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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EO 인터뷰] '켄달 잭슨' 와인 만드는 티그너

중앙일보 2014.06.14 01:39 종합 18면 지면보기
릭 티그너 CEO가 지난달 20일 서울 신라호텔에서 와인 평론가 로버트 파커로부터 만점을 받은 ‘베리테 라 뮤즈’를 시음하고 있다. [변선구 기자]


“현장에 답이 있다.”

리더십은 현장과 소통 … 수염 길러 포도밭 노동자로 위장했죠



 릭 티그너(Rick Tigner·52) 잭슨패밀리와인즈그룹 최고경영자(CEO)는 2011년 미국 CBS 프로그램 ‘언더커버 보스(Undercover the Boss)’에 출연했다. 이 프로그램은 회사의 CEO가 일반 직원으로 위장해 현장 직원들이 어떻게 일하고, 어떤 불만을 갖고 있는지 등을 알아보는 포맷이다. 티그너 CEO는 포도밭에서 일하는 노동자로 위장했다. 다른 직원들과 어울려 포도를 수확하고, 운송 트럭을 몰았다. 자신을 몰라보도록 수염을 기르고, 자신의 눈동자 색과 다른 콘텍트렌즈도 착용했다.



 프로그램 방영 이후 잭슨그룹에는 변화가 생겼다. 와이너리에서 일하는 노동자뿐 아니라 전 임직원을 대상으로 스페인어 교육을 시작했다. 영어학교도 열었다.



 “스페인어를 사용하는 이민자들이 전체 근로자의 30%가 넘는다는 걸 현장에서 일하며 알았습니다. 단순히 돈을 주고 노동력만 활용하는 CEO가 되기는 싫었어요. 직원들 간의 소통이 이뤄지는 회사를 만들고 싶었습니다.”



 티그너 CEO는 기자와 만나 당시 일을 회상하며 이렇게 말했다. 그는 지난달 말 서울 장충동 신라호텔에서 열린 잭슨패밀리와인즈 세미나 및 박람회에 참석하기 위해 방한했다.



 리더십이란 현장과의 소통에서 나온다는 것이 그의 지론이다. 전 직원이 가족처럼 행복하게 일하는 분위기를 만들어주는 걸 가장 중요하게 여긴다. “최고 품질의 제품을 만든다는 자부심을 갖게 하면 모든 구성원이 저절로 흥이 나서 일하지 않겠느냐”는 게 그의 말이다.



당시 프로그램 출연은 잭슨그룹에 리더십을 갖춘 CEO가 있다는 걸 외부에 알리는 효과도 거뒀다. 그가 이 프로그램에 등장한 건 창업자이자 회장이던 제시 잭슨이 별세한 지 3개월 만이었다. 티그너 CEO는 1991년 입사해 잭슨그룹의 글로벌 담당으로 일하다 잭슨이 세상을 떠난 2011년 이후 그룹의 CEO를 맡아왔다. 잭슨그룹은 와인 브랜드 ‘켄달 잭슨(Kendall Jackson)’으로 유명하다.



2011년 미국 CBS ‘언더커버 보스’에 출연해 노동자 차림으로 일하고 있는 릭 티그너. [사진 CBS]
- 유럽의 와인 명가에 비해 단시간 내 이름을 알렸다.



“좋은 와인은 가격이 비싸다는 통념에 도전했다. 창업자 잭슨의 철학은 ‘보통 사람도 쉽게 마실 수 있는 훌륭한 와인을 지향한다’는 것이었다. 같은 가격대 와인 중 맛과 품질이 가장 우수하다고 평가받으면서 소비자가 많이 찾게 됐다. ‘켄달 잭슨 빈트너스 샤르도네’는 잭슨그룹이 소유한 캘리포니아의 다양한 와이너리에서 재배한 포도를 혼합해 생산한다. 각각 특성이 다른 지역에서 재배한 샤르도네를 혼합해 자체 스타일을 만든 것이다. 품질을 꾸준히 높여 소비자들에게 한결같이 신뢰할 수 있는 와인이라는 믿음을 주고 있다.”



 - 잭슨그룹에 입사한 지 23년째다.



“잭슨그룹은 미국에서 몇 안 되는 가족경영 기업이다. 좋은 경쟁자였던 로버트 몬다비 와이너리가 매각된 이후 우리의 존재 가치가 더 빛을 발하고 있다. 가족경영의 장점은 단기간의 손해를 감수하더라도 100년 앞을 내다보는 투자를 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런 장기적 안목을 가진 곳에서 일한다는 점에 자부심을 느낀다.”



 미국 와인의 역사는 이탈리아 이민자인 몬다비 일가에서 비롯됐다. 1919년 미국 캘리포니아 북부 나파밸리에 이주했으며 2세대인 로버트 몬다비가 66년 자기 이름을 딴 와이너리를 세우면서 미국의 대표 와인으로 각인됐다. 하지만 93년 기업공개 뒤 무리한 사업 확장과 내부 불화 탓에 2004년 로버트 몬다비 와이너리 경영권을 매각해야 했다. 로버트 몬다비는 2008년 세상을 등졌다. 잭슨그룹의 창업자인 제시 잭슨은 많은 대기업으로부터 와이너리를 팔라는 권유를 받았지만 거절했다. 그가 사망한 후에도 부인 바버라 잭슨과 세 자녀가 모두 가업에 종사하고 있다. 특히 둘째 딸 줄리아 잭슨은 가업을 잇기 위해 프랑스에서 와인을 공부하고 귀국했다. 이날 인터뷰에 동석한 그녀는 “아버지는 ‘이익이란 열정 뒤에 따라오는 열매’라고 가르치셨다”고 전했다. 현재 잭슨그룹은 유럽은 물론 호주로까지 와인 재배지를 넓히고 있다.



