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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 사고 과실·꾀병, 귀신은 속여도 마디모는 못 속인다

온라인 중앙일보 2014.06.15 01:12



교통사고 '나이롱 환자' 막는 첨단 포청천













운전자들 사이에서 ‘마디모’라는 다소 생소한 용어가 화제다. 억울한 교통 사고 가해자가 되지 않기 위해서는 반드시 알아둬야 하는 ‘상식’이라는 얘기도 번져 간다. 이를 활용하는 사고 당사자들도 폭증하고 있다. 마디모가 도대체 무엇인지, 그 효용은 어디에까지 미치는지 등을 살펴봤다. 아울러 보험금이나 합의금을 노리는 ‘도로의 사냥꾼’들을 피하는 방법도 소개한다.







강원도 원주시 국립과학수사연구원에서 최지훈 연구원(공학박사)이 마디모(MaDyMo) 프로그램으로 차량 탑승자가 받을 충격량을 측정하기 위해 사고 과정을 컴퓨터로 재연하고 있다. 최정동 기자
대기업 간부 박모(47)씨는 지난 3월 서울 논현동 이면도로에서 교통사고를 냈다. 골목 교차로에서 오른편 방향에서 진입하던 택시와 살짝 부딪쳤다. 박씨의 차는 앞 범퍼 오른쪽 모서리에 도색이 살짝 벗겨지는 흠집이 생겼고, 택시는 왼쪽 펜더가 조금 찌그러졌다. 골목 교차로 중심을 기준으로 보면 택시가 약간 더 진입한 상태였기 때문에 박씨는 자신의 과실이 크다고 보고 “차 수리를 맡겨라. 견적을 보고 보험으로 처리할지 내가 그냥 지불할지 결정하겠다”며 명함을 건넸다. 택시 기사는 스마트폰으로 현장 사진을 찍은 뒤에 “그렇게 하겠다”며 순순히 떠났다.



다음날 아침 박씨는 택시 기사의 전화를 받았다. “목·허리·어깨 등 온몸이 아파 병원에 와서 진찰 중이다. 입원해야 할 것 같다. 보험회사에 연락해 처리해 달라. 택시에 함께 타고 있던 승객도 목을 다쳐 지금 함께 병원에 와 있다.” 박씨는 기가 막혔다. 사고 당시 멀쩡했던 택시 기사가 병원에 드러눕겠다고 하는 것만도 어처구니없는 일인데, ‘함께 타고 있던 승객’까지 운운했기 때문이었다. 그의 기억에 택시엔 분명히 승객이 없었다.



그 정도의 충격에 사람이 다쳤다는 사실을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었던 박씨는 고교 동창인 경찰관에게 전화를 걸어 상의했다. 경찰관은 “경찰에 정식으로 사고 접수를 하겠으며 ‘마디모’ 분석을 의뢰하겠다고 해라. 아마 함부로 입원은 못 할 거다”라고 조언했다. 박씨는 택시 기사에게 전화를 걸어 들은 대로 얘기했다. 택시 기사는 대뜸 “이런 사고에 보험회사에만 연락하면 되지 경찰에 신고는 왜 하느냐”며 화를 냈다. 그러더니 “치료비와 차량 수리비, 오늘 일당까지 포함해 60만원만 계좌로 부쳐 주면 보험 처리 없이 일을 끝내주겠다”고 제의했다. 이후 수 차례의 통화가 오갔고 결국 박씨가 택시 기사에게 30만원을 주는 선에서 마무리됐다.



차종별·유형별 교통사고 자료 축적

마디모-.



홍보 부족으로 아직 널리 알려지지는 않았지만 점점 아는 이가 늘어가고 있다. 박씨처럼 그 위력을 실감한 경우가 주변에 생겨나면서 입소문을 탄 결과다. ‘억울한 교통사고 가해자가 되는 일을 막아주는 훌륭한 수단’이라는 인식이 퍼지며 마디모는 운전자의 필수 상식이 되어가고 있다.



