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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현택 기자의 '불효일기' <31화ㆍ끝> 암환자의 가족, 무엇이 가장 힘들었나

온라인 중앙일보 2014.06.13 13:36
내 주변 지인들로부터 가장 많이 들은 말 중 하나가 "그래, 힘들지?" 였다. 반은 맞고 반은 맞지 않다. 사실 올해 초까지만 하더라도 경제적으로는 쪼들렸지만, 마음만큼은 여유가 있었다. 안분지족(安分知足)하면서 살면, 별로 아쉬울 것도 없고, 아버지가 식사 잘 하시고 가족이 화목한데 무엇이 걱정이냐는 생각이 많았다. 하지만 요새는 힘들다. 나의 마음가짐도 그렇고, 아버지를 따라 덩달아 쇠약해진 것 같이 느껴지는 나 자신의 육신도 그렇다.



문득, 아버지의 암 투병 초기부터 중기, 말기에 이르기까지, 어떤 점이 힘들었는지 떠올려봤다. 나중에 가족이 암을 투병하거나, 본인이 암환자가 될지도 모르는 미래의 사람들을 위한 기록이 되겠다.



암 초기: 살 길을 찾는 것이 힘들다



아버지는 내게 가장이고 방파제 같은 분이었다. 그런 아버지가 암에 걸려 무너져 내린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것이 최고로 힘들었다. 내 아버지처럼 퇴직이나 폐업을 앞두고 암에 걸리는 경우에는 그 상실감이 더 클 수 있다. 불과 1년 전만 하더라도 영업 현장에서 카리스마를 보여줬던 우리 아버지가 왜, 불과 1년만에 현장이 아닌 병상에서 사극 프로그램 재방송을 멀뚱멀뚱 쳐다보고 있어야 한단 말인가. 그 상실감이 엄청 크다.



상실감을 이겨내면, 돈에 대한 압박이 들어온다. 암 초기에는 돈이 많이 든다. 중증환자 특례로 치료비의 5%만 내면 되는 세상이 됐지만, 아직도 입원료(병실비)의 압박은 꽤 크다. 2014년 9월부터 4인실의 경우에도 보험 적용이 된다지만, 그건 해 봐야 아는 일이다. 4인실까지도 꽉 차버린다면 이전과 큰 차이가 없을 수도 있다. 당장 수술 날짜를 받아와도, 하루에 20만원이 넘는 1~2인실의 병실비에 대한 고민 때문에 수술을 주저하게 되는 환자가 많다.



갑자기 가장이 쓰러지면, 내가 가장이 되어야 한다는 생각이 힘들기도 하다. 생각보다 가장은 처리해야 할 일이 많았다. 나의 경우에는 아버지의 법률적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백방으로 뛰어다녔던 기억이 있다. 다시는 하고 싶지 않은 경험이다.



때로는 너무나 쪼들려, 정말 빵 한 쪽 사먹기 어려운 때도 있었다. 어느 정도 나 자신의 채무를 갚은 지금의 나를 보는 사람들은 상상도 못했겠지만. 하지만 번듯한 직장이 있는 사람인지라, 어렵다는 소리를 하기도, 어디 가서 굶었다는 이야기를 하기도 어려웠다. 그냥 버텨야 했다. 시간은 어쨌든 간다는 말이 느껴지는 시기였다.



암 중기: 지쳐버린 나 자신이 힘들다



암환자 부모를 둔지 2년 정도 지났을 때가 중기 아닐까 싶다. 물론 자의적인 판단이다. 암이 중반으로 접어들면 환자 본인도 지친다. 대개 재발을 하느냐 아니냐의 여부가 결정되는 시기이다. 내 아버지처럼 일찍 재발하는 경우에는 첫 수술 후 1년만에 재발을 해 3기가 되기도 하지만, 2년 뒤 재발을 하는 사람들도 있다. 재발을 하지 않더라도 꾸준히 항암치료를 받아야 하는 사람들도 있다.



암치료 첫 해에는 재밌는 점도 있고, 약간은 두려운 마음도 섞여 있다. 가족들 역시 환자를 잃을까 두려운 마음 반, 꼭 고쳐서 완쾌를 시키겠다는 의지 반일 것이다. 하지만 한 해, 두 해가 지나면서 그 마음도 지친다. 암환자는 계속되는 치료에도 차도가 없으니 짜증만 난다. 몸은 계속 쇠약해지고, 기력은 떨어진다. 하지만 정신은 또렷하고, 역정은 오히려 더 큰 소리로 내게 되는 경우도 있다.



이 때가 되면 정말로 "긴 병에 효자 없다"라는 말을 몸소 느낄 수 있다. 어느 순간 아버지의 짜증 섞인 말에 나 자신이 같이 화를 내고 있다는 점을 깨닫는 순간이 온다. 그 때 그걸 캐치하고 다시 한 번 스스로의 마음가짐을 돌아본다면 덜 불효자요, 그렇지 않고 계속 암환자 부모를 배려하지 못한다면 상 불효자가 될 것이다.



나의 경우 아버지의 역정에 한 번씩 대들 때가 있었는데, 대개 전화 통화를 하던 경우였다. 그럴 때는 대부분 그날 저녁에 아버지를 찾아뵙고 같이 식사를 한다. 그러면 반 이상은 풀리는 것 같았다.



암 말기: 아버지를 지켜보는 것이 힘들다



3년 이상 투병기간을 거치고, 환자가 꾸준히 악화된다면, 이 때쯤은 환자 본인 스스로나 가족들의 느낌이나 말기라는 생각이 찾아온다. 의사가 보여주는 차트의 변화상을 보면서 느낄 수 있다. 몇 년이 지났으니, 아버지의 암 투병 초기에 벌어졌던 일들은 상당수 정리가 됐고, 어느 정도 살 길도 슬슬 보이는 시점이다. 지난 힘들었던 기억들은 웃으면서 아버지와 식사할 때 '안주' 정도로 이야기할 여유도 생긴다.



모든 것이 정리되는 듯한 시점. 하지만 아버지의 건강이 급속도로 쇠약해진다는 사실에 인간적인 한계를 느끼게 된다. 그 인간적 고뇌가 너무나도 참기 힘들다.



아, 아버지. 그 어려운 시절을 버티고, 라면 먹어가면서도 버텨냈는데, 왜 이제 와서 아버지가 무너지는 모습을 보여주신단 말입니까. 아들과 며느리, 그리고 손주와 함께 내년 봄에 벚꽃구경이라도 가야 하지 않겠습니까.



아버지에게 이야기해보지만, 약해진 모습에 '내게도 그런 행운이 올까'라는 답이 돌아온다. 그것이 암환자 아버지와 불효자의 운명인 것인가.



오늘도 아버지와 통화를 했다. 아버지는 목소리가 오랜만에 카랑카랑했다. 기분이 좋다. 컨디션이 좋은가보다라고 말씀드렸더니, "네가 아파서 정신 좀 드나보다"라고 받아치신다. 암 말기에는 이런 소소한 변화도 너무나도 감사하고 즐겁다. 역으로 생각하면, 이런 소소한 기쁨이 없는 날에는 암환자의 가족들은 별 낙이 없다는 이야기다.



내일은 아버지가 좋아하는 녹두죽이라도 사가서, 소소하게 한 입씩 먹어볼 생각이다. 남은 날이 짧다.



◆ '불효일기' 연재는 이것으로 마칩니다. 저는 이제 남은 기간 아버지께 더 신경을 써 보려고 합니다. 읽어주시고 많은 조언을 해 주신 독자 여러분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이현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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