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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항 성공조건은 장기 계획 … 검·경 “유병언 국내 있을 것”

온라인 중앙일보 2014.06.15 02:35



[세월호 침몰 두 달] 유병언, 숨었나 튀었나

항구에 도착한 남자는 낡은 건물 방 안으로 들어간다. 전등조차 없는 어두컴컴한 방 안에는 수십 명의 남녀가 공포에 질린 표정으로 앉아 있다.



 한밤중 작은 고깃배에 몸을 실은 사람들이 파도가 몰아치는 바다로 향한다. 어딘지도 모를 캄캄한 망망대해. 사람들은 사냥감 몰리듯 다른 배로 갈아탄다. 거센 파도와 공포를 이기지 못한 여자가 의식을 잃고, 사람들은 무표정하게 그를 바다에 내던진다. 새벽녘이 돼서야 배는 작은 포구에 닿는다. 배에서 내린 남자도 어딘가로 급히 몸을 숨긴다.



유병언, 검문 느슨해질 시점 노릴 것

영화 ‘황해’(2010)에 등장하는 구남(하정우)의 밀항(密航) 장면이다.



 분단 상황인 대한민국에서 육로를 통해 몰래 다른 나라로 갈 방법은 없다. 그래서 등장한 게 밀항이다. 밀항의 역사는 꽤 길다. 우리나라에서 죄를 지었거나 쫓기는 사람들, 합법적인 방법으로 외국에 나갈 수 없는 사람들이 한국전쟁 직후인 1950년대부터 밀항을 시도했다.



 세월호 실소유주 유병언(73) 청해진해운 회장이 종적을 감춘 지 15일로 25일째를 맞았다. 검찰과 경찰이 대규모 검거팀을 꾸렸고, 군까지 나섰지만 좀처럼 실마리를 찾지 못하고 있다. 유 회장이 이미 밀항을 통해 중국이나 일본으로 도피했을 거라는 추정이 나오는 이유다. 수백 개의 섬이 있는 남해나 서해의 포구를 통해 밀항선을 탔을 거란 구체적인 시나리오까지 등장했다.



 하지만 검찰과 경찰은 유 회장이 아직까지 국내에 숨어 있을 거라는 믿음을 버리지 않고 있다. 국내외 조직을 동원하지 않고선 밀항이 쉽지 않은 데다 전국적인 검문검색이 이뤄지고 있다는 이유에서다.



 밀입국·밀출국 단속을 하고 있는 해양경찰청 관계자들은 “영화 ‘황해’에 나오는 밀항 장면은 10년 전 이야기”라고 말한다.



 중국의 선박 입출항 관리가 허술했던 200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공해상에서 어선을 통한 대규모 밀입국이 종종 있었다고 한다. 한국에 들어오려는 조선족이나 중국인들이 중국과 한국의 밀입국 브로커에게 돈을 주고 공해상에서 접선하는 방식을 택했다는 것이다. 이 배를 이용해 국내에서 중국으로 밀항하는 경우도 있었다.



 하지만 최근에는 무비자로 들어올 수 있는 제주도 관광으로 위장해 입국한 뒤 여객선이나 어선에 몰래 타거나 신분증을 위조해 육지로 넘어오는 수법이 훨씬 많다. 해경 관계자는 “영화나 드라마 때문에 공해상에서 작은 고깃배나 보트로 갈아타고 작은 포구로 밀입국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지만 실제론 선박의 입출항 관리가 철저한 편”이라며 “밀항의 경우에도 작은 배나 고무보트로 공해상에 나가는 건 자살행위나 다름없다”고 말했다. 그는 “우리나라 해안에 군 초소가 밀집해 있는 것도 이 같은 방식의 밀입국·밀출국이 쉽지 않은 이유”라고 덧붙였다.



작은 배로 공해상 나가 중국배 갈아타

실제 지난 1월 국제회의 참석을 위해 입국했다가 고무보트로 부산을 떠났던 일본 내각부 공무원 S씨(30)는 일본 기타큐슈(北九州)시 앞바다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그가 왜 고무보트를 탔는지는 여전히 수수께끼로 남아 있지만 작은 배로 바다에 나가는 게 쉽지 않다는 점은 증명된 셈이다.



 밀항이라고 하면 한밤중 부산 같은 대형 항구에서 몰래 화물선에 올라타는 모습을 상상하기 쉽다. 실제로 예전에는 이 같은 밀항이 많았다. 역시 입출항 관리가 허술하던 시절이다.



