를 돈 주고 사먹지 않기 때문에 품질 면에서 뒤처지고 있는 것이다.

증권사들은 지점 비용을 줄여 리서치를 강화하고 상담 직원을 지식으로 무장시켜 수수료를 제대로 받을 만한 차별적 경쟁력을 확보하여야 하며, 투자가들도 제대로 수수료를 내고 투자 상담을 받는 것이 스스로를 위해 올바른 길이다. 그리고 이러한 선순환을 이룰 때야 한국 자본시장의 효율성과 성장촉진 기능도 비로소 살아날 것이다.



최범수 예일대 경제학 박사. 전 KDI 연구위원. 신한아이티스 대표 역임. 1998년 외환위기 당시 금융감독위원장 자문관으로 금융 구조조정을 기획했다.

구독신청

공유하기
광고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