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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수대] 행오버

중앙일보 2014.06.14 00:29 종합 31면 지면보기
지식인 남성의 위선을 즐겨 그리는 홍상수 감독. 그의 영화에는 유난히 술 마시는 장면이 많다. 처음엔 제법 거창한 토론으로 시작한 술자리는 허세와 콤플렉스가 뒤섞인 쌈박질을 거쳐 여자들에게 추근대는 것으로 끝난다.



 술을 통한 인간 본성 탐구 같은 그의 영화는, 준비도 스태프들이 함께 진창 술을 마시는 것으로 한단다. 감독, 배우, 스태프가 그렇게 서로의 맨 바닥을 보면서 영화의 본질에 접근해 가는 것이다. 그의 영화는 외국 관객들에게 이름 모를 ‘녹색 병’에 대한 호기심을 고조시키기도 했다. 소주 말이다.



 초기 부산영화제를 찾은 해외 영화인들은 마침내 그 녹색 병을 ‘알현’했다. 재미있는 건 부산영화제가 아시아 대표 영화제로 성장하기까지 우리의 음주문화가 기여한 바 크다는 점이다. 해외 영화인들은 밤마다 해운대 천막 주점에서 열린 진솔하고 유쾌한 술자리에 매료됐고, 그 덕에 끈끈한 네트워크가 형성됐다. 해운대 술자리가 이룬 ‘쾌거’다.



 싸이의 새 뮤직 비디오 ‘행오버’도 한국의 음주 문화를 승부수로 띄웠다. 현란한 도미노 기술로 폭탄주를 말며, 즉석 부킹과 노래방, 러브샷 등 우리에게 익숙한 술자리 풍경이 펼쳐진다. 피처링한 세계적 힙합 가수 스눕독도 싸이를 따라 요상한 포즈로 소주병을 딴다. 일각에선 때아닌 음주문화 비하 논란도 나왔다. 난센스다. B급 문화의 기수 싸이에게 ‘건강한’ 음주문화라니?



 “외국 친구들이 한국 술 문화를 무척 신기해 하는 데서 착안했다”고 싸이는 말했다. 해외 팬들의 반응도 재밌다는 쪽이 다수다. 미국 ABC TV ‘지미 키멜 라이브’에 출연한 싸이와 스눕독은 가라오케에 가서 함께 애창곡을 부르는 장면도 연출했다.



 각설하고 술 문화 탐구는 이제 글로벌 무대로 갈 정도로 많으니, 이제는 나처럼 술 못 먹는 사람들에 대한 관심도 가졌으면 좋겠다. 술 권하는 사회의 진정한 마이너리티 말이다. “술을 못 마시면 인생을 몰라” “여자라고 빼는 거 아니냐” “술도 못 마시면서 어떻게 기자를 하느냐” 같은 폭언인지, 염려인지 모르는 얘기를 평생 지겹도록 들었다. 이제 와 고백하지만 왜 부모님은 날 술도 못 마시는 ‘장애인’으로 낳았을까, 사람들은 왜 나의 ‘장애’에 대한 연민과 배려가 없을까, 분해서 훌쩍인 적도 많다. 자리의 흥을 깨지 않으려고 애써 분위기에라도 취했다.



 술 못 마시는 사람들의 ‘인권’ 문제는 국가인권위원회에서도 취급해 주지 않는다. 아 이럴 땐 진짜 술이 필요하다!



양성희 문화스포츠부문 부장대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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