잭슨그룹 창업자 제시 잭슨(왼쪽)이 생전에 릭 티그너와 함께한 모습. [사진 잭슨그룹]
 - 캘리포니아산 와인만으로는 부족한가.



“잭슨그룹이 보유한 포도밭이나 생산하는 와인의 품질을 고려할 때 미국 내에 비슷한 수준의 경쟁자는 없다고 생각한다. 대부분 저가 와인을 대량 생산하는 와이너리들이다. 우리는 고급 와인 산업이 전반적으로 커지기를 바라며, 시장 성장에 기여하고자 한다. 장기적인 안목에서 프랑스·스페인·이탈리아·호주 등 다양한 나라에 재배지를 두고 좋은 와인을 만들려고 하는 것이다.”



- 오랜 전통의 유럽 와인과 겨루기엔 한계가 있을 것 같은데.



 “76년 프랑스에서 열린 ‘파리의 심판’(프랑스 와인과 캘리포니아 와인 시음에서 레드·화이트 와인 모두 캘리포니아산이 1위를 한 대회) 이후 미국 와인에 대한 인지도가 높아졌다. 캘리포니아는 남북으로 길이가 1240㎞다. 프랑스의 남북 길이가 960㎞ 정도인 것을 생각하면 엄청나게 긴 셈이다. 프랑스의 보르도가 서로 다른 다양한 와인 생산지역(AOC)을 자랑하는데, 그렇게 보자면 캘리포니아가 더 넓고 다양한 지형을 갖고 있다. 프랑스가 위대한 테루아르(terroir, 기후·지형·토양 등 포도밭의 종합적 환경)를 발견하기까지는 수백 년의 시간이 걸렸듯 얼마나 좋은 곳을 개발하느냐가 관건이다.”



중앙일보 ‘컨슈머리포트-비빔밥과 잘 어울리는 와인’에서 가장 좋은 점수를 받은 켄달 잭슨빈트너 스샤르도네(가운데). [중앙포토]
 티그너 CEO는 최근 진행한 중앙일보의 ‘컨슈머리포트-비빔밥과 잘 어울리는 와인’에서 켄달 잭슨 빈트너스 샤르도네가 가장 좋은 점수를 받았다고 하자 무척 기뻐했다. 그는 “와인을 술로 대하지 말고 음식의 일종으로 대하면 더 다양한 풍미를 즐길 수 있다”고 조언했다.



  - 한국에서 와인 소비량이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



 “한국 시장은 성숙기로 접어드는 단계로 보인다. 1인당 소비량이 많지는 않지만 21~35세 소비자들이 와인을 라이프 스타일의 일부로 받아들이게 되면 본격적인 성숙단계에 이를 것으로 본다. 이 소비자들은 윗 세대와 달리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등을 통해 다양한 경험과 정보를 얻고 있다. 쉽게 와인에 대한 스토리를 알고, 마시면서 자연스럽게 대화를 이끌 수 있는 여건이 갖춰진 세대다.”



 - 육류엔 레드와인, 어류나 채소엔 화이트와인이 어울린다고들 하는데.



 “음식 맛을 넘어서지 않는 와인을 선택하는 게 좋다. 그 선에서 레드와인이든 화이트와인이든 육류나 어류에 상관없이 매칭시킬 수 있다. 자신이 좋아하면 그만 아닌가.”



 잭슨그룹은 친환경정책에도 관심을 쏟고 있다. 지난해 영국의 권위 있는 와인 잡지 ‘드링크 비즈니스’가 뽑는 ‘올해의 녹색기업’에 선정되기도 했다. 태양열과 풍력을 활용한 전력 생산 외에도 소유한 토지의 10% 이상을 자연 생태계 그대로 보존하고 있다. 양조 과정에서 남은 포도 껍질을 가루로 만들어 비스킷·빵 등을 만들기도 한다. 폐기물이 자연스레 줄어들었다. 티그너 CEO는 “포도씨로 차를 만드는 방법도 개발하고 있다”고 귀띔했다.



문병주 기자



발효 덜 된 와인과 섞는 실수 …‘오바마 와인’ 탄생



잭슨그룹의 대표적 와인인 ‘켄달 잭슨’은 일명 ‘오바마 와인’으로도 불린다. 2008년 당선한 미국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와인이라고 공공연하게 말해 왔기 때문이다.



 켄달 잭슨의 시작은 1982년 탄생한 ‘켄달 잭슨 빈트너스 샤르도네’였다. 역사가 짧은 ‘젊은’ 와인임에도 명성이 자자한 유럽 대륙의 와인들을 제치고 전 세계적으로 인기를 얻고 있다. 아이러니하게도 켄달 잭슨의 성공은 예상치 못한 사고에서 시작됐다. 제대로 발효되지 않은 와인을 창업자 제시 잭슨이 정상 발효된 와인과 섞어 버리는 실수를 저질렀다. 뜻밖에도 기존의 샤르도네보다 단맛이 강하고 더 풍부한 과일향을 갖춘 새로운 와인이 탄생했다. 이 와인은 이듬해 전미 와인대회에서 미국 와인 최초로 플래티넘 메달을 받으면서 성공가도를 달리기 시작했다.



이를 계기로 잭슨그룹은 사세를 확장해 현재 미국을 대표하는 와인기업으로 성장했다.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이 발효된 2012년에는 한국에서의 와인 판매량이 전년 대비 57% 늘었다. 잭슨그룹은 나파밸리·소노마밸리 등 캘리포니아 연안에서 프리미엄 와인 산지를 가장 많이 보유하고 있으며 40개의 와인 브랜드를 생산한다. 와인 브랜드 ‘베리테(Verite)’는 로버트 파커 포인트 최다 만점(7회)의 기록을 갖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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