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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채소·회 2 : 1 : 1의 묘미 자투리 회덮밥과 비교 불허

온라인 중앙일보 2014.06.15 02:14
1 연휴나 명절을 앞둔 때에는 이 인파의 두 배쯤 되는 사람들이 회를 사기 위해 몰려든다



정환정의 남녘 먹거리 <18> 통영 활어회덮밥



한 소설가가 부산 사람들에 대해 묘사한 부분은 오랫동안 기억에 남아 있다. 부산을 제외한 다른 곳, 특히 서울에서 회를 먹을 때면 젓가락으로 회 한 점을 집어들고 “이기는 회도 아닌 기라(이거는 회도 아니다)!”라는 말을 장탄식처럼 내뱉는다는 것이었다. 실제 부산 사람들이 갖고 있는 수산물, 그중에서도 활어회에 대한 자부심은 적지 않다는 사실을 나 역시 몇 번의 경험을 통해 알고 있지만, 그런 사람들도 통영에서는 침묵을 지켜야 한다. 지금 부산에서 유통되고 있는 대부분의 활어가 나고 자란 곳이 통영이니까.



통영 사람들은 자연산이 아니면 먹지 않는다고들 했다. 물론 꽤 오래전의 이야기다. 이제는 그동안의 남획과 수산물에 대한 수요 증가, 기후변화 등으로 자연산만으로는 사람들의 요구를 모두 충족시킬 수 없게 되었다. 양식이 발달하게 된 것은 당연한 수순. 그래서 통영의 해안을 달리다 보면 이런저런 양식장을 참 많이도 볼 수 있다. 가장 흔하게 볼 수 있는 광어와 우럭은 물론이고 한때 어업 전진기지 역할을 했던 욕지도에서는 고등어 양식에 이어 참치까지 양식을 시도 중이다(제주도에서 판매되고 있는 활고등어의 대부분은 바로 이곳 통영 욕지도에서 보낸 것들이다).



이렇게 길러낸 활어들은 전국 각지로 팔려나가는데, 연휴 기간에는 통영에서 소비되는 양이 엄청나게 늘어난다. 워낙 사람이 많이 몰리고 그 사람들 중 많은 수가 통영의 싱싱한 회를 먹겠다는 각오를 다진 터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중앙시장의 활어골목은 연휴 기간 통영 사람들이 기피하는 장소 중 첫손에 꼽히기도 한다. 아니, 통영 사람들은 연휴가 되면 아예 집 밖으로 나가지 않으려 한다. 그건 우리 가족 역시 마찬가지다. 지난 5월 초 연휴 기간과 이번 6월 초 연휴 기간에는 더더욱 그러했다. 그런 시기에는 시내에서 차를 타고 10m를 움직이는 데 소요되는 시간이 대략 30분. 어지간한 거리는 걸어다니는 게 나을 정도다 보니 연휴를 앞두고는 잔뜩 장을 보거나 볼 일을 모두 처리해두는 게 통영 사람들의 일상이 되었다. 그러니 하물며 그 유명한 중앙시장 활어골목이야.



통영에 처음 내려온 첫해, 아무것도 모른 채 여름휴가 기간 중에서도 극성수기인 7월 말에 회를 사기 위해 시장엘 갔다가 마치 신도림역에서 출근 전철을 탄 것 같은 인파 한가운데에 파묻힌 적도 있었다. 그런데 불가피하게 그런 날들 중 외출을 해야 하는 상황이 생기면 난감해지기 마련이다. 특히나 그게 식욕과 관련된다면 심지어 괴로워진다. 지난 일요일 점심 무렵, 문득 회덮밥이 먹고 싶어졌을 때의 내가 그랬다.



2 해안도로를 따라 달리다 보면 쉽게 만날 수 있는 양식장 3 관광객이 모두 떠난 후의 시장에서는 평소보다 싼 가격에 횟감을 구할 수 있다 4 모두 싱싱한 재료로 만들었기에 저 밥공기로 몇 그릇이나 먹었는지 기억도 나질 않는다


두툼한 회가 입안 가득 … 견딜 수 없는 유혹

연휴가 끝나는 날의 시장은 다른 때보다 더 북적인다. 그래서 부득이 시장에 가야 할 때면 오후 서너 시쯤에 도착할 수 있도록 일정을 잡는다. 대부분의 관광객이 어떻게 해서든 통영을 빠져나갔을 즈음이니까.