마디모(MaDyMo)는 ‘Mathematical Dynamic Models’라는 컴퓨터 프로그램의 약자다. 직역하자면 ‘수리적 역학 모델’이 된다. 이 세 영어 단어의 앞쪽 두 철자를 따 ‘MaDyMo’라는 이름이 붙었다. 이 프로그램은 네덜란드의 응용과학연구소(TNO)에서 만들었다. 어느 정도의 충격이 어떻게 인체에 가해졌을 때 사람들이 어디에, 어느 정도의 부상을 입는지 추정하는 게 이 프로그램의 용도다. TNO는 시신 수백 구를 활용해 제 각기 다른 사람들의 신체 강도를 그대로 적용한 실험용 더미들을 만들어 수천 번의 교통사고 실험을 했다. 정면 충돌, 측면 충돌, 추돌 등을 다양한 속도로 시도했다. 승용차·승합차·버스·트럭 등 다양한 차종으로도 진행했다. 차량과 보행자의 충돌 실험도 했다. 그 결과로 다양한 유형의 교통사고에서 특정 신체 조건을 가진 탑승자나 보행자의 부상을 유발하는 ‘최소의 충격량’을 측정해냈다. 그 뒤 교통사고의 상황, 피해자의 신체 정보(키와 나이 등) 등을 입력하면 어느 부위에 어느 정도의 충격을 받게 되는지, 이 수치와 부상 유발 최소 충격량의 차이는 어느 정도인지를 보여주는 프로그램으로 만들었다.



블랙박스 늘어나며 분석 수요 급증





한국에서는 국립과학수사연구원(국과수)과 도로교통공단이 이 프로그램을 보유하고 있다. 프로그램 1개당 약 2억원에 수입했다. 국과수가 처음으로 마디모 프로그램을 교통사고 분석에 활용한 것은 2009년이었다. 이 프로그램 활용의 국내 최고 전문가인 최지훈(42·공학박사) 국과수 교통사고 분석과 책임연구원에 따르면 초기에는 피해자의 사망 경위가 명확지 않은 사건 등 과학적 규명이 반드시 필요한 건에 국한해 활용했다. 2010년의 경우 마디모 분석은 10여 건에 불과할 정도였다. 그러다 경찰과 검찰의 마디모 분석 의뢰가 급격히 늘어났다. 마디모의 존재가 알려지며 사고 당사자들이 검경에 이를 요청하는 일이 불어난 데 따른 결과다. 블랙박스를 장착한 차들이 늘어나면서 운전자들의 증거 제시가 손쉬워졌기 때문인 측면도 있다. 지난해에는 의뢰 건수가 1485건이었고, 올해는 반 년도 채 지나지 않아 이미 지난해의 건수를 넘어섰다. 의뢰 받은 모든 건을 국과수가 마디모로 처리하는 것은 아니다. 최 연구원은 “전체 건수에서 20% 정도만 마디모 분석을 한다. 나머지는 유사한 사고의 분석 결과나 다른 종류의 교통사고 분석 기법을 활용해 판정한다”고 말했다.



마디모 분석을 통해 사고 분쟁을 해결한 실례도 늘고 있다. 지난해 서울역 진입로에서 승용차가 길을 건너던 20대 남성 A씨의 다리를 살짝 치었다. 워낙 가벼운 충돌이었기 때문에 운전자 B씨는 그대로 가버렸다. A씨는 차량의 번호판을 외워 경찰에 뺑소니로 신고했다. 그는 경찰에 2주의 상해진단서를 내기도 했다. 무릎을 다쳤다는 주장이었다. B씨는 상해와 뺑소니 혐의로 입건됐다. 졸지에 전과자가 될 처지로 몰렸다. “다칠 정도로 부닥치지는 않았으며 보행자도 그냥 가던 길을 가는 것으로 생각했다”고 주장한 B씨는 경찰에 마디모 분석을 요청했다. 그는 피해자가 차량과의 접촉 뒤 표정도 일그러지지 않을 정도로 가벼운 충돌이었음을 보여주는 블랙박스 영상을 제시했다. 마디모 분석 결과 A씨는 무릎의 부상을 유발할 수 있는 최소 충격량의 20분의 1에도 미치지 못 하는 충격을 받은 것으로 나타났다(위 그래픽 참조). 이후 A씨는 보험사에 치료비를 요구하지 않았고, B씨는 불기소 처분을 받았다. A씨는 경찰에서 “차로 사람을 치고 미안하다는 인사도 없이 그냥 가는 게 미워서 진단서를 끊고 신고를 했다”고 말한 것으로 전해졌다.