 아직까지도 밀항이 가장 많이 적발되는 지역은 부산이다. 행선지는 일본이 대부분이다. 이 같은 사실은 2007년 이후 해경의 밀항 단속 통계(표 참조)에서도 확인된다. 여전히 부산을 통해 일본으로 밀항을 시도하는 경우가 많지만 최근에는 밀항을 시도하는 지역도 다양해지는 추세다. 통영과 여수, 동해는 물론 인천과 평택, 울산에서도 밀항 시도가 적발됐다. 행선지도 중국을 택하는 경우가 늘었다.



 대표적인 밀항 성공 사례는 4조원대 사기행각을 벌인 뒤 2008년 중국으로 도망간 조희팔(57)씨다. 조씨는 밀항 수개월 전부터 측근들을 통해 밀항을 준비했다. 해경은 이 같은 첩보를 입수했지만 조씨를 마약밀매범으로 착각해 검거작전을 하다 결국 놓쳤다. 조씨는 충남 태안 마검포항에서 작은 배로 공해상에 나간 뒤 기다리고 있던 중국 배로 갈아타고 밀항에 성공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최근 밀항 성공 사례는 또 있다. 저축은행 비리사건에 연루됐던 한주저축은행 전 이사 이모(44)씨는 수사가 한창이던 2012년 경남 마산항에서 3000t급 화물선에 승선해 중국 다롄(大連)항으로 밀항했다. 중국에서 도피생활을 하던 이씨는 1년9개월 만인 지난 3월 중국 공안에 붙잡혀 강제 송환된 뒤 재판에 넘겨졌다.



 밀항에 성공한 조씨와 이씨 사이엔 공통점이 있다. 오랫동안 밀항을 준비했고 중국과 우리나라 양쪽의 밀항 주선 조직의 도움을 받았다는 점이다. 조씨는 측근을 통해 중국 쪽 브로커의 도움을 받았다. 이씨도 국내 폭력조직 출신 밀항 브로커와 조선족 브로커에게 횡령한 돈 수천만원을 주고 밀항을 부탁했다.



유병언, 신분증 위조해 출국 가능성도

왜 검찰과 경찰은 유병언 회장이 밀항에 성공하지 못했을 것으로 보는 걸까.



 해경청에서 외사업무를 오래했던 한 간부의 말이다.



 “밀항을 하려면 우리나라와 외국 양쪽에 알선책이 있어야 해요. 그런데 이들은 점조직으로 움직이기 때문에 밀항하고 싶다고 해서 갑자기 만날 수 없습니다. 브로커를 수소문하고 다니면 어떻게든 소문이 나기 마련이죠.”



 이 간부는 “나름 오래 준비했던 조희팔씨의 경우에도 해경에 첩보가 들어왔다. 상황판단에 실수가 있어 결국 놓쳤지만 그가 밀항을 시도하려 한 사실은 알고 있었다”고 주장했다.



 2012년 붙잡힌 김찬경(58·수감 중) 전 미래저축은행 회장은 밀항 시도가 해경 정보망에 걸려든 대표적 사례다. 김 전 회장은 회사 돈 200억원을 불법 인출해 경기도 화성시 궁평항으로 도망쳤다. 작은 어선을 타고 공해상에 나간 뒤 중국 화물선으로 갈아타 중국 산둥(山東)성의 항구로 가려던 계획이었지만 궁평항의 어선 선원실에 숨어 있다가 체포됐다. 밀항을 주선한 중국 조직폭력배들에게 3억원을 송금하기도 했다.



 해경 관계자는 “전국적인 검문검색이 이뤄지고 있는 상황에서 갑자기 도망친 유병언 회장이 밀항에 성공할 수 있으리라 보지 않는다”고 말했다.



 “세월호 침몰 사건이 갑자기 발생했고 사고 초기에 이미 유 회장이 수사선상에 올랐잖아요. 짧은 시간 내에 밀항을 준비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했을 겁니다. 더욱이 지명수배 이후엔 검경이 주요 항·포구에서 작은 낚싯배까지 검문검색을 하고 있고 주요 길목을 수색해 왔잖아요. 도피생활이 수 개월, 1년이 지나 검문검색이 느슨해질 때를 노리면 몰라도 지금 당장 밀항했을 것으로 보이진 않습니다.”



 검찰 관계자도 비슷한 추정을 하고 있다. 유 회장 사건을 수사 중인 인천지검 관계자는 “소나기가 쏟아질 땐 일단 피하는 게 상책이다. 아마 아직까지 국내에 머무르고 있을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전국적 검문검색이 이뤄지기 전인 수사 초기 해외로 도피했다면 차라리 신분증을 위조해 항공편으로 빠져나갔을 가능성이 크지 밀항 가능성은 높지 않다”고 덧붙였다.



이동현 기자 offramp@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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