아내와 아기를 태우고 시장에 도착했을 무렵, 다행스럽게도 내 예상과 그간의 경험대로 시장에는 사람이 그리 많질 않았다. 단골집으로 정해놓고 항상 회를 뜨는 곳을 오랜만에 찾아가니 이제 막 도마를 닦아내고 있던 아주머니가 반갑게 인사를 건넸다. 다 쉰 것 같은 목소리였다. 지난 며칠 동안 얼마나 많은 사람이 시장을 오갔는지 짐작할 수 있게 하는 증거이기도 했다.



“사람들 많이 왔었어요?”



활어가 담긴 대야 앞에 쪼그려 앉으며 물었더니 “지난달 맹키는 아니었어도 좀 있긴 했어요”라며 아주머니가 씩 웃는다. 아마 적잖이 손님이 들었던 모양이다. 그리고 그 손님들이 가장 많이 구입했던 건 역시나 광어와 우럭이었단다.



안타까운 일이었다. 통영 사람들이 사랑해 마지 않는 감성돔과 참돔, 그리고 시기가 좀 이르긴 해도 날이 더워질수록 맛도 좋아지는 농어와 병어 같은 것들은 평소 바다 물고기와 거리를 두고 살던 사람들에게는 그저 특이한 어종으로밖에 보이질 않았을 것이다. 아주머니 역시 그런 점을 아쉬워했다. “맨 묵는 기만 묵지. 서울 사람들, 횟감 앞에서는 촌놈인기라.” 혼잣말인 듯 웃으며 하는 소리에 나도 따라 웃었다. 물론 나 역시 서울에 살 때는 이렇게 다양한, 그리고 훌륭한 횟감이 있는 줄 몰랐던 촌놈이었다. 그저 운 좋게 통영에 와 개안을 했을 뿐.



“삼촌 오늘은 뭐 살라꼬요? 친구 왔나?”

“아뇨. 그냥 집에서 회덮밥이나 해먹으려고요.”

“그럼 큰 기는 필요 읍겠네?”

“예. 그냥 적당한 걸로 썰어주세요.”



그렇게 적당한 크기의 광어 한 마리를 썰어서 우리는 다시 차에 올랐다.



회덮밥에는 먹고 남은 회, 혹은 냉동시켜 놓은 참치회를 사용하는 것이라 생각하는 사람들에게는 이해하기 힘든 일이겠지만, 우리 부부는 통영에 이사 온 이후 항상 활어로 회덮밥을 만들어왔다. 외려 냉동 참치가 더 비싸니 당연한 선택이기도 하거니와, 밥과 채소와 회를 2:1:1 비율로 넣고 초고추장을 뿌려 쓱쓱 비벼 먹는 그 맛, 두툼한 회가 온통 입안을 가득 채우는 그 풍만한 쾌감은, 한 번 알고 나면 도저히 외면하기 힘들 정도로 유혹적이기 때문이다.



풍성하고 다양한 회는 통영 사는 특권

집에 돌아온 아내는 내게 아기를 맡겨두고 얼른 채소들을 꺼내 손질하기 시작했다. 마침 옆집 아저씨께서 직접 재배해 가져다주신, 배춧잎처럼 커다란 상추도 있었고 얼마 전 사놓은 싱싱한 양배추와 양파·당근도 있었다. 밥도 넉넉했고 회는 푸짐했다. 군침 제조기 참기름까지 양푼에 들어가 초고추장 옷을 입기 시작했다.



그리고 마침내 입안에 들어온 그 밥과 채소와 회를 양껏 씹으며 나는 문득 회를 아껴 먹어야 하는 곳에 살고 있는 사람들이 불쌍해졌다. 그리고 모처럼 통영에 왔으면서도 회를 이토록 풍성하게 먹는 법을 모르고 돌아가는 사람들 역시 안쓰러워졌다. 연휴가 아니면 여행을 떠날 수 없는, 그래서 북새통인 시장에서 전쟁을 하듯 회를 사야 하는 사람들에 대한 연민까지 들었다. 그렇게 힘든 일정을 보내고 무지막지한 정체를 뚫고 귀가한 후에는 또다시 사람에 치이는 일상으로 돌아가야 하는 일은, 누가 봐도 힘들기 이를 데 없으니까 말이다. 과연 연휴 동안 통영을 찾은 그 많은 사람은 제대로 된 휴식을 취했을지, 나는 문득 걱정이 됐다.



어느 곳으로 여행을 가든 그것이 고행이 되지 않는 시기를 찾는다면 모두가 즐거워지겠지만, 결코 쉽지 않은 일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다. 통영이 아닌 곳에서 밥과 채소와 회가 2:1:1 비율로 들어간 회덮밥을 먹는 것처럼 말이다.



정환정『서울 부부의 남해 밥상』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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