교통사고 전과자 무분별 양산 방지

차량 블랙박스나 사고현장 폐쇄회로(CCTV) TV 영상이 마디모 분석 요청의 필수 조건은 아니다. 최 연구원은 “사고 상황을 명확히 보여주는 영상이 있다면 분석이 좀 쉽겠지만 사고 상황을 찍은 스마트폰 사진과 차량의 손상 정도를 보여주는 사진 정도로도 분석이 충분히 가능하다”고 말했다. 국과수의 교통사고 분석과는 사건을 의뢰 받으면 사고 상황을 컴퓨터에서 재연하는 가상 장면을 만들어 마디모 프로그램에 입력할 기준 수치들을 얻는다. 이 작업에 시간이 많이 걸려 국과수에서 하루에 서너 건 넘게 처리하기가 어렵다. 박종찬 국과수 교통사고분석과장은 “의뢰 사건들이 쌓이면서 처리 능력의 한계에 다다랐다. 분석 요원 충원이 시급하다”고 말했다. 현재 경찰의 분석 요청에서 국과수의 결과 통보까지 한 달가량이 걸린다.



마디모는 수사기관의 관행도 바꾸고 있다. 인천지검은 최근 국과수 요원들을 초청해 토론 모임을 했다. ‘지금의 교통사고 사법처리 기준이 과연 옳으냐’가 주제였다. 현재 횡단보도상에서의 사고, 불법 유턴 시의 사고 등 10대 과실 행위에 대해서는 운전자가 종합보험에 들었다 하더라도 피해자가 2주 진단 이상으로 다치면 입건된다. 그중 대부분이 약식으로 기소돼 벌금형에 처해진다. 이런 사건이 인천지검에만 한 달에 100건 넘게 경찰에서 송치돼 온다. 매달 100명 가까이 전과자가 되는 셈이다. 보험사기를 노리는 이들은 이런 점을 악용해 사고를 유발하고는 많은 합의금을 요구하기도 한다. 인천지검은 최근 부상이 경미한 사고 70여 건에 대한 분석을 국과수에 요구해 그중 10여 건은 부상이 생기기 극히 어렵다는 판정을 받았다. 이에 따라 인천지검은 진단서에 의존해 상해 여부를 판단하는 검찰 수사 관행의 개선에 대한 보고서를 만들 계획이다. 인천지검 권순철 형사2부장은 “교통사고 상해범 처리 기준에 대한 검찰 전체의 검토 작업도 필요해 보인다”고 말했다.



돈 노린 자해 공갈범 설 자리 좁아져

마디모는 합의금이나 보상금을 노리는 사기꾼들의 천적이다. 사고를 유발한 뒤 교통사고 전문 병원에 입원해 ‘나이롱 환자’ 행각을 벌이며 보험금을 노리다가는 ‘쪽박’을 차기 십상이다. 보험사는 마디모 분석 결과를 근거로 치료비 지급을 중단하고 이미 지급된 치료비 반환을 요청하고 있다. 상대가 거부하면 민사소송도 진행한다. 상습적으로 보험금을 노린 사건을 만들다가 마디모에 걸려 처벌을 받기도 한다.



지난해 부산시 금정구에서 실제로 그런 일이 벌어졌다. 택시에 가벼운 추돌 사고를 당한 C씨는 본인과 가족 2명 등 3명의 2주 치료비와 범퍼 교체 비용 180여만원을 보험사에서 받았다. 가해 택시 운전사는 “내리막 길에서 앞차가 급정거를 해 살짝 부닥쳤으며, 그 정도의 추돌로는 상해 진단이 나오기 어렵다”고 경찰에 호소했다. 경찰은 마디모 분석을 근거로 상해 가능성이 없다고 판단했다. C씨가 유사한 사건으로 여러 차례 보험금을 탔다는 사실을 확인한 경찰은 C씨를 사기 혐의로 검찰에 넘겼다.



이 같은 마디모의 효용 때문에 분쟁이 생겨나기도 한다. “나는 분명히 다쳤는데 보험사가 마디모 분석을 근거로 치료비 지급을 거부하고 있다”고 주장하는 교통사고 피해자도 있다. 이에 대해 호국진 경찰청 교통사고조사계장(경정)은 “마디모는 상해 가능성을 판정하는 하나의 근거일 뿐 그것에만 의지해 최종적 판단을 할 수는 없다”고 말했다. 금융감독원 보험조사국 관계자는 “마디모 분석 결과의 의미가 지나치게 확대 해석되면서 보험업계 현장에서 다소의 혼선이 있는 것으로 안다. 이를 보험금 지급 문제에 어떻게 적용하고 활용할지에 대한 종합적인 검토가 필요하다”고 의견을 밝혔다.



이상언 기자 joonny@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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