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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갑수 칼럼] 아름답고 착한 요요마, 악마적 터치 리히터

중앙선데이 2014.06.15 01:44 379호 27면 지면보기
프랑스 태생의 중국계 첼리스트 요요마. 그래미상을 14회 수상한 그는 음향에 대한 탐구를 끊임없이 시도하고 있다. [위키피디아]
결국 주문서를 넣었다. 내일이면 90장짜리 CD 전집이 도착할 것이다. 몇 장이나 듣게 될까. 호화로운 벨벳 장식의 케이스가 개봉되고 며칠 만에 꽂이로 사라져 버릴지도 모른다. 그런데 왜 꼭 그걸 사야만 했을까. 2009년에 출시된 요요마 데뷔 30주년 기념 박스세트 음반을 말하는 건데 구입을 꽤 망설여 왔다. 낱장으로 이미 갖고 있는 것이 많고, 가격도 지나치게 높게 책정된 탓이지만 이유가 그것만은 아니다. 평생토록 음반이라면 설사 끼니를 거르더라도 물불 안 가리고 뭉텅뭉텅 사들여 왔는데 이 망설임은 무언지 스스로에게 흥미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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첼리스트 요요마. 그에 대한 소개나 설명이 필요할까. 내한공연마다 번번이 공연장을 찾았는데 특히 호암아트홀에서 생상스 첼로 협주곡을 연주할 때 숨 넘어갈 듯했던 체험이 또렷하게 기억난다. 잘생기고 서글서글한 그는 품성까지 훌륭해서 그를 아는 각계 인사들의 칭송이 늘 넘쳐난다. 연주 영역도 광범위해서 재즈 피아니스트 클로드 볼링과 멜팅 재즈 음반을 내기도 했고 바비 매퍼린과 함께한 음반 ‘허쉬’는 크로스오버 연주의 교본처럼 여겨진다. 그뿐인가. 동서양 악기의 하모니를 추구한 그의 실크로드 프로젝트는 대단한 기대와 찬사를 낳았다. 비영리 기획이라는 점에서 존경심까지 불러일으키는 행적이다.

긴 세월 동안 최정상 연주자로 각광받아 온 비결은 물론 뛰어난 연주력 때문이다. 그는 기복 없이 언제나 잘한다. 그래미상을 무려 14회나 수상한 이력이 말하듯이 그의 첼로 사운드는 당대의 교본으로 보아도 무방하다. 바로크 곡이든 코른골트의 첼로 협주곡 같은 20세기 작품이든, 그가 활을 켜면 아름답고 따뜻한 기운이 전편을 감싸면서 행복한 안도감에 빠져들게 된다. 마치 안드라스 쉬프의 피아노 연주처럼 혹은 막심 벵게로프의 바이올린 연주처럼 혹은 빈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의 사운드처럼.

그런데 문제가 있다. 그가 아무리 훌륭해도 듣는 사람 성격이 꼬여 있으면 속수무책이라는 것. 비틀스 음반이 수십 장이나 벽에 꽂혀 있는데 일부러 꺼내 듣는 경우가 드물다. 비틀스를 들을 동기가 있다면 그 대신 롤링스톤즈를 찾아 듣는다. 1970년대 엘턴 존의 음악성을 물론 높이 평가하지만 실제로는 동시대의 데이비드 보위나 티 렉스를 더 선호한다. 성격이 꼬여서 그렇다고만 말하면 너무 무성의한 설명이 될 것 같다. 비틀스보다 롤링스톤즈를 더 좋아하는 까닭은, 록음악 애호가들은 너무나 잘 알겠지만 그것이 나쁜 음악이기 때문이다. 생고생하면서 나쁜 남자를 사랑하는 여자의 심정을 너무나 알 것 같다. 바로 그런 것이다. 요요마의 첼로는 너무나 아름답고 착하다. 사람도 착하고 음악도 착해서 아무리 들어도 아프지가 않다. 음악은 때로 사람을 아프게 해야 하는 것 아닌가. 때로 불편하고 오싹하거나 황당하기도 해야 하는 것 아닌가. 착한 음악을 애써 비켜가고 싶어 하는 성격 꼬인 감상자의 욕망을 요요마는 알까.

그래서 또 스비야토슬라브 리히터(작은 사진)다. 요요마 음반을 주문하면서 판매목록에 리히터의 33장짜리 솔로 피아노 레코딩 세트가 있길래 곁다리로 추가했다. 리히터 음반은 이미 많고도 많아서 80%는 겹칠 것이다. 그래도 악마적 기운을 통한 상쇄가 필요했다. 쾌적하고 따뜻한 실내의 온기 속에 굳이 북풍한설 한소끔쯤 불어넣어야 직성이 풀리는 기분으로다가. 험상궂고 심술궂은 표정의 리히터와 마냥 선량해 보이는 요요마의 얼굴이 기묘하게 오버랩된다.

안 사면 그만일 요요마 전집을 망설이다가 결국 구입하는 심리는 일종의 주류욕망 같은 것 아닐까. 누구나 갖추는 ‘기본’을 왠지 채워 놓아야 할 것 같은 압박감? 물론 리히터도 주류에 속하겠지만 타협 없고 양보 없는 나쁜 주류다. 온 세상이 옹호하고 기대는 주류 또는 오버그라운드 속에서 안도감을 느끼지만 그것만으로는 충족되지 않는 여진, 이른바 존재의 ‘남는 부분’이 유혹을 한다. 그 남는 부분은 사악하거나 거칠거나 기괴한 속성을 지니는데 그런 것에 끌리는 심정도 못 말리는 것이다.

좋은 것의 집합인 주류는 사상(捨象)의 결과물이다. 이것저것 잡티를 빼버려서 좋은 것이 된다. 요요마 연주에서 잡티를 찾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울 것이다. 반면 어떤 잡티적 요소를 미학적으로 승화시켜 특이한 절정에 이르는 경우가 있다. 악마적 터치로 느껴지는 리히터, 좀 미쳤다고 생각되는 글렌 굴드의 핑거링이 그렇다. 첼리스트로 그렇게 떠오르는 인물이 있는데 좀 생뚱맞게 여겨질지도 모르겠다. 그는 첼로의 옥황상제 같은 존재니까. 바로 카잘스를 말한다. 나는 언제나 그의 연주가 좀 이상하다고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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