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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소영의 문화 트렌드] 안톤 슈나크, 그가 우리를 슬프게 한다

중앙선데이 2014.06.15 01:28 379호 24면 지면보기
외국 작가인데 한국에서만 유명하고 정작 그 나라 사람들도 잘 모르는 경우가 간혹 있다. 물론 본국에서 인정받지 못하는 작가나 예술가를 한국이나 딴 나라에서 좋아하는 게 문제될 건 없다. 다큐멘터리 영화 ‘서칭 포 슈가맨’(2011)의 실화처럼 미국의 무명 노동자 가수가 자신도 모르는 사이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 저항적 음악의 아이콘으로 떠오른 감동적인 경우도 있고 말이다(지난달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난 이 영화의 감독 말릭 벤젤룰의 명복을 빈다).

교과서 속 외국 문학

‘우리를 슬프게 하는 것들’이 수록된 안톤 슈나크 수필집 『젊은 날의 전설』 표지.
그러나 참으로 얄궂은 경우도 간혹 있다. ‘우리를 슬프게 하는 것들’이라는 수필로 한국에서 유명한 독일 작가 안톤 슈나크(1892~1973)가 바로 그런 경우다.

“울고 있는 아이의 모습은 우리를 슬프게 한다”로 시작하는 이 수필은 내 부모님 세대에 고등학교 교과서에 실렸고, 1980년대 초반이나 중반까지 계속 교과서에 실렸던 것으로 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우리를 슬프게 하는 것들”이라는 말을 관용구처럼 쓰고, 무엇인가 개탄해야 할 일이 있을 때 이 수필의 형식으로 칼럼을 쓰기도 한다. 그 여파로 이 수필을 교과서에서 접한 적이 없는 나도 그 내용을 잘 알고 있다.

아마 내 세대가 단편소설 ‘이해의 선물(위그든씨의 사탕 가게)’에 느끼는 것 같은 은은한 향수를 선배 세대는 ‘우리를 슬프게 하는 것들’에서 느끼는 것 같다. 하지만 나는 집에 있는 오래된 책에서 이 수필의 전문을 읽었을 때 감상주의가 좀 과하게 느껴졌다. 그리고 거기 실린 슈나크의 다른 수필들은 더 마음에 안 들었다. 통속적인 감상주의가 더욱 강하거나, 아니면 반대로 묘하게 폭력적이면서 폭력을 예찬하는 뉘앙스를 지니고 있어서 신경을 긁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다 최근 안톤 슈나크를 오히려 독일 사람들은 모른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궁금증이 발동해서 검색을 해봤다. 검색엔진 구글에서 안톤 슈나크의 이름과 성 “Anton Schnack”를 큰따옴표를 묶어서 검색해 보면 (큰따옴표로 묶는 것은 정확한 구문 검색을 위한 팁이다.) 영어 사이트, 독일어 사이트 등등을 합쳐서 불과 8340개의 결과가 나온다. 참고로 독일 작가 헤르만 헤세를 “Hermann Hesse”로 검색해 보면 133만 개의 결과가 나온다.

슈나크의 인지도가 낮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재미있는 것은 한국어로 “안톤 슈나크”를 검색하면 20만 개에 육박하는 결과가 나온다. 그의 고향인 유럽이나 미국에서보다 한국에서 훨씬 유명하다는 것이다.

어쩌다 이런 현상이 나타났을까. 더욱 궁금해서 안톤 슈나크에 대한 영어 위키피디아를 보다가 충격을 받았다. 위키피디아가 『하인리히와 토마스 만의 편지, 1900~1949』라는 책을 인용해서 밝힌 바에 따르면 슈나크는 아돌프 히틀러에게 충성을 서약한 88인의 작가 중 하나였다. 즉 나치였다는 것이다. 나치 작가 글을 우리나라 교과서에 실었단 말인가? 독일 사람들이 그를 모르는 것은 제2차 세계대전 이후에 나치 전력으로 기피 대상이 됐기 때문은 아닐까?

물론 위키피디아도 종종 틀릴 때가 있고, 인용한 출처가 하나뿐이니 단정할 수는 없다. 그래서 인터넷의 다른 자료들을 검색해 봤지만 위키피디아와 같은 내용의 반복이 많았고, 그 외에 참고할 만한 영어 자료가 거의 없었다. 적어도 한국 밖에서 인지도가 낮은 것은 확실했다.

이번엔 집에 있는 오래된 안톤 슈나크 수필집의 설명을 뒤져보았다. “그는 두 차례의 세계대전에 참전했었고, 1945년 종전과 함께 미국의 포로에서 풀려났다”라고만 돼 있다. 나치 얘기는 쏙 빠졌지만 강제로 징집됐다는 말이 없는 것으로 미루어 나치의 편에 서서 자발적으로 참전했을 확률이 커 보인다.

“우는 아이가 우리를 슬프게 한다”면서 나치의 집단수용소에서 가스실로 끌려가는 어린아이들의 울부짖음은 듣지 못했나. 과거 교과서에 실려서 우리가 향수를 갖고 있는 글들에 대해서 이제 다시 점검해 볼 때가 되지 않았나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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