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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승호의 ‘생각의 역습’] 행복의 한계효용

중앙선데이 2014.06.15 01:58 379호 29면 지면보기
당신의 첫 번째 데이트 상대를 기억하는가. 첫 번째 해외 여행지는 어디였는가. 어릴 적 극장에서 처음 본 영화는 무엇이었나. 이번에는 당신의 세 번째 데이트 상대를 떠올려 보자. 당신의 세 번째 해외 여행지는 어디였는가. 극장에서 본 세 번째 영화는 무엇이었나. 모두 기억날 수도 있고, 드문드문 기억나거나 전혀 기억나지 않을 수도 있다.

사람들은 첫 번째 경험을 이후의 경험들에 비해 쉽게 떠올린다. 첫 경험이 주는 낯선 느낌은 우리의 기억에 쉽게 각인된다. 이 때문에 누구에게나 첫 경험에 대한 기억은 매우 뚜렷하다. 또한 동일한 경험이 계속 반복될 때는 첫 번째 경험에서 느끼는 주관적 만족감이 가장 크다.

예를 들어 몹시 배가 고픈 당신 앞에 다섯 개의 도넛이 있다고 상상해 보자. 배가 고파 허겁지겁 먹은 첫 번째 도넛은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음식이 된다. 두 번째 도넛은 여전히 맛있기는 하지만 이미 허기를 달랜 상황이라 첫 번째 도넛이 주는 효용가치를 느끼기 어렵다.

세 번째 도넛부터는 제법 배가 불러서 그런지 다 먹기도 어렵다. 네 번째 도넛은 남기기가 아까워 억지로 먹을 순 있지만, 더 이상 먹고 싶지 않다. 다섯 번째 도넛까지 먹게 된다면 배탈이 날 것 같아 차라리 버리고 만다.

이처럼 객관적으로 동일하더라도 첫 번째와 다섯 번째 도넛에 대해 우리가 느끼는 주관적 만족감은 확연히 다르다. 즉 동일한 재화(goods)라도 반복적으로 소비할수록 우리의 뇌에서 느끼는 효용(utility)은 계속 감소하는데 이를 한계효용 체감의 법칙이라고 한다.

원시시대 조상들을 떠올려 보자. 배고픈 원시인에게 첫 번째 음식은 ‘생존’을 의미하지만, 배 부른 뒤 음식은 ‘잉여’일 뿐이다. 잉여자원은 나중을 위해 저장할 수도 있고, 다른 사람과 거래하거나 그냥 버릴 수도 있다. 이처럼 객관적으로 동일한 효용을 지녔더라도 생존을 위한 재화냐 아니면 잉여의 재화냐에 따라 인간이 느끼는 효용은 상대적으로 차이가 난다.

반드시 생존과 직결되는 재화가 아니더라도 대체로 첫 번째 재화가 주는 효용이 가장 크게 느껴진다. 예를 들어 샤워 후 냉장고에서 방금 꺼낸 캔맥주를 시원하게 마신 후, 연이어 마시는 두 번째 캔맥주는 아무래도 첫 번째가 주는 강렬한 만족감을 따라가기 어렵다.

먹고 마시는 효용뿐 아니라 소유나 경험에 대한 효용도 한계효용 체감의 법칙이 작동한다. 자동차를 한 대 소유했을 때 느끼는 효용가치는 똑같은 자동차 열 대를 소유했을 때 평균 효용보다 높다. 마찬가지로 당신이 맨 처음 제주여행을 갔을 때 느끼는 효용가치는 동일한 코스로 연이어 열 번의 제주여행을 했을 때 느끼는 효용가치의 평균보다 높다.

다행스러운 것은 무언가를 먹고, 마시고, 소유하고, 경험하는 플러스적인 효용과 마찬가지로 실패, 좌절, 슬픔, 고통과 같은 마이너스적인 효용도 동일하게 반복되면 감소된다는 것이다. 즉 안 좋은 사건들이 연이어 일어났을 때, 맨 처음 사건으로 인해 느끼는 고통이 가장 크고 이후 동일한 수준의 사건에 대해 느끼는 고통은 처음보다 감소한다. 소위 감정의 맷집이 생기는 것이다.

누구나 행복을 추구한다. 행복을 ‘주관적으로 느끼는 만족감’이라 정의한다면, 늘 반복되는 일상을 마치 ‘처음이자 마지막인 듯’ 살아야 한계효용은 체감되지 않는다. 삶은 매 순간 한 번밖에 오지 않는다. 이 단순한 진실 속에 ‘행복의 경제학’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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