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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공격적 기업사냥 작년 187조 … 한국은 42조

중앙일보 2014.06.12 03:08 종합 4면 지면보기
“식량과 물, 환경과 같은 인류의 중대 문제를 해결하자.”


M&A 몸 사리는 국내기업
일본도 동남아 회사 사들이는데
한국은 투자 위축, 성장 기회 놓쳐
"규제 완화 … 도전정신 키워줘야"

 일본 ‘구보타’의 마스모토 야스오 회장이 올 초 신년사에서 밝힌 내용이다. 첨단 정보기술(IT)·식품 회사라면 그럴법하지만 이 회사는 트랙터 같은 농기계를 만든다. 그것도 124년째 한 우물을 파고 있다. 투박한 아날로그 제품을 만들면서 포브스가 발표하는 ‘세계 100대 혁신 기업’에 2012·2013년 연속으로 꼽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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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혁신의 원동력은 과감한 투자와 도전으로 대변되는 ‘기업가 정신’이다. 쌀농사를 많이 짓는 태국·인도네시아에 생산기지를 건설했고, 밭농사에 특화된 노르웨이의 농작물 기계 업체를 인수합병(M&A)하며 외연을 넓혔다. 최근엔 “2018년까지 무인 로봇 농기계를 만들겠다”는 구체적인 청사진도 내놨다. 구보타의 연구개발(R&D) 투자는 2009년 263억 엔에서 2013년엔 312억 엔으로 해마다 늘고 있다.



 반면 한국 기업은 ‘방어 경영’에만 몰두하고 있다. 신제품을 출시하기보단 이미 자리 잡은 ‘브랜드’를 재활용하는 게 일반적이다. 롯데제과가 지난 3월 내놓은 아이스크림 신제품은 1986년 처음으로 내놨던 ‘월드콘’ 이름을 달았다. ‘빼빼로 시키니’ 등 롯데제과가 선보인 올해 신제품 20여 가지 중 절반은 기존 제품의 수정 버전이다.



토종 브랜드를 키우기보다는 수입 브랜드를 들여와 판매하는 쉬운 방식을 택한다. 신세계인터내셔널은 갭과 셀린느 등 해외 브랜드 위주로 운영하고 있다.



아웃도어 시장에선 밀레·라푸마·아이더 등 프랑스 3대 브랜드의 국내 상표권을 모두 한국 기업이 갖고 있다. 타사 인기 제품을 베끼는 전략도 서슴지 않는다.



 한 재계 관계자는 “과거에는 투자 회의에서 ‘10년 뒤 시장 전망은 어떻냐’는 말이 오갔지만, 요즘은 ‘당장 돈이 되겠느냐’ ‘문제 되는 거 아니냐’는 말이 주로 나온다”며 “과감한 투자보다는 ‘간 보기 식 투자’가 이뤄지고 있다”고 말했다. 지난해 한국 기업의 설비투자는 전년보다 0.6% 감소한 130조원이었다. 한국 기업은 세계 100대 혁신기업에 한 곳도 이름을 올리지 못했다.



 국내 M&A 시장에선 대형 매물이 쏟아지고 있지만 대기업을 보기가 어렵다. 주요 대기업들이 계열사 간 지분 정리, 사업 통합 등 내부 조정에 몰두하고 있기 때문이다. 최근 몇 년 새 SK그룹이 인수한 하이닉스와 GS그룹과 LG그룹이 인수한 STX에너지 외엔 대다수 매물이 사모펀드(PEF)의 손으로 넘어갔다.



 해외 M&A에도 몸을 사리고 있다. 한국의 간판기업인 삼성전자의 경우 2010년 이후 최근까지 12건의 M&A를 단행했다. 같은 기간 구글과 애플이 각각 96개와 28개 기업을 인수한 것과 비교된다.



중국이 지난해 1841억 달러(약 187조원) 규모의 M&A에 나선 반면 한국(414억 달러·약 42조원)은 소극적이다. 그 이유는 복잡하다. 해외 M&A에 돈을 쏟아부었다간 ‘국내 투자에는 소홀하다’는 비판을 받기도 하고, 괜히 덩치를 키웠다가 ‘견제’를 받는 것을 우려한다. 일사불란한 기업 문화가 강하다 보니 외국기업과의 화학적 융합도 쉽지 않다.



구글이 인수한 모바일 운영체제(OS) 개발업체 안드로이드가 구글에 앞서 삼성전자에 M&A 의향을 타진했다가, 거절당한 일화는 이런 한국의 해외 M&A에 대한 감정을 간접적으로 보여준다.



 홍대순 아서디리틀(ADL) 부회장은 “한국 기업이 제자리걸음을 하는 동안 중국·일본 기업은 공격적인 해외 기업 ‘사냥’을 통해 기술·브랜드 경쟁력과 세계 시장점유율을 끌어올리고 있다”며 “해외 M&A로 새로운 기회를 찾고 성장동력을 키워야 하는데, 지금 같은 분위기에선 ‘우물 안 개구리’가 되기 십상”이라고 진단했다.



 중국 PC업체인 레노보는 미국 구글로부터 모토로라를 인수해 스마트폰 시장 점유율 6.2%의 3위 업체로 올라섰다. 미국 최대 육가공 업체인 스미스필드푸드, 미국의 전기차 업체 피스커, 100년 역사의 네덜란드 곡물 회사 니데라, 세계 최대 리조트 체인 프랑스 클럽메드, 아프리카 최대 은행인 남아프리카공화국 스탠다드은행의 글로벌시장 부문 등이 중국으로 넘어갔다. 지역·업종을 불문하고 알짜 매물을 사들이고 있는 것이다.



 일본 주류 회사 산토리는 올초 버번 위스키 ‘짐빔’으로 유명한 미국 회사 ‘빔’을 인수했다. 최근에는 태국 은행, 미얀마 생활용품업체, 인도 밸브업체, 인도네시아 음료회사 등을 잇따라 M&A 하는 등 일본 기업은 아시아에서의 약진이 두드러진다.



 전태유 세종대 경영대학원 교수는 “기업들이 ‘축소 경영’에 집착하면 결국 경제성장이 둔화되고 일자리 창출이 어렵게 된다”며 “기업들의 발목을 잡고 있는 규제를 풀고, 기업인들이 도전정신을 발휘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게 중요하다”고 조언했다.



문병주·손해용·김현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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